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conomic Walk by Joo Money

‘The economic walk’ with reporter, ‘Joo Money,’ from RGO 24… He picked up a pen and began to write to testify for God’s Providence history through economics by becoming a living book of economics. Would you like to walk with the Lord on Heaven’s beautiful, mysterious economic walking trail?

칼럼_연재칼럼_The Economic Walk

태산보다 무거운 생명의 말씀

6월 6일 ‘현충일’은 국토방위에 목숨을 바친 이들을 기념하기 위한 날이다. 즉, 국가를 위해 자신의 죽음을 무릅쓰거나 실제로 죽은 유공자들의 희생과 뜻을 기리는 날이다. 북유럽 신화에서는 전쟁터에서 용감하게 싸우다 죽으면, 고귀한 죽음을 맞은 이들의 영혼을 데려가는 아름다운 여전사 발키리(Valkyrie)가 그들을 발할라(Valhalla) 궁전으로 이끌어 축제를 벌였다고 한다. 만일 우리나라에도 발할라 궁전과 같은 곳이 있다면 바로 국립묘지 ‘현충원’ 쯤 될 것 같다. 그 곳에는 독립 유공자뿐만 아니라 한국전쟁 참전자의 수많은 영령들이 잠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현충원에 가면 그들의 희생에 감사한 마음이 들면서 자연스럽게 고개를 숙이게 되고, 삶과 죽음을 깊이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현충원에는 ‘정국교(靖國橋)’라는 이름의 다리가 있다. 여기서 ‘정국(靖國)’이라는 말은 중국의 공자가 편찬한 <춘추>를 해석한 <춘추좌씨전>에서 나오는 말로, 전쟁에 공이 있는 자를 포상함으로써 ‘나라를 평온케 한다’는 뜻으로 사용된 말이다. 그런데 ‘정국’을 일본식으로 읽으면 ‘야스쿠니’로 읽힌다. 사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수많은 전범자들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일본의 야스쿠니 신사의 이름도 여기서 따온 것이다. 하지만 <춘추좌씨전>에서 쓰인 ‘정국’이 일종의 고대 왕권 국가의 도덕률이었던 데 반해, 야스쿠니 신사의 ‘야스쿠니’는 근대 제국주의를 미화하기 위해 쓰였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사용 목적과 맥락이 다르다.


일본인들이야 야스쿠니 신사에 묻힌 이들을 애국자로 여길지는 모르지만, 사실 인류의 평화와 공존이라는 큰 가치적 틀에서 볼 때 그들의 죽음은 덧없는 죽음에 가깝다. 더구나 활짝 피어났다 한 순간에 저버리는 ‘벚꽃’의 속성을 이용해 천황을 위해 죽는 것의 정당성을 부여받기까지 했으니, 그 죽음이 더욱 가벼워보인다. ‘카미카제’로 불리는 자살 특공대원들의 군복과 군모에 벚꽃을 꽂아 넣고, 그들이 탄 비행기 옆에 벚꽃을 그리고, 여학생들이 벚꽃 가지를 흔들어 죽음의 길로 떠나는 그들을 배웅한 것은 둘째 치고, ‘의는 산악보다 무겁고 죽음은 새털보다 가볍다’는 문구까지 군인들의 강령으로 삼아 천황을 위한 희생을 정당화했으니, 실로 그들의 죽음은 이념을 뒤집어 쓴 정치, 군사적 꽃이 되어 허무하게 스러져나간 것에 불과한 셈이다. 말 그대로 새털보다 가벼운 죽음이었다.


한편, 인류의 최고 역사서로 꼽히는 <사기>를 편찬한 사마천은 ‘태산보다 더한 죽음이 있고 깃털보다 더 가벼운 죽음이 있다’며, 이는 죽음의 방향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일갈했다. 이는 남자로서 최고의 치욕인 궁형(宮刑)을 받고서도, 그것에 굴복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는 행위가 아홉 마리 소에서 털 하나 뽑는 것밖에 안 되는 하찮은 행동이라는 ‘구우일모(九牛一毛)’의 비장함을 품었기에 나올 수 있는 말이었다. 그러나 후대에 올바른 역사를 남기겠다며 치욕을 참아낸 그의 비장한 죽음뿐만이 아니라, 일본 제국주의의 거대한 힘에 맞서 민족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초개같이 바친 수많은 독립 유공자들의 죽음 또한 태산보다 무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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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중근의 어머니 조마리아(1862~1927) 여사와 안중근(1879~1910) 의사.한국일보 자료사진



“옳을 일을 하고 받은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걸하지 말고, 떳떳하게 죽는 것이 이 어미에 대한 효도이다. 살려고 몸부림하는 인상을 남기지 말고 의연히 목숨을 버리거라. 네가 만약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은 것을 불효라 생각한다면 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너 한사람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것은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짓이다.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이른즉 딴 맘 먹지 말고 죽으라. 아마도 이 편지는 이 어미가 너에게 쓰는 마지막 편지가 될 것이다. 여기에 너의 수의를 지어 보내니 이 옷을 입고 가거라. 어미는 현세에서 너와 재회하기를 기망치 아니하노니, 내세에는 반드시 선량한 천부의 아들이 되어 다시 세상에 나오너라.”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가 사형을 언도받은 아들 ‘안중근’에게 보낸 편지다. 실로 일본 군국주의의 죽음과는 죽음을 사용하는 방향도 달랐고, 그 무게 또한 태산같이 무거웠다. 과연 ‘이러한 분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우리 민족이 존재할 수 있었을까?’ 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 정도다. 이러한 맥락에서 “하나님이 우리 민족을 지켜줬다. 안 지켜줬으면 공산주의 같이 살았다. 섭리나라도 이와 같이 지켜줬다. 개인들도 이와 같이 지켜줬다”라는 정명석 목사님의 말씀이 더욱 깊이 다가온다. ‘민족이 곧 자기’라며 민족을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더 나아가 개인의 생명을 지켜준 하나님께 감사하라는 그 말씀의 깊이가 그 어떤 때보다 더 무겁게 느껴진다.


더군다나 이 말씀을 현충일인 2020년 6월 6일 새벽, 목사님께서 깊은 기도 중 영계에서 받아왔기에 그 의미가 더 깊게 다가온다. 성삼위께서 지켜주지 않았다면 존재하지 않았을 개인의 생명과 민족의 운명, 그래서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생명의 가치를 깊이 깨닫고 더욱 감격 감사하고 사랑하며 살라는 말씀이 태산보다 더 무겁게 우리의 삶에 들어오고 있다. 말씀을 주심은 깨닫고 실천하며 살라는 것이기에, 이제 우리의 사명이 있다면 그 묵직한 말씀에 우리의 삶의 방향을 맞추고, 죽는 날까지 성삼위께 감사하고 사랑하면서 더욱 가치 있는 삶을 살아야 하는 일일 것이다.


누군가 역사는 두 가지로 남는다고 말했다. 하나는 ‘뒤에 남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속에 남는 것’이라고. 기록이나 유물로 남는 것이 뒤에 남는 역사라면, 마치 소화된 음식이나 효과를 나타내는 신체운동과 같이 현재의 산 생명에 남는 것이 속에 남는 역사다. 그래서 속에 남은 역사는 살아서 우리 개인 안에 남아, 얼굴이 되고, 마음이 되고, 성격이 되고, 신앙이 되어 표출된다. 성삼위가 주신 말씀대로 살아 위대한 생명의 역사가 개인 안에 남고, 또 우리 민족 안에도 남기를 기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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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6/7/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