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conomic Walk by Joo Money

‘The economic walk’ with reporter, ‘Joo Money,’ from RGO 24… He picked up a pen and began to write to testify for God’s Providence history through economics by becoming a living book of economics. Would you like to walk with the Lord on Heaven’s beautiful, mysterious economic walking tra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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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런히 행하여 이 시대의 병을 치유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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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갑작스런 금 태환 중지, 오일 쇼크,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 등으로 경제가 휘청거리고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전 세계가 우울하던 시기, 미국에서 아주 특이한 문화가 일어났다. 바로 ‘Long Slow Distance’라는 현상이었다. 머릿 글자를 따 ‘LSD’라고도 불렸던 이 문화는 순식간에 전국으로 퍼져나가며 젊은이들 사이에 일종의 Boom으로 자리 잡았다.


그런데 그 정체가 다소 당황스러웠다. 바로 ‘절대로 최선을 다하지 않는 달리기’였기 때문이다. 그 이전까지 무엇이든지 열심히 하는 것이 중요하며 열심히 노력하고 부지런하게 행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은 엄마의 뱃속에서부터 당연하게 여겨지던 일종의 모유 이데올로기(mother-milk ideology)였기에 LSD는 더욱 충격적이었다.


그렇다면 왜 이런 문화가 유행했을까? 그것은 더 이상 아무리 열심히 달려도 도착할 곳이 없다는 깊은 절망 때문이었다. ‘불황’이란 두 글자가 앗아간 미래 속에서 젊은이들은 절망적인 나날을 보낼 수밖에 없었고, 사람들은 아무리 열심히 해도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다는 희망의 부재 속에서 어떤 의미도 찾지 않고 단순히 즐기는 삶만을 추구했고, 그것이 LSD라는 현상으로 표출된 것이다.


2012년 독일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병철 교수가 <피로사회>라는 책을 출간했다. 이 책은 지나친 경쟁을 강요하는 현대사회의 구조 속에서 사람들이 스스로를 착취하고 고갈하는 현실을 비판하고 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 책에 열광하며 철학 서적으로는 이례적으로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다. 그만큼 사람들은 경쟁에 지쳐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런 흐름 속에서 한국에서도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오늘은 이만 좀 쉴게요>, <아무 것도 안해도 아무렇지 않구나>와 같은 책들이 유행하며 ‘대충 살자’는 생각이 마치 미국의 LSD Boom과 같이 퍼져나갔다.


게다가 지금은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집어삼키며 사람들을 더욱 깊은 절망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실업이 확대되는 것을 넘어 아예 구직 자체를 단념하는 ‘비경제활동인구’까지 증가하고 있다. 한국만 해도 4월 비경제활동인구가 역대 최대로 늘었다. 비경제활동인구가 늘었다는 것은 일할 능력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냥 쉬는 것을 선택했다는 것을 뜻한다. 그만큼 깊은 경기침체가 사람들의 희망을 앗아가고 있는 것이다.


사실 사람이 살다보면 세월의 풍파에 휩쓸리고, 해도 해도 벗어날 수 없는 굴레에 갇힌 느낌이 들면서 ‘이렇게 열심히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 때도 있다. 그런데 이런 의문을 갖는다는 것은 인생에서 무엇인가 갈증을 느끼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 갈증이 자신이 이루고 싶은 꿈과 소망의 부재가 되었든, 나라는 존재가 이 사회에서 꼭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만드는 존재가치를 잃어버린 것이 되었든, 그 갈증이 채워지지 않고서는 위의 사례처럼 사람들은 열심히 하고자 하는 욕구 자체를 잃어버리기 쉽다. 그러다보면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안되니 아예 관두자는 ‘학습된 무기력(learned helplessness)’이 만연해진다.


그런데 이처럼 희망이 사라져가는 시대에 정명석 목사님은 ‘성삼위’와 ‘휴거’라는 절대적인 희망과 함께, <부지런한 자가 얻는다>라는 말씀을 통해 무기력과 게으름이 만연한 ‘시대의 병’을 치유하는 약을 제시하고 있다. 그 말씀의 약이 말라만 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적시며 갈증을 해갈시켜줄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이 그냥 단순한 설교가 아니라 직접 행하고 이룬 실체의 삶에서 비롯된 때문이기도 하다. 즉, 그의 말씀은 아무리 노력해도 이룰 수 없는 공허한 메아리가 아니라, 부지런히 행했더니 실제로 이루어지더라는 것을 증명하는 실체의 말씀이기에 ‘대충 살아도 된다’는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는 힘을 지니는 것이다.


사실 그의 말씀대로 부지런히 행하지 않고서는 그 어떤 것도 이룰 수 없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25세에 하버드대학 철학 교수가 되며 ‘미국 지성계의 퍼스트레이디’로 불린 작가 수전 손택(Susan Sontag)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30페이지의 에세이 한편을 쓰기 위해 무려 3천매의 원고를 채워야 했고, 페이지 마다 30~40개의 초고가 필요했다.” 위대한 아이디어가 갑작스러운 유레카의 순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문제를 붙잡고 오랫동안 꾸준히 고민하며 부지런히 행한 데서 나올 수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만큼 성공은 부지런함이 뒷받침되어야만 한다. “성공(success)이 노력(work)보다 앞서는 경우는 영어사전이 유일하다’는 말과 같이 노력 없는 성공은 없는 것이다.


중국에 “예쁘지 않은 여자는 없다. 게으른 여자가 있을 뿐”이라는 속담이 있다. 이 말을 뒤집어보면 세상에 부지런히 행하여 이루지 못할 것은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생각해보면 마라톤 선수만 달리기를 하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누구나 노력하면 달리기를 할 수 있다. 그와 같이 누구나 부지런히 행하다 보면 그 노력이 모여 개인적인 꿈을 이루고, 더 나아가 하나님의 꿈도 이룰 수 있다. 항상 노력하며 부지런히 행하는 자들에게 하나님, 성령님, 성자께서는 운명의 다리를 놓아주기 때문이다. 그러한 다리를 놓아주시는 성삼위와 주님께 항상 감사드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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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5/17/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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