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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를 해야 하는 이유

2017-05-05|조회 890

민주주의 꽃 선거

 

19대 대통령 선거가 코앞이다. 대통령은 국민을 대신하여 나라 살림을 운영하는 대표자이기 때문에 국민들에 의해 뽑힌 선출직이다. , 모든 국민이 직접 정치에 참여할 수 없기 때문에 국민들은 선거를 통해 대표를 뽑고, 대표로 뽑힌 대표자가 국민을 대신해서 정책을 결정하고 나랏일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민주주의 국가의 국민이라면 선거를 통해 자신의 의견을 정치에 반영시킬 수 있다. 다시 말해, 선거는 국가의 주인인 국민이 자신의 권리를 정당하게 행사하여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이고 손쉬운 방법이다. 그래서 선거를 '민주주의 꽃'이라고 부른다.

 

콩도르세의 역설(Condorcet's paradox)

 

그러나 민주주의에서 채택하고 있는 다수결 의사 결정 방식은 경제학적으로 보면 일부 결함을 갖고 있기도 하다.

 

우선 프랑스의 정치 이론가인 콩도르세(Marquis de Condorcet, 1743~1794)의 이름을 따 '콩도르세의 역설'(Condorcet's paradox) 또는 '투표의 역설'(voting paradox)이라고 불리는 것이 있다. 콩도르세는 다수결을 통해 다수가 원하는 후보를 선택하는 데 일관성의 관점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다수결을 통해서는 이행성(transitivity) 있는 사회적 의사결정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는 것인데, 여기서 이행성이란 AB보다 좋아하고 BC보다 좋아하면, 반드시 AC보다 선호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쉬운 예를 들어 보자. 어떤 회사에서 같은 부서에 근무하는 김부장, 오과장, 최대리 3명이서 점심 식사를 같이 하기로 했다. 그런데 이 세 사람은 음식에 대한 취향이 서로 다르다. 이들의 선호는 다음과 같다.

 

김부장 : 일식 > 한식 > 중식

오과장 : 중식 > 일식 > 한식

최대리 : 한식 > 중식 > 일식

 

결국 세 사람은 합리적인 의사 결정을 위해 투표를 통해 식사 메뉴를 고르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일식을 한식보다 좋아하는 사람이 두 명(김부장, 오과장)이고, 한식을 중식보다 좋아하는 사람도 두 명(김부장, 최대리)이다. 또한 중식이 일식보다 좋다는 사람도 두 명(오과장, 최대리)이나 된다.

 

따라서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일식과 한식 중에서는 일식을, 한식과 중식 중에서는 한식을, 중식과 일식 중에서는 중식을 선택하게 된다. 결국 일식>한식>중식>일식이라는 모순으로 인해 제대로 된 결정을 내릴 수 없게 된다. 투표를 통한 민주적인 선택 시도가 합리적 결과로 이어지지 않은 것이다. 이를 확대해 보면, 국가적인 대사를 결정하는 선거에서도 국민들의 선호가 제대로 파악되지 않을 경우 합리적 의사결정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보르다의 역설(Borda’s paradox)

 

한편 콩도르세와 같은 시기에 살았던 수학자 보르다(Jean-Charles de Borda)는 다수결에 의해 선출된 후보가 다수가 가장 원하지 않는 후보가 될 수도 있는 모순된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음을 제시했다.

 

쉬운 예를 들어보자. 같은 대학 같은 학과에 있는 친구들 7(A~G)이 영어를 배우기 위해 미국, 영국, 호주 중 한 곳을 선택하여 어학연수를 가려고 한다. 그런데 이들이 서로 의견이 일치하지 않아 투표로 여행지를 결정하기로 했다. 이들이 각자 선호하는 나라는 다음과 같다.

 

A : 미국 > 영국 > 호주

B : 미국 > 영국 > 호주

C : 미국 > 영국 > 호주

D : 영국 > 호주 > 미국

E : 영국 > 호주 > 미국

F : 호주 > 영국 > 미국

G : 호주 > 영국 > 미국

 

이제 이들이 다수결에 의해 가장 가고 싶은 나라를 고른다면 미국(3), 영국(2), 호주(2)가 되어 미국이 결정된다. 그런데 거꾸로 가장 가고 싶지 않은 나라를 고르는 투표를 하게 되면 미국(4), 호주(3), 영국(0)이 되어 이번에도 미국으로 결정된다. 따라서 가장 가고 싶은 나라=가장 가고 싶지 않은 나라라는 모순된 결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이런 점을 보완하기 위해 보르다는 유권자가 선호도에 따라 후보에게 순위를 매겨 투표하는 방식을 제안했다. 예를 들어, 1위는 10, 2위는 9, 3위는 8점 등 이런 식으로 계산하여 최종 점수가 가장 높은 후보가 당선되는 방식이다. 현재 미국의 메이저리그에서 MVP를 선정할 때 이와 같은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 방식도 다양한 선호도를 반영한다는 장점은 있지만, 여러 번 1위를 차지한 후보가 한 번도 1위를 못한 후보에게 총점에서는 뒤지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완벽하게 합리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애로의 불가능성 정리(Arrow's Impossibility Theorem)

 

이 외에도 1972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케네스 애로(Kenneth J. Arrow)는 민주주의가 전제로 하는 합리적 의사결정이 아예 불가능하다는 것을 수학적으로 증명하기도 했다. 그는 1951'사회적 선택과 개인의 가치(Social Choice and Individual Values)'라는 논문에서 다수결에 따른 의사결정이 결코 합리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밝혔다. 이를 '애로의 불가능성 정리(Arrow's Impossibility Theorem)'라고 한다.

 

애로의 불가능성 정리는 투표 제도가 사회적 선택 수단으로 완벽하지 못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예를 들어, 점심 식사 장소를 정하는 위의 사례에서 최종 결정은 가장 지위가 높은 김부장 마음대로 결정될 확률이 높은 것이다.

 

그렇다면 정치경제학적 관점에서 이렇게 투표가 불완전한데, 선거를 꼭 해야만 하는 것인가? 그냥 선거권을 행사하지 않고 중립을 지키면 안되는 것인가? 하지만 투표권이라는 것이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안다면 투표권을 행사하는 것이 민주주의 시민으로서의 바람직한 자세다.

 

차티스트 운동 : 노동자의 선거권


영국에서는 1832년 선거법이 개정되었다. 선거법 개정을 통하여 불합리한 선거구를 없애고 선거 자격을 완화하여 대부분의 중산층에게 선거권을 부여하였다. 그러나 노동 계급에 대한 투표권 부여는 일체 논의되지 않은 채 배제되었다. 쥐꼬리만큼 적은 임금에 하루 14시간에 육박하는 강도 높은 노동으로 신음하던 노동자 계급의 기대는 산산 조각났다.

 

결국 영국의 노동자들은 1830년대 중반부터 경제적·사회적으로 쌓여온 불만과 함께 선거권 획득을 위한 요구의 목소리를 높여갔다. 그들은 의회의 개혁을 요구하고, 성인 남자 보통 선거권을 비롯하여 무기명 투표, 의원에 대한 세비 지불, 선거구 평등, 의원 재산자격의 철폐 등을 담은 인민헌장(People’s chart) 청원을 1839, 1842, 1848년의 3차례에 걸쳐 이루어냈다. 이를 차티스트 운동(Chartist movement)이라 부른다.

 

그러나 의회는 이러한 노동자들의 청원을 거부하고 지도자들을 체포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18672차 선거법 개정이 이루어지면서 대부분의 도시임금 노동자들에게 선거권이 부여되었다. 그로부터 5년 후인 1872년에는 비밀투표까지 보장되면서 기존의 힘 있는 자에 의한 뇌물과 압력에 의한 투표 관행이 사라지는 등 선거제도와 문화가 선진화되는 모습을 보였다. 1884년 제3차 선거법 개정에서는 그 대상이 농민들에게까지 확대되었다.


이러한 변화의 배경에는 차티스트 운동에서 보여준 노동자들의 힘과 소리가 자리 잡고 있었다. 차티스트 운동의 지도자였던 조셉 스티븐슨 목사는 말했다. "내게 보통 선거권은 포크와 나이프처럼 생활에 밀접하게 닿아있다. 모든 노동자가 좋은 외투를 두르고 온 가족이 번듯한 집에 살며 제대로 된 식사를 할 권리가 있음을 뜻한다."

 

에밀리 데이빈슨의 희생 : 여성 참정권

 

영국에서 여성들에게 참정권이 처음으로 주어진 것은 1918년이다. 그마저도 서른 살 이상의 여인들에게만 투표권이 주어진 제한적인 여성 참정권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제한적 참정권을 얻기까지에도 한 여인의 희생이 있었다. 1913년 런던 남부에서 열린 경마대회에서, 폭주하듯 내달리는 경주마들 앞에 한 여인이 몸을 내던졌다. 그녀의 이름은 에밀리 데이빈슨(Emily Wiling Davinson, 1872~1913)이다. 쓰러진 그녀의 외투에는 여성에게 참정권을이라고 쓰여 있었다. 4일 후 그녀는 병상에서 숨을 거두었지만 영국의 여성들은 데이빈슨의 장례식을 거대한 시위 행렬로 만들었고, 이 사건은 결국 영국의 여성 참정권 획득을 앞당기는 촉발제가 되었다.

 

셀마 몽고메리 행진 : 흑인 참정권

 

19653, 미국 앨라배마주 셀마(Selma)에서는 흑인 투표권 쟁취를 위해 주의회가 있는 몽고메리(Montgomery)까지 3차례의 행진이 시작되었다. 이를 '셀마 몽고메리 행진March from Selma to Montgomery)'이라 부르는데, 37, 39, 321일 세 번에 걸쳐 진행되었다.

 

당시 미국 앨라배마주 셀마의 인구 중 절반을 차지하는 흑인들은 차별과 협박으로 투표권을 보장받지 못하였고 흑인들은 이러한 상황을 주의회에 알리고 싶었다. 이를 위해 196537일 약 600명의 흑인들은 앨라배마 셀마를 출발하였다. 명백히 비폭력 저항 운동이었다. 그러나 무장한 경찰은 시위대를 곤봉과 몽둥이로 공격하였다. 이날 경찰의 무차별 공격은 '피의 일요일'이라는 표현을 쓸 만큼 무자비하고 폭력적이었다,

 

1차 행진이 '피의 일요일'이 되며 실패하자 당시 미국의 흑인 인권운동가로 노벨평화상까지 수상한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 목사가 셀마로 오게 되고 392차 행진을 진행하였다. 이때 많은 사람들이 2차 행진에 동참하였지만 또 다시 실패하고 만다. 2차 행진 시도 후 시위에 동조한 백인 민권운동가 제임스 리브(James Reeb)가 백인 인종차별주의자들로부터 공격을 받아 심각한 부상을 입었으나 지역 병원들이 치료를 거부하여 311일 사망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그리고 321일 전열을 재정비한 행진대가 다시 3차 행진을 진행하여 결국은 몽고메리까지 행진하는 데 성공하게 된다. 이 행진의 결과, 19658월 흑인의 참정권 제한을 금지하는 연방투표법이 통과되었다.

 

그냥 주어지는 것은 없다

 

이처럼 민주주의 사회에서 선거권은 하늘로부터 그냥 떨어진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더 나은 삶을 위한 투쟁과 그 과정에서의 희생을 통해 얻어진 것이다. 이럴진대 나에게 주어진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해야 하지 않겠는가? 내가 행사할 수 있는 한 표는 저절로 그리고 거저 얻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구원과 휴거도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다. 바로 주님의 피눈물 나는 기도와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을 망각한 채 내가 현재 누리고 있는 구원과 휴거의 축복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일 때 쉽게 포기할 수도 있게 된다. 바로 선거권의 소중함을 모른 채 그냥 무시해버리는 것처럼 말이다.

 

단테(Alighieri Dante)는 말했다. “지옥에서 가장 뜨거운 자리는 정치적 격변기에 중립을 지킨 자들을 위해 예비되어 있다. 기권은 중립이 아니다. 암묵적 동조다.” 내게 주어진 선거권을 포기하는 것이 휴거를 포기하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다고 말한다면 너무 지나친 해석일까? 선거권 행사! 그것은 바로 우리들의 삶을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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