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conomic Walk by Joo Money

‘The economic walk’ with reporter, ‘Joo Money,’ from RGO 24… He picked up a pen and began to write to testify for God’s Providence history through economics by becoming a living book of economics. Would you like to walk with the Lord on Heaven’s beautiful, mysterious economic walking trail?

칼럼_연재칼럼_The Economic Walk

인류에게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는 하나님과 성령님의 뜻

먼 옛날 플라톤(B.C. 427~347년)은 인간의 마음을 두 마리의 말이 끄는 마차에, 인간의 이성을 말의 고삐를 쥐고 목적지를 향해 이끄는 마부에 비유한 바 있다. 마부의 지시에 따라 일사천리로 움직여야 할 말이 서로 성격이 다르다보니 마차가 제대로 나아가지 못한다. 한 마리는 성격이 유순하지만 다른 한 마리는 고집불통이라 통제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 비유를 통해 플라톤은 마부의 생각, 곧 이성에 귀를 기울이지 못하면 말과 같은 감정의 충동에 이끌려 절제와 균형을 잃어버릴 수 있다고 보았다.



근대 철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데카르트(1596~1650년) 역시 플라톤과 비슷한 견해를 지니고 있었다. 그는 인간의 육체와 마음을 완전히 별개의 개념으로 보면서 인간의 이성과 감정도 서로 다른 실재로 구분하였다. 그러면서 이성의 힘을 신뢰하였고, 이성에 근거하여 모든 것을 의심해 보고, 의심할 여지없이 확실한 것을 찾아 그로부터 모든 학문의 체계를 세우고자 했다. 그 결과 내가 생각하는 내용은 오류일 수 있지만, 내가 생각한다는 것 자체는 확실하다는 결론에 이르렀고, 이를 집약하여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유명한 명제를 남겼다.


한편, 20세기 3대 천재라고 불리는 심리학자 프로이트(1856~1939년)는 ‘쾌락 원칙’과 ‘현실 원칙’이라는 개념을 통해 이러한 생각의 계보를 이어갔다. 쾌락 원칙은 말 그대로 쾌락을 추구하고 실현하려는 원초적인 욕망이다. 하지만 인간은 쾌락 원칙에 따라 살아갈 수만은 없다. 모든 욕망을 충족시킬 수 없을 뿐더러 쾌락 원칙만으로는 사회적 혼란만 발생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인간은 법과 질서를 지키며 사회의 특정한 가치를 지키는 통제 과정을 거친다는 것이 바로 현실 원칙이다. 그는 우리의 삶을 쾌락 원칙과 현실 원칙이 타협하는 과정으로 보았고, 그 타협이 의식뿐만 아니라 무의식 속에서도 일어난다고 하며, 인간의 정신을 본능적인 충동이 지배하는 ‘이드(id)’, 그것을 억압하고 통제하는 ‘초자아(super-ego)’, 그 사이에서 양자의 충돌을 조율하는 ‘자아(ego)’로 구분하였다.



이러한 이성 중심적 사고는 프로이트의 등장 이전에도 감정을 배제해야 할 어떤 것으로 치부해 버리는 계몽주의 사상, 과학의 발전 등과 맞물리면서 세상을 설명하는 압도적인 기준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그렇다 보니 18세기 아담 스미스로부터 출발한 경제학도 이성적 합리성에서 시작되었다. 경제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애덤 스미스는 이기적인 개인들이 ‘합리적인 선택’을 통해 자신의 이익을 충족시키는 것이 자원을 합리적으로 배분하여 전체의 부(富)를 증대시킨다고 보았다. 이를 고전주의 경제학이라고 하는데, 그 동안 크고 작은 부침이 있긴 했지만 1980년대 이후 미국의 레이건, 영국 마가렛 대처 정부의 집권과 함께 이러한 고전주의 경제학은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 지금까지 전 세계의 지배적인 경제 패러다임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인간의 합리적 이성에 바탕을 둔 현 경제 패러다임이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작은 바이러스 한 마리로 인해 무너져가고 있다. 글로벌화와 개인의 자유, 시장주의, 자유무역, 작은 정부 등으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 질서의 틀 속에서는 도저히 이 위기를 감당할 수 없기에, 각국 정부는 적극적으로 시장에 개입하다 못해 서로 빗장을 걸어 잠가서라도 이 위기를 타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심지어 어떤 이는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대공황 이후의 나치즘과 같은 극단적인 사상이 등장할까 두려워하기까지 한다.



그런가 하면 코로나는 현 경제 질서의 근본 토대인 인간의 이성까지 뒤흔들고 있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만 보더라도 “이 나라를 불황에 처하게 한다면 더 많은 사람을 잃을 수도 있다”며 인간의 생명보다 경제가 더 중요하다는 발언을 내뱉고 있고, 댄 패트릭 텍사스 부지사는 경제를 살리기 위해 “노인들이 기꺼이 목숨을 걸어야 한다”라고까지 말하고 있다. 심지어 영국에서는 인구의 60퍼센트 이상이 감염이 되고 자연적으로 면역력이 생길 때까지 내버려둬야 한다는 집단 면역 이야기까지 나온다. 또한 감염원에 노출되고서도 거짓말하는 사람, 감염병 관리 수칙을 무시하는 이기적인 종교, 나 먼저 살겠다는 사재기 행태, 여기저기에 펼쳐지는 아시아인에 대한 혐오 등을 보고 있노라면 인간이 과연 합리적 의사결정을 할 능력이 있는지 의심하게 된다.


이쯤 되면 코로나19가 세계 경제체제뿐만 아니라 인간의 이성적 판단능력까지 흔들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이제는 이성이라는 인간 차원의 의사결정 기준을 넘어서는 또 다른 기준이 필요한 때다. 그런 의미에서 정명석 목사님이 주일 설교를 통해 밝힌 ‘하나님과 성령님의 뜻대로’ 라는 말씀은 명확한 답을 제시해주고 있다. 목사님은 ‘뜻’은 하나님의 목적이자 소원, 계획이라고 말씀하시며 언제 어디서나 절대적인 개념이라고 하셨다. 폭풍이 불어치는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쓰러져버릴 수 있는 인간의 이성과는 달리 항상 하나님의 뜻은 무너지지 않고 변하지 않는 절대성을 가지고 있기에, 그 뜻을 깊이 기도하여 깨달을 수만 있다면 이 혼란한 현실에서도 온전한 분별의 지혜로 제대로 된 의사결정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모쪼록 현 위기가 오직 하나님과 성령님의 뜻대로 행할 수 있는 새로운 모멘텀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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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3/29/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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