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conomic Walk by Joo Money

‘The economic walk’ with reporter, ‘Joo Money,’ from RGO 24… He picked up a pen and began to write to testify for God’s Providence history through economics by becoming a living book of economics. Would you like to walk with the Lord on Heaven’s beautiful, mysterious economic walking trail?

칼럼_연재칼럼_The Economic Walk

하나님께 뿌리 내려 진실한 삶을 연출하자

미국의 사회학자 어빙 고프만(Erving Goffman)은 그의 저서 <자아연출의 사회학>에서 인간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이 연극과 같다고 했다. 배우가 관객을 대상으로 무대에서 연기를 하듯 사람들은 타인을 대상으로 일종의 연극적인 소통을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연극의 목적은 타인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주는 것이다. 즉, 사람들은 연극을 통해 자신이 보여주고 싶은 모습을 드러내고, 보여주고 싶지 않은 모습은 감추면서 자신의 이미지를 만들어간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연출은 자칫 현대인들로 하여금 사회에서 살아남고 성공하기 위해 자신의 본 모습을 감추고 사회가 원하는 모습만을 보여주게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심리학자 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은 이를 자아와 관련된 ‘페르소나(Persona)’라는 용어로 설명하기도 한다. 페르소나는 고대 배우들이 극에서 쓰던 가면을 말하는 것으로, 현대인들은 사회인으로서 행동할 때 자신의 본래 모습을 감춘 채 일종의 ‘가면’을 쓰고 행동한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또한 프랑스의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도 이러한 모습을 모방이라는 뜻의 ‘시뮬라크르(simulacre)’라고 부르며, 우리의 삶이 가짜의 지배를 받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실제로 우리의 삶을 보면 오로지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한 삶에 지나치게 집중한 나머지 나의 본 모습을 감춘 채 살아가는 모습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또한 우리 사회는 어떤 집단적인 이미지에 갇혀 그 사람에게 그 집단에 맞는 이미지를 요구하기도 한다. 문제는 이 경우 한 사람의 개성이나 특성이 말살되기 쉽다는 데 있다. 뉴욕대학교의 켄지 요시노(Kenji Yoshino) 교수는 현대 사회가 대놓고 사람들의 비주류적인 개성이나 특성을 차별하고 배제하지는 않지만, 이들이 어떤 주류에 동화되기를 원하는 압력이 항상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사실 현대사회에서 겉으로 보여지는 이미지는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자신의 원래 모습이 아닌 만들어진 가식의 이미지를 보여주어야 하는 삶은 결코 진실한 삶이라고 볼 수 없다. 또한 하나님이 주신 다양한 개성체의 모습이 용광로에 녹아져 하나의 이미지로만 나타날 경우 절대 시너지가 발생할 수 없고 창조의 꽃도 피어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정명석 목사님의 <뿌리 깊은 신앙과 연출>이라는 설교는 무엇이 진정한 연출인지를 깊이 깨닫게 해준다. 목사님은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라는 반석에 뿌리를 내리는 인생을 살 때 인생이 제대로 된 연출을 할 수 있다며, 아름답고 신비하고 웅장한 인생의 연출은 삼위의 말씀을 듣고 사랑하며 부단히 노력하며 행할 때 이루어질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면서 그리스도도 심지 않는 데서 거두지 않는다면서, 부단히 성삼위라는 반석에 인생의 뿌리를 내리면서 자신을 만들고 노력해 오신 당신의 삶을 이야기하시며, 그와 같이 살았기에 지금과 같은 진실한 인생의 연출을 할 수 있다고 강조하셨다.


그런데 사람에게는 인류의 뿌리인 하나님을 찾고자 하는 본능이 내재되어 있다. 이는 ‘물유본말(物有本末)’이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다. 물유본말은 어떤 사물을 볼 때 피상적으로 보지 말고 본질적인 측면을 이해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본말(本末)이라는 단어에서 본(本)은 나무 목(木) 아래에 작대기가 하나 그어져 있어 뿌리를 상징하는 말이고, 말(末)은 나무 목(木) 위에 작대기 하나가 그어져 가지와 잎을 상징하는 말이다. 나무를 이용한 한자를 통해 겉모습 보다는 보이지 않는 근본인 뿌리를 볼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을 나타낸 것이다.



이처럼 모든 사물에 근본인 뿌리가 있는 것처럼, 인류에게도 뿌리가 있다. 그리고 그 뿌리를 찾아가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기도 하다. 이집트에서 4백년간 종살이를 한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뿌리를 잊지 않고 끝내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했던 역사를 보나, 노예로 납치되어 미국으로 온 아프리카 소년 ‘쿤타킨테’와 그의 후손들이 자신의 뿌리를 찾는 일을 일생의 과업으로 삼은 알렉스 헤일리(Alex Haley)의 <뿌리>라는 작품을 보나 인류에게는 뿌리 본능이 내재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류의 근원인 하나님께 뿌리를 내리려는 사람들을 끝까지 도우신다. 그것은 반석 위에 뿌리내리는 나무의 모습에서도 엿볼 수 있다. 그 오롯한 모습이 경외롭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지만, 사실 나무가 바위에 뿌리를 내리는 비결은 나무의 뿌리 끝에 있는 뿌리골무라는 조직에 있다.



뿌리골무는 나무의 그 어떤 조직보다 연약하지만 뿌리 끝에 달린 생장점을 부드럽게 감싸 안은 채 끈끈한 점액질을 분비한다. 이 점액질은 거친 흙을 부드럽게 만들 뿐만 아니라 주변의 미생물까지 먹여 살리기 때문에, 그 주변에는 항상 수많은 생명체가 함께 살아가는 공존의 장이 마련된다. 그렇게 작은 미생물들은 조금씩 바위 틈새로 들어가 살게 되고, 그 부드러워진 공간으로 뿌리가 뻗어 나간다.


이와 마찬가지로 인생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자들에게 천군 천사를 통해, 그리고 사람을 통해 반드시 도우신다. 혹자는 사람이 어떤 일에 노력을 기울이면, 그 일이 거꾸로 그에게 노력을 들여 그 사람을 규정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뿌리를 깊이 내려 살아 천 년, 죽어 천 년, 썩어 천 년, 도합 3천년을 산다는 주목나무와 같이 하나님께 깊은 뿌리를 내리는 삶을 통해 가식이 아닌 진실한 삶을 연출할 수 있기를 기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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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5/24/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