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망증 그 이후

날개단약속|2017-03-27|조회 888

 

 




요즘 나를 두렵게 하는 증세를 '포스트 건망증'이라고 설명해야 하나? 

건망증이 심해져서 잊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리는, 마치 컴퓨터에서 실수로 삭제한 파일을 넣은 

휴지통까지 없애버린 것처럼 대책 없는 상황이 종종 발생한다.


냉동실 청소를 하다 지퍼락 속에서 퀼트 지갑을 만들려고 사둔 천 조각과 부속품들이 나왔을 때, 

이미 한 계절이 지났고 바느질은 쳐다보기도 싫은 노안이 와있었다.


이웃의 어느 분은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사용한 카드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1주일이 지난 후에야 알고 

신고하니 2만 원만 인출이 되어있어 너무 다행이었다며 오히려 한턱을 내기도 했다.


『<인간의 무지>는 두 가지다. <모르는 무지>가 있고, <알았는데 잊어버린 무지>가 있다.』

라는 설교 대목이 떠올라  

"오 ~ 주여 <알았는데 잊어버린 무지>라는 신버젼의 무지에 빠지지 않게 정신을 더 집중하게 

해주세요." 라고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성경에 무지했던 베드로가 오직 말씀으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알아본데 반해 성경에 밝았던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관점으로 그를 못 박게 하지 않았나? 알았으나 잊어버린 것들이 초래한 결과다.


몰랐던 것을 깨닫는 것도 중요하지만 알고 있던 것의 가치를 상실하지 않는 것도 매우 절박한 문제다.

그에 비하면 육신의 나이가 들어 건망증이 늘어가는 것은 자연의 순리를 따르는 부분이지 않을까 

스스로를 위로했다.


사실 난치성 질환이 되어버린 나의 건망증이 요즘 머리를 평화롭게 해주기도 한다는 걸 인정하게 되었다.

쓸데없는 걱정 근심은 잊어버리고 골몰하던 문제들은 주께 맡기며 쉽게 마음을 비우게 되었다. 

창조주께서 만드신 인간의 뇌이기에 뜻 없는 것은 없지 않나 싶다.


물론 나의 '포스트 건망증' 증세가 처음엔 극심한 충격을 주긴 했다.

그래서인지 예전에 어느 선배의 어머님이 목사님께 

"목사님, 왜 사람은 이렇게까지 쪼글쪼글 늙어야 할까요?"라고 질문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사실이 힘들어지는 때였지 싶다.


그때 목사님은 "그래야 아깝지 않지요."라고 답하셨다.


'아~ 그렇구나. 좋은 가죽 가방도 헤지도록 쓰고 버려야 아깝지 않듯 하나님은 우리에게 훌륭한 육체를 

선물하셨구나.'하며 20대 초반이었던 나는 그렇게 이해했었다.

우울한 심정으로 병들고 약해지는 육체의 한계를 고민하는 이에게 비록 청춘의 아름다움은 잃었지만 

그토록 미련 없이 육체를 써버릴 삶의 목적이 있다는 걸 일깨워주신 목사님의 답변은 지금 생각하니 더 

가슴에 와 닿는다.


우리는 하나님의 관점이 아닌, 자기를 중심하여 '필요한 것'과 '잊어버려서 안 되는 것'들을 정의하고 있는 건 아닐까?

더구나 하나님이 목적하신 바를 이루는 인생살이에 필요 없거나 잊어버려서 오히려 유익이 되는 것은 

더 이상 '무지'의 범주에 속하는 것이 아니니까.


냉동실에서 발견한 퀼트 패키지는 나의 퀼트 소품을 부러워하던 동생에게 건네졌고, 카드를 분실했던 

이웃은 더 넉넉한 씀씀이로 신세 졌던 친구들을 대접하며 하나님께 감사했다.


오늘도 지나치게 뭔가를 잃지 않으려고 귀한 뇌를 괴롭히지는 않는지, 하나님이 만드신 인생의 소중한 

가치를 잊지 않도록 하는 <감사>와 <기쁨>, <희망>과 <사랑>이 내 안에 잘 자리 잡고 있는지, 

확인 또 확인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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