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_설교말씀

오직 하나님과 예수님만 주가 되고 주님이 된다

본문 .

[본 문]

에베소서 4 : 1 - 6 ,  4 : 11 - 12

 


전능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주님의 사랑과 평안을 빕니다. 

한 주일 동안 하나님의 뜻 속에 살며, 어려운 가운데 자기 인생들을 사느라 정말 수고 많았습니다.  힘들고 어려워도 믿음을 굳건히 하여 하나님의 뜻 속에 주님을 모시고 사는 것이 현재도, 미래도, 그 얼마나 희망과 보람된 삶인 줄 깨닫고 감사하며 살아야 되 겠습니다. 

오늘 말씀의 주제는 “오직 하나님과 예수님만 주가 되고 주님이 된다.”입니다. 
바울 선생은 하나 되지 못한 분열된 에베소 교회에게 말했습니다. “주 안에서 갇힌 자 된, 나 바울이 너희를 권고하노라. 너희가 주의 부르심을 입었으니 모두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과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켜 행하라. 성령도 하나, 주도 하나, 하나님도 하나요.”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또 말하기를 “주님이 각 사람에게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을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로, 혹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 안에서 서로 봉사하고 성도들을 온전케 해 주고 그리스도의 몸이 되어 살게 하려 함이니라.”했습니다. 

주님이 바울을 통해 말씀하신 깊은 말씀입니다.  바울을 통해 성령으로 감동시켜 주님께서 말씀하신 깊고 깊은 말씀이었습니다.  이제 우리 모두에게도 이 말씀을 풀어주며 전해 주신 말씀을 듣겠습니다. 

우리는 모두 부름을 받아 왔습니다.  부름을 받은 자는 그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살아야 된다고 했습니다. 겸손해야 되고 온유해야 되고 오래 참아야 되며, 사랑으로 서로 용납하고 용서하고 이해하고 서로 심정을 알아주며, 평안과 성령의 감동으로 주님께서 말씀을 주어 그동안 성령으로 하나 되게 한 것을 이제 힘써 지켜야 됩니다. 

하나님도, 성령님도, 주님도 모두 각각 한 분으로 범사에 하나 되게 하는 일을 하십니다.  하나 되지 않는 자는 하나님과 성령님과 주님의 바깥에 있는 자입니다.  

주님을 구주로 믿고 사는 우리는 만물을 주관하고 다스리고 새롭게 하고 하나님과 주님의 뜻을 펴며 주님의 몸이 되어 살도록 개성대로, 그 그릇대로, 수고하고 충성하는 대로 사명을 받았습니다.  어떤 이는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복음 전하는 자로, 관리하는 자로, 말씀을 가르치는 자로, 중고등부 교사와 유초등부 교사들로 주었습니다. 

이는 주를 믿고 하나님을 존귀히 여기고 영광을 돌리며 성령의 감동 속에 시대의 뜻을 펴면서 굳건하게 살도록 하기 위함이며, 성도들을 온전케 하기 위함입니다. 주님의 몸이 되어 살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이제 하나님과 주님을 알고 주님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온전하고 충만한 삶을 살고 성장된 자로서 삶을 살아야 됩니다.  어린아이같이 모르고 살아서 세상 모든 유혹에 빠져 세상의 그릇된 교훈과 풍조와 교리에 빠져 살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주님에 대하여 온전히 배웠고 성경을 더욱 온전히 배웠으니, 말로만 증거하고 가르치지 말고 행함으로 가르쳐 그들로 행하게 해야 됩니다. 말로만 가르치 면 듣는 자도 말로만 가르치고 따라옵니다. 행동으로 참고 견디며 온유함으로 사랑하고 용서하고 희생하고 봉사하며 의의 삶을 살며 몸으로 전해야 이를 보고 따르는 자들도 몸으로 가르치면서 따라옵니다.

누구든지 자기에게 갖은 해를 주어 손해를 보게 만들고, 온갖 미움과 거짓으로 음모하여 괴롭히는 원수에게 해를 주지 않고 참고 산다는 것이 그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애간 장을 태워봐야 압니다.  마치 지옥에서 고통을 겪으며 참는 것과 같습니다.  40일을 금 식하며 배고픔을 참는 것 같은 고통이 있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며 산 자들은 속에서 심정이 타고 애간장이 타는 고통을 각각 겪었을 것 입니다.  집에서나 생활 가운데 모두 겪어 보았지요?  작은 일이나 큰일이나 속상하고 화날 때 참는 것은 정말 힘들지요?  못 참고서 폭발하여 서로 싸우게 되고, 서로 토라 지게 되고, 말도 않고 더 화가 나서 떨어져 나가 살기도 했을 것입니다.

주님은 “원수를 사랑하라.”했습니다.  주님은 말뿐 아니라 온 인류에게 손해를 주는 주님의 원수를 사랑했습니다.  그 원수들은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원수였습니다.  온 인류를 구원하는데 손해를 주는 원수였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 고자 말씀을 전하여 믿게 하고 행하게 하여 구원을 시켜 지상천국을 이루며 살아왔는 데, 아무 죄 없는 예수님을 갖은 모함과 거짓으로 음모하여 이스라엘의 모든 자들이 그 말을 믿게 하였고 결국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 얼마나 억울하고 원통하고 분통하고 화가 나고 분노가 치솟고 참을 수 없는 일이겠 습니까?  정말로 나쁘고 악한 자들이며, 죄인 중에 최고 죄인들이고, 사탄과 귀신같은 자들로 주님에게 악질적인 말들을 퍼부었습니다. 

이에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희를 멸할 수 없어 그냥 있는 줄 아느냐. 아버지께 기도하여 하늘의 천사를 보내어 너희를 다 멸할 수 있건만, 그같이 하면 원수들로 인하여 일어난다고 한 선지자들의 예언이 어떻게 이뤄지겠느냐.”하였습니다. 

주님도 참고 견딤으로 원수를 저주하며 멸하지 않았습니다.  이같이 행하시고 “너희도 원수를 사랑하라. 해를 주지 말고 저주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지키는 자만이 그 정신이 우리의 정신이 되고, 우리 몸이 주님의 몸이 되어 쓰이며 살게 됩니다. 

악한 자와 악평 자들의 말을 듣고, 마음에 그 말을 믿고 버리지 않고 가슴에 두고 사는 자는 악한 자의 몸이 되어 사는 자입니다.  사탄과 가인의 몸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머리에 두고 마음에 두고 사는 자는 주님의 몸이 되어 사는 자들입니다. 택한 자요, 구원을 받은 자들입니다. 

지금도 악한 자, 악평 자, 거짓말을 하는 자들의 말을 듣고 마음에 두고 사는 자는 그 악한 자의 몸이 되어 날마다 사는 자입니다.  어서 버리고 선한 자가 말한 주님의 말씀 을 믿고, 그 말씀을 머리와 마음에 두고 실천하며 살아서 주님의 몸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바울 선생은 “그리스도와 더불어 주님과 같이 매일 나는 죽노라.”했습니다. 여러분들도 매일 죽어 주어야 자기와 그를 사망의 길로 가지 않게 하고 생명의 길로 가게 합니다.  복음을 전해주고, 가르쳐 주고, 관리해 주고, 참아 주고 인내하며, 지옥의 고통을 대신 받아 줘야 자기도 그들을 살립니다.  생명의 길을 열어주는 것입니다. 주님의 몸이 되어 살아 줘야 됩니다. 

그리스도교는 고생 되어도 생명 길로 가는 종교입니다.  주님부터가 그렇게 살다가 죽었습니다.  세상은 악하고 죄인들의 세상이므로 그같이 해야 구원이 이루어집니다. 

세상에서도 고통과 수고와 몸부림을 쳐야 자기 원하는 것이 얻어지듯이 신앙세계 안에서도 그러합니다.  괴롭다고, 혈기난다고 원수에게 해를 주었으면 심판 날에 심판을 받고 지옥의 고통을 받게 되어 하나님과 주님이 원하시는 영광의 길을 가지 못합니다. 

주님은 원수들이 해를 주며 갖은 거짓과 음모로 죄인 취급하여 죽였지만, 대신 십자가 를 져 주어 살렸습니다.  안 믿는 자들과 죄인들만을 위해 십자가를 진 것이 아니라 자기를 믿는 자 모두를 위해, 만민을 위해 져 주었습니다.  그의 공로로 주를 믿으면 그로 구원 길을 가게 된 것입니다. 

결국 온 세상을 복음의 세계로 펴 나가게 되었습니다.  영광의 길을 갔습니다.  십자가 무한 영광의 길이 되었습니다.  주님은 다시 와서 천년동안 왕 노릇 하면서 지상천국을 이룬다고 했습니다.  희망으로 주의 몸이 되어 사는 자들을 부르사 지상천국에 참예하 게 하시는 것입니다. 

구약 때 아브라함을 보고 “주여”라고 부르며 ‘주’라고 했습니다. 
창세기 23장 5-6절에 『헷 족속이 아브라함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내 주여 들으소서』라고 했습니다.
또 창세기 23장 14-15절에 『에브론이 아브라함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내 주여 내게 들으소서』라고 했습니다. 

‘주’는 ‘주인’이라는 말입니다.  자기들의 주인을 높인 말이 되기도 하고, 신앙적 으로 보면 중심인물이니 그들 앞에 세운 그 당세의 주인이 되었기에 “주여”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시대에서는 아브라함을 보고 ‘주’라고 안 불렀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라고 부르며 중심자로 부릅니다. 

그 사람의 자녀들만이 그를 아버지라 부르고 어머니라 부르지, 다른 사람은 그렇게 안 부릅니다. 자녀들은 아버지라고 부르나 그 아버지인 할아버지는 그를 아버지라 부르지 않고 ‘아들’로 부릅니다. 이때는 오히려 그를 보고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아들 ----> 아버지 ----> 할아버지
                  (아들) <----  (아버지)

각 신흥종교들을 보면 그 종교를 시작한 자들을 보고 “주여”하며 메시아로 불렀습니 다.  그러나 그들에게만 해당되는 주인이지 다른 자들에게는 주인이 될 수 없습니다. 자신들을 이끌어주는 자를 주인으로 여기고 ‘아버지’, 혹은 ‘주여’라고 부릅니다. 자기를 낳은 부모를 아버지라 부르며 부모님 부르듯 했습니다. 

이와 같이 보다가 그를 온 인류가 기다리는 성경에 나오는 재림주 메시아로 보고, 예수 님이 다시 온다는 성경의 주인공으로 보고 가르쳐 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종교에 서 당세에 끝나고 말았습니다.  자기 아버지를 온 세상 사람들의 아버지로 가르친다면 믿겠습니까?  혹시 양자로 가면 아버지라 부를 것입니다.  이치를 깨달았지요? 메시아로 보고 따라갔는데 모두 그 안에서 끝나고 말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오직 주님만이 알파와 오메가임을 확실히 믿고 가야 됩니다. 처음도 주님, 나중도 주님이라는 말입니다. 

어떤 집에 열 명의 아들이 있어 자기를 낳은 자를 아버지로 보고, 자기 주인으로 보고 “주여”라고 부를지라도 집안에 할아버지, 할머니, 고모, 이모, 숙모, 삼촌들은 자기가 부르는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안 부릅니다.  할아버지는 “내 아들아. 이리 와. 이것 좀 해. 요강 좀 비우고, 청소 좀 하여라. 어찌 애들만 시키느냐.”하고, 할머니는 “딸아. 오늘 산에 가서 나물 좀 뜯어 보리밥을 하여 비벼 먹자.”고 합니다. 

누구든지 주님, 예수님 앞에는 신앙의 부모가 못 됩니다.  주님의 자녀입니다. 지체밖에 안됩니다.  본문 말씀대로 사도, 혹은 선지자, 전도자, 목사, 교사밖에 안됩니 다.  그것도 충성하여 주님이 사명을 주어 된 것입니다.  주님만이 온 인류의 신앙의 부 모가 되시고 주님이 되십니다.

구약에서는 다윗 왕이 하나님을 부를 때 ‘주여’, 혹은 ‘주 하나님’으로 가장 많이 불렀습니다.  시편을 읽어 보면 다윗의 시 첫 장부터 나옵니다.  오직 하나님을 자기의 주인이라고 하며, 천상천하 천국과 온 우주와 땅의 주인으로 불렀고 구원자로 불렀습 니다. 

다윗은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만 의지했습니다.  고로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지 않을 수 없어 범사에 돕고 늘 함께 행하여 다윗이 가는 곳마다 기적이 일어나게 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기록해 놓고 시로 읊어 놓았습니다. 

하나님만 의지하고 주님만 의지하면 이 시대도 그러합니다.  혼자 가도 청중이 가도 하나님과 주님만 의지하면 하나님과 주님이 늘 함께 하여 표적이 일어나 가슴이 뜨겁 게 깨달아져 늘 기록할 것이 있고, 간증하고 외칠 것이 있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을 부를 때 ‘주여, 주 하나님’으로 불렀다고 했는데 시편을 찾아보겠 습니다. 

(시 3:3)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니 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방패가 되어 주셨습니다.  방패가 되어 주시지 않았는데 그렇게 말하 고 기록하지 않습니다.

(시 7:1)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주께 피하오니 나를 쫓는 모든 자에게서 나를 구하 여 건지소서』
환난 때에 어디를 가야할지 막막할 때, 결국 하나님밖에 피할 곳이 없었습니다.

(시 44:2) 『주께서 주의 손으로 열방을 쫓으시고 열조를 심으시며 주께서 민족들은 괴롭게 하시고 열조는 번성케 하셨나이다』

(시 44:26) 『일어나 우리를 도우소서. 주의 인자하심을 인하여 우리를 구속하소서』

(시 45:6) 『하나님이여 주의 보좌가 영영하나이다』
하나님이 행한 것임을 확실히 알고 영광 돌렸습니다.  사람들은 사람이 행하니 사람만 중심합니다.  하나님은 그같이 생각하는 자는 미련하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통해 쓰기에 사람의 몸과 마음만 잠깐 쓰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기도하므로 응답하여 주신 것입니다. 

(시 44:7) 『오직 주께서 우리를 우리 대적에게서 구원하시고 우리를 미워하는 자로 수치를 당케 하셨나이다』

(시 44:18) 『우리 마음이 퇴축지 아니하고 우리 걸음도 주의 길을 떠나지 아니하였 으나』
모두 주님의 길에서 떠나지 말아야 됩니다.  이외에도 시편이나 구약 성경에 하나님을 주로 부른 것이 많습니다. 

신약성경을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을 보고 “주여”라고 많이 불렀습니다. 특히 사도 바울선생은 예수님을 보고 “주여” 라고 제일 많이 불렀고 성경에 기록했 습니다. 

(마 16: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모든 자들이 주님을 제대로 몰랐는데 베드로는 예수님이 물어보았을 때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했습니다.  확실히 알고 깨달았습니다. 

여러분들도 이같이 주님을 그리스도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임을 고백할 뿐 아니라 그 주님만 주인으로 구세주로 모시고 그의 몸이 되어 살아야 완전한 신앙이 됩니다. 그 터전 위에 전도하고 교회를 세워야 사탄과 마귀와 귀신들이 못 뺏어가고, 악한 자들 도 못 뺏어가고 계속 번창하고 창대케 됩니다.

전도하면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확실히 가르쳐 줘야 됩니다.  그 나머지 말씀은 이를 빛나게 하는 말씀입니다. 그래야 주님이 관리해 주시고, 그 사람도 신앙의 뿌리가 확실히 박혀 믿음이 무너지거나 깨지지 않고 변함없는 마음과 믿음으로 굳건히 살게 됩니다.

(마 16:22)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간하여 가로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 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사람들이 악평 자의 말을 듣고 예수님을 불신하여 시대의 운명이 기울어지자, 주님은 이방에 나가 복음을 펴시다가 예루살렘으로 들어 와 발길을 옮기셨을 때 베드로는 막았습니다. “주여 가면 안됩니다.”하며 막았습니다. 

주님은 십자가의 길이라도 마지막으로 가서 만민을 살려야 되는데, 사탄이 베드로를 통해 막는 것을 아시고 “사탄아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하시며 물리치시고 예루살렘으로 들어와 십자가 길을 가셨습니다. 결국 만민을 대신하여 죽어 주어 생명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사탄은 이방에서 복음을 펼 때도 주님의 길을 막았으며, 또 시대의 운명이 기울어져 조건을 세우고 구원하러 가는 길도 제자를 통해 막았던 것입니다.  이에 주님은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라고 하시며 사탄도 그 주관 받는 베드로도 책망하시 고 생명의 길로 행하였습니다. 

무지로 행하면 사탄과 귀신이 그를 통해 역사하여 말실수하게 하고 가는 길을 막는 것 입니다. 
구약시대에 아브라함을 따르던 자들이 주인 의식을 가지고 아브라함을 “주여”라고 부르듯, 이 시대는 선생을 그같이 부르면 안됩니다. 구약시대가 아닙니다. 또 하나님을 “주여”라고 부르며 예수님을 “주여”라고 부르는데 선생을 감히 그같이 부르면 안 됩니다. 

아버지는 집안의 어른이요, 집안 대통령입니다.  나라의 어른이 아니고 대통령이 아닙 니다.  대통령 앞에 자기 아버지를 이 나라의 국부요 대통령이라 하며, 자기 어머니를 이 나라 국모라 하면 대통령이 웃고 국모도 웃을 것이며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는 ‘너는 나를 기절하여 넘어지게 하는 자’라고 할 것입니다. 

인간은 보이는 자만 집중하고 생각하고 쳐다봅니다. 그런 자는 육적인 자입니다. 영적 인 자는 영이 되시고 안 보이는 주님을 중심하는 자입니다. 이런 사람일수록 영적인 신앙인입니다.
주님이 사람을 쓰고 나타나면 그 사람을 “주여!”하며 좇게 되고 잡게도 됩니다. 그리고 주님이 그를 쓰고 환상으로 보이면 그를 끌어안고 “주여!”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그가 주님은 아닙니다.  잘못되면 그를 주님같이 보며 따라다니게 됩니다. 

예수님이 역사하실 때 예수님을 주님으로 볼 줄 알아야 되고, 그가 사랑하여 주님이 쓰는 사명자들과 충성자들을 보고 “주여”로 부르면 안됩니다.  주님만을 주님으로 불 러야 됩니다. 

주님이 사람들을 쓰고 역사하면 보이는 것이 사람이니까 사람을 “주여”라고 부르며 따라갑니다.  주님이 그 지도자에게 역사하면 주님과 같이 보이나, 그는 주님이 쓰는 자입니다.  제자요, 사도요, 선지자요, 목사요, 전도사들입니다. 

그리스도는 머리요, 우리는 지체입니다. 그리스도는 제사장이요, 우리는 하나님께 제사 를 드리는 자들입니다. 

주님이 머리라면 주님을 메시아로 믿고 따르는 모든 교파들은 지체입니다.  장로교, 성결교, 감리교, 침례교 외에도 각 교파가 많습니다. 주님 앞에 모두 지체들이며, 각 개인 도 지체들입니다. 

주님은 그때그때마다 필요한 사람의 몸을 쓰고 나타나 역사하십니다.  그렇다고 주는 아닙니다. 모두 쓰고 나타나서 말씀도 전하게 하고, 전도도 하며 각종 표적이 일어나게 할 것입니다. 주님의 몸이 되어 오늘 본문처럼 살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말씀은 에베소서 4장 11-12절로 주님이 우리에게 사도, 선지자, 복음을 전하는 자, 목사, 교사로 세운 것은 성도를 온전케 해 주고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함이며, 우리 몸이 그리스도의 몸이 되게 하려 함이며, 그리스도 예수의 몸을 빛나게 하고 높이 튼튼하게 세우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주님이 자기를 통해 나타나면 자기를 세우지 말고 주님을 세우고 높이 증거 해야 됩니다.  주님이 한 뜻이 있어 자기를 통해 나타나면 자기를 세우고 스스로 높아지면 안됩 니다.  따르는 자들도 그를 중심하면 주님은 멀어집니다.  결국 인간을 중심한 역사가 되고 교파가 됩니다.  구원까지 상실됩니다. 

사람들이 자기에게 “주여, 주여”한다고 자기를 중심하게 됩니다.  알고 보면 주님을 보고 하는 것입니다.  이를 바로 깨닫고 가르쳐 주며 신앙을 바로 넣어 주어야 주님의 몸을 우리 몸을 통해 세우고 나타내게 됩니다.  주님이 뜻이 있어 순간 그를 통해 역사 함을 깨닫고, 사람은 주님께 순간순간 쓰여 지는 몸인 것을 깨닫고 주님을 중심해야 됩 니다. 

약한 자, 아픈 자를 위해 기도해 줄 때 주님이 역사하십니다. 이런 때 사탄이 그를 통해 나타나 ‘내가 주다. 메시아다. 재림주다.’합니다.  주님이 쓰고 가면 사탄이 틈타게 됩니다.  사탄이 역사하여 그 같은 느낌이 와도 오직 주님만 중심하면 됩니다. 

“내가 바울이다. 성령이다. 예수다.”하는 자들의 말을 듣고 속지 마요. 잠깐씩 쓰임 받은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성도들에게 봉사하라고 세웠다. 주께서 쓰셨다.”고 했 습니다. 잘못된 종교들은 이를 모르고 지도자를 보고 “주여, 주여”하고, “재림주다. 메시아다.”하며 따라갑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시고 주님이 역사하시면 “내가 하나님 이다. 내가 메시아다”하고 말하게 됩니다. 

주님은 신앙적 신랑이요, 그를 맞은 자는 신부입니다.  찬송가에도 신랑 되신 예수님이 나오고, 성경에도 예수님을 신랑으로 비유했습니다.  열 처녀 중에 다섯은 슬기 있고, 다섯은 미련하다고 했습니다.  오늘 말씀으로 볼 때, 이를 모르는 자가 미련한 자입니 다. 

그릇된 종교를 이단이라고 잔인한 말을 붙이기보다 주님을 제대로 모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제대로 알고 전도되면 잘 가르쳐 줘야 됩니다.  지도자가 잘못 가르쳐 주기 때 문에 제대로 가르쳐 주지 못하는 것입니다. 

바울 선생은 이런 것들을 잘 가르쳐 주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 흔적을 몸에 가졌다. 내가 날마다 죽는 것은 그리스도를 나타내기 위함이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져라. 예수 그리스도가 강림한다. 사나 죽으나 주님만 위해 행하라.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주가 사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사도요한은“그리스도가 육체로 오심을 부인하는 자가 적그리스도다.”라고 했습니다. 유대 종교인들이 예수님은 인간이라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말했기에 그에 해당되게 말 씀한 것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가 하늘로부터 온다고 하며 하나님이 온다고 믿었고, 여인에게서 난 자는 주가 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동정녀 마리아 여 인의 몸을 통해 육신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하나님과 예수를 부인하는 자가 적그리스도라고 했습니다. 

어떤 종교든지 어떤 교파든지 예수님을 구원자로 중심하며 믿고 그 이름으로 기도하지 않으면 온전한 종교가 아니며 이단입니다.  사도요한이 말한 대로 적그리스도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대로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어 사는 자들은 사도, 혹은 선지자, 목사들입니다.  그것도 주님을 메시아로 믿고 살아야 됩니다.  어떤 곳에도, 어떤 말에도 속지 않도록 예수님이 확실히 가르쳐 주셨습니다. 

주 안에 지체이며, 주 안에서 주인의식을 가지고 목회자들과 각종 개성의 사명자들을 대해야 합니다.  모두 이를 인식하고 사명들을 행해야 됩니다. 

시작도 주님이 하였고 끝도 주님이 인도해 가십니다. 
부흥되고 창대케 되려면 주님을 잘 증거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존귀히 모셔야 됩니다.  주를 메시아로 잘 가르쳐 구원의 필요성을 갖게 해 주고, 말씀을 잘 전하여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도록 해 주고 역사하게 해 줘야 됩니다.  주님이 수시로 역사하여 병도 낫게 해주고 만사형통하게 되도록 해 줘야 축복을 받고 잘 되니 모두 밀려옵니다. 

모두 주의 몸으로 쓰이고 주님이 자기와 동행하며 살도록 주님의 마음으로 말씀을 전 하며 실천으로 가르치며 나갈 때 주님은 수시로 역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성령의 감동 감화하심과 주님의 사랑하심과 그 진리가 충만하고 범사 에 형통하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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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8-12-08 오후 11:44: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