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conomic Walk by Joo Money

‘The economic walk’ with reporter, ‘Joo Money,’ from RGO 24… He picked up a pen and began to write to testify for God’s Providence history through economics by becoming a living book of economics. Would you like to walk with the Lord on Heaven’s beautiful, mysterious economic walking trail?

칼럼_연재칼럼_The Economic Walk

사랑으로 인생 역설을 해결하시는 주


“수천 년 동안 수백만 마리가 넘는 흰 백조를 보고 또 보면서 견고하게 다져진 정설이 검은 백조 한 마리 앞에서 무너져버렸다. 검은 백조 한 마리로 충분했다.”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Nassim Nicholas Taleb)가 그의 저서 <블랙스완>에서 한 말이다.


1697년 네덜란드 출신 선장 윌리엄 드 블라밍(Willem de Vlamingh)이 호주에서 우연히 검은 백조를 발견하기 전까지 사람들은 백조가 당연히 흰 깃털을 가졌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검은 백조가 발견되는 순간 일종의 가설과도 같았던 ‘모든 백조는 희다’라는 명제는 여지없이 깨져버렸다.



‘모든 백조는 희다’라는 명제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든 까마귀는 검다’라고 믿고 있다. 아마도 검은 까마귀가 아닌 다른 색의 까마귀가 발견되기 전까지 사람들은 계속하여 ‘모든 까마귀는 검다’라는 명제를 받아들일 것이다.


그런데 이 명제를 증명하려면 전 세계에 있는 까마귀를 찾아 그 색깔을 모두 확인해 봐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논리학은 검지 않은 까마귀가 발견될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서도 ‘모든 까마귀는 검다’라는 명제를 증명할 수 있다. 바로 ‘검지 않은 것은 까마귀가 아니다’와 같은 동치(대우명제)를 이용하는 것이다. 논리학에서 원 명제와 대우 명제의 진리치는 동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까마귀는 검다’라는 원 명제는 대우 명제인 ‘검지 않은 것은 까마귀가 아니다’라는 것이 증명되면 논리적으로 증명이 되는 셈이다.


그런데 ‘검지 않은 것은 까마귀가 아니다’라는 명제를 증명하는 증거는 무수히 많다. 하얀 신발, 빨간 사과, 노란 손수건 등등 수없이 많은 증거가 있다. 그렇다면 논리학적으로 볼 때 하얀 신발, 빨간 사과, 노란 손수건의 존재 자체가 ‘모든 까마귀는 검다’를 입증하는 데 논리적 오류가 없어야 한다.



그런데 어딘지 모르게 이상하다. 논리적으로는 모순이 없어야 하는데, 실제로는 우리의 직관과 맞지 않고 뭔가 속은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이를 ‘헴펠의 역설’이라 부른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이러한 역설이 나타나는 것일까.


이는 기본적으로 까마귀와 검은색은 서로 1:1로 매칭이 되면서 우리의 직관에 와 닿는데 반해, 검지 않은 것과 까마귀가 아닌 것은 매칭이 되는 범주가 매우 넓고 까마귀와 관련이 없는 이질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즉, 하얀 신발, 빨간 사과, 노란 손수건은 까마귀와 어떤 공통점도 없는 이질적인 묶음에 불과하다.



이 역설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어떤 명제를 증명하고자 할 때 반드시 그 증거가 절대적이거나 중요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이다. 추론에 의존하는 논리학인 아닌 엄연한 증거에 의존하는 과학도 마찬가지다. 똑같은 증거를 두고서도 서로 해석이 달라 엉뚱한 결론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인간의 행태도 그렇다. 예를 들어, 무엇을 하기 싫어하는 사람들이나 일하기 싫어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어떤 일을 할 수 없다는 증거를 제시한다. 그러면서 그 증거를 통해 자신이 그 일을 할 수 없는 이유가 입증되었다고 믿는다. 그런데 그 증거를 보면 대개 그 일과 크게 관련이 없는 것들이 많다. 일종의 헴펠의 역설에 갇히는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해 경제부터 시작하여 일상의 많은 것들이 큰 타격을 입고 있다. 사람들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다. 대표적인 것이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사람들을 만날 수 없으니 전도할 수도 없고 제대로 된 신앙생활을 할 수 없다고 여기는 행태다. 전도도, 제대로 된 신앙생활도 어렵다는 증거를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에서 찾는 것이다.


그런데 정명석 목사님은 이러한 역설을 여지없이 해결하신다. 오히려 코로나19가 개인 전도에 더 좋은 기회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전 세계 대부분이 제대로 활동을 못하고 있기에 개인적으로는 전도하기에 더 좋은 때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 기회의 때에 불을 붙이는 심정의 말씀을 전해주셨다. 예수님이 부활 후 40일 동안 제자들과 함께 계실 때 베드로에게 짧지만 강한 심정으로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셨다. 이에 주를 사랑한다는 대답에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나의 양을 먹이고 치라고 당부하셨다. 그로 인해 베드로와 제자들은 변화되었고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예수님의 일을 해 드렸다. 이 시대도 하나님과 주의 마음은 동일하다. 주님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똑같은 심정으로 나만을 사랑하지 말고 다른 사람들도 나를 사랑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당부하신다. 바로 주를 진실로 사랑하는 자들에게 구원의 일을 맡기고 시대 말씀을 주어 전하게 하며 증거하게 하고 생명들을 먹이고 살피게 하시는 것이다. 예수님을 진실로 사랑한 베드로와 마찬가지로 주를 진실로 사랑한다면 주와 같이 시대의 말씀을 전해 생명들을 오게 하여 구원을 받게 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비바람에도 꺾이지 않는 깊은 나무처럼 자신이 굳건히 서야 생명도 살리고 주를 위해 뛸 수 있기에 무엇보다 자신을 굳건히 세울 것을 말씀하신다.


요즘 ‘피봇(Pivot)’이라는 용어가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피봇의 사전적 의미는 ‘회전하는 물체의 균형을 잡아 주는 중심축’이라는 뜻이다. 이 용어는 농구에서 많이 사용되는데, <린 스타트업>의 저자인 에릭 리스(Eric Ries)가 ‘사업의 비전은 유지하면서 전략을 변화시켜 기존의 실패를 만회하는 방식’이라는 뜻의 비즈니스 용어로 활용하면서 최근 널리 쓰이고 있다.



피봇이 각광받는 이유는 많은 기업들이 코로나19로 큰 위기를 겪고 있기 때문이다. 즉, 코로나19로 인해 기존 비즈니스의 위협을 느낀 다수의 기업들이 피봇 전략을 통해 비즈니스 모델 전환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기업의 피봇 전략은 기본적으로 중심축이 흔들리지 않은 상태로 새로운 비즈니스를 시도하는 것이다. 실제로 많은 기업들이 피봇 전략을 통해 코로나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성공의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


우리 신앙에서 기본이 되는 피봇(Pivot)은 ‘사랑’이다. 정명석 목사님도 지구촌 최고의 진리는 ‘사랑’이기에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베드로에게 ‘사랑’을 물으셨다고 하셨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결국 사랑이 변하지 않으면 그것이 피봇(Pivot)이 되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것이다. 베드로도 예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니 예수님이 원하는 것을 해드렸다. 목사님도 사랑이 강해지면 실천이 강해지는 법이라며, 사랑의 표현 중에 최고 단계의 표현은 바로 생명을 살피는 것이라고 하셨다.



코로나19로 인해 처음 겪게 되는 현재의 상황이 어쩌면 누군가에는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블랙 스완같이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래서 사람들이 더 동요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명석 목사님은 그렇게 흔들리는 사람들의 신앙을 ‘사랑’이라는 피봇(Pivot)으로 잡아주시며 나의 양을 먹이고 치라고 말씀하신다. 코로나19로 인해 예전과 같이 직접 만나는 일이 힘들지라도 인터넷이나 다른 방법으로 전도하고 생명을 살필 수 있는 방법은 많다. 각자의 개성대로 할 일도 많다. 일종의 신앙적 피봇 전략을 제시한 것이다. 자칫 할 수 없다는 증거로 헴펠의 역설에 빠질 수 있었던 삶을 일깨워주신 깊은 말씀에 진실한 감사와 사랑을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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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2/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