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conomic Walk by Joo Money

‘The economic walk’ with reporter, ‘Joo Money,’ from RGO 24… He picked up a pen and began to write to testify for God’s Providence history through economics by becoming a living book of economics. Would you like to walk with the Lord on Heaven’s beautiful, mysterious economic walking tra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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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 평화상의 꿈, 선(線)을 넘어도 선(善)으로

2019년 칸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고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개상을 휩쓴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을 보면, 부유한 박 사장 부부가 가난한 기택(송강호 分)의 가족에게 속아 일가족 모두를 고용하게 된다. 그런데 이들의 일처리는 대체로 만족스러웠지만 이들에게는 뭔지 모를 냄새가 났다. 그래서 동익(이선균 分)은 아내 앞에서 기택을 두고 “선을 넘을 듯 말 듯 하면서 안 넘어. 그런데 냄새가 선을 넘지”라는 평가를 내린다.



이후에도 동익은 “오래된 무말랭이 냄새, 행주 삶을 때 나는 냄새, 지하철 타는 놈들 특유의 냄새”라는 표현을 써가면서 자신과 기택을 구별 짓는다. 그렇게 이 영화는 빈부격차라는 단순한 사실을 마치 넘지 못할 선으로 그려내면서 사회 현실을 고발하고 있다. 그러나 영화에서 박 사장의 그러한 태도는 오히려 인간에 대한 존엄과 예의의 선을 넘어 버렸고, 그로 인해 이성을 상실한 기택이 박 사장을 죽이는 비극으로 치닫고 만다.


그런데 금년 들어 기생충의 메타포가 현실에서도 동일하게 벌어지고 있다. 바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기생충의 냄새마냥 제 마음대로 국경의 선을 넘어버린 것이다. 그러자 놀랍게도 기생충의 박 사장이 보여주었던 태도가 여기저기서 펼쳐졌다. 코로나19가 중국에서 시작되었다는 이유만으로 미국, 호주, 유럽 등 해외에서는 아시아인에 대한 언어폭력과 신체적 폭력이 급증하는가 하면, 국내에서도 집단감염의 양상에 따라 중국인, 신천지, 성소수자 등 특정 집단을 원인 제공자로 낙인찍고 혐오 표현을 쏟아내는 현상이 두드러졌다.



이러한 어수선함 속에서 지난 5월에는 미국 미네소타에서 백인 경찰이 수갑을 찬 흑인 조지 플로이드의 목 부위를 눌러 숨지게 하는 사건까지 터져버렸다. 그러자 이를 규탄하는 인종차별 시위가 들불처럼 전 세계로 번져나갔다. 이 사건은 우리나라에도 영향을 미쳤다. 지난 8월 의정부고 학생들이 ‘관짝 소년단’으로 불리는 가나의 독특한 장례문화 밈(meme)을 패러디하면서 인종차별 이슈가 불거진 것이다. 미국 남북전쟁 전후 백인 배우들이 돈을 벌기 위해 구두약으로 얼굴을 검게 칠하고 찢어진 옷을 입은 채 막춤을 선보이며 흑인 노예들의 삶을 희화했던 소위 블랙 페이싱(black facing) 논란이 일어난 것이다.


모두가 보이지 않는 선을 넘어 발생한 사건들이다. 이러한 사회적 흐름 속에서 이제는 보이는 선까지 넘어가는 사건까지 벌어졌다. 우리나라의 한 공무원이 북한의 경계선을 넘어가버린 것이다. 그 의도가 월북이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북한은 무턱대고 그를 총으로 쏴버렸다. 단순히 국경선을 넘어왔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대해 정명석 목사님은 한 생명이 죽은 것을 안타까워하시면서, 북한이 다른 때도 아니고 명절 때 조금만이라도 긍휼을 베풀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만일 북한이 그를 죽이지 않고 살려주었다면 전 세계가 북한을 재평가하면서 북한을 다시 보았을 것이고, 그로 인해 민심뿐만 아니라 북한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졌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러면서 정명석 목사님께서는 이와 같이 우리의 삶에도 선을 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는데, 그때 절대로 북한과 같이 하면 안 된다고 강조하셨다. 즉, 누군가 자기 생각의 선, 인식의 선을 넘더라도 꾸짖지 말고 긍휼히 여기며 화평하게 지내야 한다는 말씀이었다. 이는 기본적으로 기독교가 관용과 사랑의 역사이고, 섭리 역사도 사랑의 역사, 신랑과 신부의 역사이며, 하나님을 모시고 섬기는 역사이기 때문이다.



또한 성스럽고 깨끗하게 사는 성결, 조건 없이 자기 선을 넘어 베푸는 관용, 양순, 너그럽게 대하고 불쌍히 여기며 자비로움을 베푸는 긍휼의 지혜를 말씀하시면서, 이 모든 것을 쉽게 이룰 수 있는 방법이 바로 ‘화평’이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화평으로 꼭 의의 열매를 거두라고 당부하셨다. 또한 곡식을 거둘 때 힘이 들지 않게 하는 방법으로 항상 즐겁고, 기쁘게, 감사하면서, 성삼위와 함께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면서 일하는 지혜를 제시하셨다. 기쁨과 감사함으로 하나님과 같이 기뻐하면서 해야 힘이 생기고 언제 다했는지 모르게 금방 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이 말씀을 들을 때 문득 이런 이야기가 떠올랐다. 과거 영국에서 “맨체스터에서 런던까지 가장 빨리 가는 방법은 무엇인가?”라는 문제를 내고 답을 공모한 적이 있었다. 물론 적지 않은 상금도 걸었다. 비행기, 기차, 자동차, 오토바이로 이동하는 방법, 지름길을 측정하고 교통수단들을 적절하게 혼합하는 방법 등 다양한 대답이 제시되었다. 그러나 정작 1등을 한 사람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그러나 누구나 그 대답에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좋은 친구와 함께 가는 것”이었다.



이제 민족 최대의 명절 추석이 코앞이다. 코로나로 인해 예년처럼 많은 가족들이 모이기는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명절 때는 항상 반목과 갈등이 생기기 마련이다. 오죽하면 명절 이후 이혼소송이 급증한다는 통계도 있을까? 그런 맥락에서 정명석 목사님의 <화평으로 의의 열매다>라는 말씀은 개인적, 가정적인 화목을 도모하는 말씀이기도 하거니와, 민족적, 세계적으로 선을 넘어 번지는 갈등과 반목을 치유하는 말씀이기도 하다. 그것은 보이는 선(線), 보이지 않는 선(線)을 넘더라도 이를 이해하고 받아주면서 선(善)으로 대하라는 관용과 화평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이제 추석이 지나면 본격적인 노벨상 시즌이 시작된다. 노벨상은 물리학, 화학, 생리학․의학, 문학, 평화, 경제학 등 6가지 분야에서 상을 수여한다. 올해 누가 노벨 평화상을 받을지는 알 수 없다. 만일 예수님이 살아계셨더라면 당연히 노벨 평화상을 받았을 것이다. 인류를 구원할 메시아로 오셨지만 가장 많은 아픔으로 오셨던 예수님, 그러나 저들은 모르고 하는 소리니 용서해달라고 하면서 사랑과 용서로 대해주셨던 예수님, 그렇게 온 인류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놓고 가셨던 분이기에 그러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노벨상은 돌아가신 분께는 수여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시대 하나님의 일을 하시는 분, 갈등과 반목, 분쟁의 시대에 평화의 길을 내시는 그 분께 노벨 평화상을 수여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전혀 엉뚱한 상상이 아니다. 모든 길이 로마로 통했던 팍스 로마나(Pax Romana)는 평화를 뜻하는 라틴어 ‘파키스(pacis)’의 변형인 pax와 로마(Rome)의 형용사형(Romana)로 이루어진 단어로, 로마의 평화, 로마의 태평성대로 번역된다. 이를 차용하여 현대 사회는 한동안 미국의 지배에 의해 세계의 평화질서가 유지되는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 시대를 구가해왔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이 말이 무색해지고 있다. 특히 코로나 이후의 뉴노멀 시대에는 한국의 역할이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그런데 알고 보면 그 중심에 하나님의 섭리가 자리하고 있다. 때문에 앞으로는 팍스 프라비덴셜(Pax Providential), 즉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평화의 세계가 열릴 것이다. 그래서 ‘화평으로 의의 열매다’는 말씀이 새로운 꿈으로 들린다. 노벨 평화상의 꿈, 그것은 선(線)을 넘어도 선(善)으로 행할 때 가능할 것이다. 그 꿈이 이루어지길 성삼위께 간절히 기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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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9/27/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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