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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국장이 들려주는 세푼칼럼! '세푼'짜리 부족한 글 솜씨로나마..... '세'상의 언어로 '푼' 주일말씀을 써 올립니다.
느리게, 그러나 미리 하기

2017-02-07|조회 642

미술에 문외한이지만 프랑스 파리의 오르세(Musée d'Orsay) 박물관을 다녀올 수 있었던 것은 행운과도 같은 일이었습니다. 


수 많은 명작들을 주마간산(走馬看山) 하듯 둘러 보던 중 본 밀레(Jean-François Millet 1814~1875년)의 '낮잠(La Siesta)' 이라는 작품 앞에서 어떤 '위압감'에 눌려 마치 얼어 붙은것 마냥 그 자리를 쉬이 떠날 수 없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분명 '강제'하는 듯 강한 느낌이었지만 지극히 평온했던...평소 느껴보기 힘들었던 그 감정은 과연 무엇이고 어디서 왔는 지 선뜻 이해 할 수 없었습니다.


밀레라는 '대 작가'의 '명작' 이라는 선입관에 위압 당했나 보다 하고 말았던 것을 최근 다시 생각해보면서 그 그림에서 전혀 '속도감'을 느낄 수 없었던, 그래서 치열한 속도전에서 살아남기 위해 뛰다니던 나의 모습과 완전히 동떨어진, '이질감'과 동시에 큰 '힐링'을 경험했었던 것이라고 결론 지을 수 있었습니다.


어떤 이가 '속도'가 하나의 파시즘 처럼 전 세계를 지배해 나간다고까지 말했을 만큼, 현대는 '속도'의 시대입니다. 스피드 경영이 되어야 하고 속전속결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환경의 변화 속도가 가공(可恐)할 지경이니 그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우리의 활동도 빨라야만 하고,이 속도전에서 뒤쳐지면 바로 도태가 되는 시대입니다.


하지만 과연 '빠른 속도'가 능사인지, 그 폐해는 없는지 짚어 갈 필요도 있습니다.


두 발로 걸어 지나는 '꽃 길'과 KTX를 타고 스쳐 지나가는 '꽃 길'은 전혀 다를 것입니다.

꽃 하나 하나를 쳐다 보는 관조의 여유, 아름 다운 향기에 취해 볼 수 있는 여행의 기쁨을 KTX를 타고서는 누릴 수 없을 것입니다.


'느림'이야말로 '세계'에서 받는 '인상(Impression)'의 농도를 진하게 수용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도구입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그렇게 빠른 속도로 살려고 하는 궁극의 목적도 이 후 '느리게' 살 수 있기를 바래서 입니다.


느리게 살고 싶어 속도를 추구한다는 모순이 현대인들의 삶을 혼란케하고, 알지 못 하는 스트레스 속에 우리를 몰아 넣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실제 행복지수 높은 국가들의 공통점 중 하나는 '속도'에 대한 스트레스가 덜한 나라들인 것도 이 논리의 방증 중 하나일 것 입니다.


그렇다면 말씀에서 강조하고 있는 '빛보다 빨리 실천 하는 삶'의 요체는 과연 무엇일까요?


첨단,혁신의 아이콘 중 하나인 애플이라는 기업의 창업주 스티브 잡스는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높았던 사람입니다.

이가 아이폰을 통해 대 성공을 거둔 것은 당시 여타 휴대폰 제조 경쟁 업체와 마찬가지로 휴대폰 제품의 기능이나 속도를 두고 바쁘게 기능을 업데이트 하는 노력은 접어 두고,

경영적 현안에서 한 걸음 물러나, '시장 조사'가 아닌 '인문학적 관점'에서 '패턴'을 읽고 소비자 니즈에 앞서는 미래의 제품(손 위, Palmtop 컴퓨터로서 '스마트 폰')을 '미리' 출시 했기 때문입니다.


아르키메데스가 "유레카!"를 외칠 수 있었던 것도 실험실에서 이런 저런 실험을 서둘러 바삐 진행하는 동안 해답을 찾은 것이 아니고,

잠시 연구실을 떠나 목욕탕에서 번잡함을 지운 '여유'를 가졌을 때 였습니다.


'느리게 하기'는 게으르게 실천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쁨 속에 잠시 자기를 비우는 '여유'를 가지고 '영감(靈感) 얻기'를 추구하는 과정입니다.


이 '느림과 여유'는 결국 '자기를 비우는 과정'이며 이것이 정명석 목사께서 강조하시는 '자신의 주관을 버리고 주를 머리 삼는 것'과 매우 관련있습니다.


이를 통해 '빛의 속도보다 빨리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힌트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빨리 실천하기 위해 현재 내 수준과 나의 여건 속에서 더 빨리, 더 서둘러 한다고 해서 빛 보다 빠른 속도를 내기는 어려운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차원을 넘어서서 전혀 다른 수준과 차원의 실천을 '미리'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빛 보다 빠른 실천의 방법입니다.


이 점에서 정명석 목사께서 전해 주신 금주 말씀은 참으로 통찰력 깊은 말씀입니다.


아예 내 차원과 수준을 넘어서는 방법으로 내 인생의 궁극, 최고의 경지를 지금 당장 '미리' 살 수 있어야 한다는 말씀.

내 생각을 벗고 오직 성삼위를 머리 삼고, 성삼위 주와 같이 사는 삶.

인간 최고의 도전과 실천, 궁극의 삶이란 결국 삼위와 같이 사는 삶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한 삶을 당장 지금부터 '미리'살기 시작한다면 빛 보다 빠른 실천의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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