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_설교말씀

알고 제대로 가르쳐 주어야 관리하기 쉽다

본문 .

[본 문]

야고보서 3 : 1 - 5

누가복음 6 : 27 - 30,  6 : 40

마태복음 7 : 28 - 29

 


주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로 평강을 빕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줄 때 보람이 있고, 배울 때 보람이 있고, 실천할 때 보람이 있습니다.


성경을 통해 주님이 제자들을 가르친 것을 보면 자세하고 쉽게 설명해 주셨고, 말씀하신 즉시 이해되고 감동되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몸소 행하시면서 그 환경에서 보이며 가르쳐 주셨습니다. 


성경 말씀대로 그같이 행하면서 성경을 보면 빨리 이해되고, 감동과 함께 얻어지게 되고,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하고, 주님의 심정과 말씀이 전하는 자의 입에서 줄줄 나오게 됩니다. 


무슨 음식을 먹으면 어디 건강에 좋은지 구분되어 있듯이, 말씀의 내용에 따라 정신적 변화와 행실의 변화가 각각 다르게 일어납니다. 자기 체질에 맞지 않는 음식을 먹으면 오히려 병이 오듯이, 말씀도 잘못 가르치면 신앙에 병이 들게 됩니다. 


마태복음 7장 28-29절에 “주님의 말씀은 그 시대에 다른 종교 지도자들이 가르치는 말씀보다 권세 있고,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다.”고 했습니다.  말씀을 통해 신앙적으로 나 육적으로나 문제를 풀어 주시고, 속도 시원하고, 영혼도 신령하고 건강하게 해 주실 것입니다. 


본문으로 들어갑니다. 


성장된 자는 성장된 자에 해당하는 대로 가르쳐 줘야 되고, 그에 해당하는 사명과 일을 주고, 그에 맞게 대하도록 신경 써서 살라고 했습니다.  이같이 하지 않으면 대함을 받는 자는 정말 기분이 나쁘고 싫은 것입니다.  합당하게 구분하여 그 사람에 맞게 대해 줘야 됩니다.  새롭게 생각하고 행하여 자신도 변화를 일으키고, 상대도 변화 시키기를 축원합니다.


이와 같이 이치에 따라 행하는 자는 지도자로서도 잘하는 것이며, 성장하는 자들도 잘 성장하게 됩니다.  자기 입장에서만 대하면 처세를 제대로 못하는 자입니다. 상대의 입장에서 대해 주면 이치에 맞는 삶을 사는 자입니다. 


사람은 꼭 분별하고 그에 맞게 대해 줘야 됩니다.  상대가 제대로 제 위치에서 신앙생 활을 하지 못하면 주님의 말씀을 그 입장에서 생각하며 전해 주고 대해 주면 됩니다. 그렇게 하면서 점진적으로 가르치며 대해 주면 됩니다. 


사람을 제대로 대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사람들은 자기 입장에서만 생각하며 대함을 받으려 하고, 또 자기 생각으로만 받아들입니다.  대함을 받는 자들도 이같이 하면 안됩니다.  모두 하나님의 말씀과 주님의 말씀으로 제대로 배우고, 온전하게 살아 야 제대로 된 사고를 가지고 잘되고 형통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온전하고 바르게 교육한다고 성경은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율 법의 말씀은 완전하지만, 예수님이 와서 보니 유대 종교인들은 그 말씀을 지키지 않고 외식과 형식으로 이론적으로만 외치며 살고 있었습니다.  주님은 이들을 책망하시며, 겉은 아름다우나 속은 회칠한 무덤과 같은 자들이라고 채찍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주님이 몸소 실천하시면서 새 시대 역사와 하나님의 구원섭리를 펴가니 외식적인 구 시대 종교인들은 정신과 행실이 썩은 죽은 자들인 고로, 주님의 행하심을 반대하고 막 고 비난했던 것입니다.  주님은 실체로 말씀을 행하시면서 제자들을 실습시키며 뜻을 펴 나갔습니다.  제대로 가르치고 이끌어 가니 따라오는 자들을 잘 관리하고, 쉽게 인 도하며 다스린 것입니다.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했습니다(마 11:28).


성경을 잘못 가르쳐 주고 인생을 잘못 가르쳐 주면, 잘못된 연고로 인하여 관리하고 이끌어 가기 힘듭니다. 잘못된 것은 다시 가르쳐 줘야 됩니다. 잘못 알고 살면, 모르고 살기에 사는 것이 더 힘들고 고통도 더 받고 살아야 됩니다. 


예수님이 나타나시기 전에는 유대 종교인들이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잘못 가르치고, 행 치 않으면서 형식과 외식으로 가르치니 답답했습니다.  주님이 오신 후, 그 가르침과 권세 있는 말씀을 듣고 많은 자들이 따랐습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잘 가르쳐 줘야 되고, 하나님이 인간들에게 어디까지 행하시 는지 제대로 가르쳐 줘야 됩니다.  잘못 인식시켜 주면 자기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 것 입니다.  동물도 잘 가르치고 잘 훈련시키면, 동물 서커스단이 되어 사람과 같이 행동 하며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감탄하게 합니다. 


하나님이 다 해 주신다고 가르치면, 듣는 자들이 처음에는 모두 좋아서 잘 따라올 것입니다.  그러나 실상 믿고 살아 보고 그러하지 않음을 알게 될 때, 따라가다가 실망하고 말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다 해 준다고 성경을 통해 가르치는 자들은 성경을 제대로 모르고 가르치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이 절대 예정해 놓으셨으니 다 해 주신다.’고 가르치며, 인간의 자유의지와 책임분담을 무시하고 ‘하나님과 주님이 다 주관하신다.’고 가르칩니다.


이같이 가르치는 자들은 세상의 어떤 사람이나 교파라도 잘못 가르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다 해 주신다면 구원받지 못할 자가 없을 것입니다.


주님은 “구원받는 자가 많지 않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좁은 길에 대한 말씀도 하셨습니다. “멸망 길은 크고 넓어 그곳으로 가는 자가 많고, 생명 길은 좁고 협착하여 찾 는 자가 적다.”고 했습니다.


(눅 13:24) 『[24]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 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마 7:13-14) 『[13]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14]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하나님은 100개 중에서 90개 정도를 해 주십니다.  나머지 10개 정도는 인간이 해야 됩니다.  10개는 아주 적다고 생각하지만, 인간에게는 100%가 되는 것입니다.  고로 주님은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서 하나님을 섬기고 사랑하며 형제들도 그같이 대하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눅 10:27) 『대답하여 가로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 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성장하면 인간의 일은 하나님께 미루지 말고 인간이 거의 해야 됩니다.  하나님은 인간 이 100개의 힘이 있는데, 10개만 해도 된다고 하실 리가 없습니다.  최선을 다하라고 하는 것이 순리요, 진리였습니다.  그같이 안 했으면 예수님도 세상에 계셨을 때, 힘들 지 않고 편안하게 하나님의 뜻을 펴셨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한 세상의 체제와 법도를 보아도 어린아이 때는 부모가 거의 다 해 줍니 다.  그러나 성장하면 자신이 거의 다 해야 됩니다.  더 성장하면 누구 쳐다볼 것 없이 자신이 다 행합니다.  이와 같이 신앙세계도 신앙이 어렸을 때는 하나님이 거의 다 해 주시지만, 성장하면 본인이 해야 됩니다.  그래야 보람 있고 기쁘고 즐겁고, 자기 행한 일이 남아지게 됩니다. 


어린아이에게 부모가 해 준 것은 남는 것이 거의 없습니다.  씻겨 주고, 기저귀 갈아 주고, 옷을 빨아 입히는 일입니다.  남는 것이 있다면, 몸 하나일 것입니다. 그러나 커서 행한 일은 자신이 행한 것이므로 남는 것이 많습니다. 성장할수록 본인이 해야 그 공적이 남아 빛나게 되고, 죽은 후에도 빛이 나게 됩니다. 


신앙세계도 그러합니다. 예수님 시대도 제자들이 예수님을 졸졸 따라다니면서 어린아이같이 크다가, 주님이 돌 아가신 후에는 예수님을 따라서 역사를 메고 책임을 다하며 살았습니다.  고로 사도의 역사가 그 시대에 살아남아진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해야 공적도 남아지고, 표가 나게 하늘 역사에 길이 남아집니다. 


과거 많은 젊은이들이 하나님이 다 해 주신다는 말을 믿었으나 그대로 안 되니 신앙을 떠나 사회로 나가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열심히 하니 교회에 다닐 때보다 더 잘되어 좋아했습니다. 그중에 일부는 인간이 책임분담을 해야 할 일 10%와 하나님이 해야 될 일 90%를 배웠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인간의 책임분담 10%, 즉 인간에게 해당되는 100%를 위해 열심히 뛰고 달려 신앙의 굶주림 없이 새로운 희망으로 새롭게 변화하면서 살아왔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이미 예전에 믿음들이 파선되어 교회를 안 다녔을 것입니다. 열심히 해야 주님이 도우시고, 함께하여 힘을 주십니다. 


잘 가르쳐야 자신도 잘되고, 듣고 배운 자도 제대로 된 사고를 가지고 잘 성장하여 구원을 상실하지 않는 것입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을 하지 않고, 그저 하나님께 맡기고 주님께 다 맡기고 가만히 있다가는 굶어 죽습니다.  그러니 게으르지 말고 열심히 행해야 됩니다.


하나님을 믿고 주님의 말씀을 순종하며 열심히 믿고 행하면, 자신의 의지로 인하여 하 나님이 돕는다고 생각하면서 행하므로 못 할 일도 행하게 됩니다.  그리고 열심히 행하 면, 하나님과 주님께서 약속대로 필요한 만큼 도와주십니다. 


하나님과 주님은 할 일이 인간보다 수십억만 배 많으십니다. 고로 인간들이 능히 할 수 있는 일까지 도우시고, 거기에 신경 쓰며 시간을 보내지 않으십니다.  스스로 능히 할 수 있는 일까지 다 줄 필요가 없습니다.  스스로 능히 할 수 있는 일까지 다 해 주면 로 봇의 삶이 되고, 식물인간의 삶이 되는 것입니다. 


남이 해 주기만을 바라며 피동적으로 살면, 하나님이 주신 삶의 희로애락의 복을 누리 지 못합니다.  일로 인하여 낙을 누리고, 보람을 느끼고, 기쁨이 충만하게 됩니다. 하나님께 예배하고 찬양하고 영광 돌리며 각자 맡은 일을 해야 합니다.  이는 성경에 모두 나와 있습니다.


세상에서도 할 일이 없으면 재미도 없고 존재하지도 못하게 됩니다.  천국에 갔을 때 하나님이 각자에게 주실 사명과 할 일은 우리들이 기대하는 기쁨입니다.  상호 존재하기 위해서 일을 합니다. 


물은 귀합니다.  가뭄이 들었을 때, 누가 물 지원을 해 준다는 말만 믿고 기다리다가 물로 인하여 고통을 받느니, 열심히 땅을 파고 샘을 파야 됩니다.  어디든지 땅속에는 물이 있으므로 파면 솟아납니다.  누가 해 줄 것으로만 생각하고 기다리다가 안 해 주 면, 결국 자기만 갖은 고통을 겪고 실망하고 원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실천하는 삶은 위대한 삶입니다. 이같이 샘을 파는 자만이 가물어도 물 부자가 되는 것 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땅을 주시고, 깊은 곳에 물을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인간의 책임분담으로 깊이 파기만 하면 물이 나옵니다. 가뭄 때 비 오기만 기다리다가 곡식이 말라 죽게 되고, 사람도 목이 타 결국은 죽게 됩니다. 


우리 모두는 세상에서 이같이 살아 보았습니다.  누가 도와줄 것만 기대하고 믿으면 안 됩니다.  능력이 있는데도 가만히 있으면 되는 일이 없습니다.  하는 만큼 됩니다. 가만히 있으면 자기에게 주신 복도 빼앗깁니다.  천국에서도 모두 가만히 있지 않고 부지런히 자기 사명을 합니다.  잘못 가르쳐 주면 잘못 알고 잘못된 길을 가며 고생만 합 니다. 


자기가 할 일인데 ‘하나님이 해 주신다. 주님이 다 해 주신다.’ 하면서 그것만 기다 리고 있다가 결국 실망하고, ‘이럴 줄 알았으면 내가 했을 것인데 못하여 일을 당했 구나.’ 하고 후회하며 가르친 자를 원망하고 싸우기까지 하게 됩니다.  누가 그같이 가르쳐 주지 않았을지라도 그같이 그릇 사고하는 자들도 다시 새롭게 생각해야 됩니다.


오늘 본문 말씀 야고보서 3장 1-5절을 보면, 야고보가 선생 된 자는 책임이 크고, 잘 못 가르쳐 주면 죄도 크니 선생 되기를 원치 말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선생은 많으나, 오직 하나뿐이라고 자신에 대해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마 23:8)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이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그 시대에 성경을 가르치던 유대 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율법사들을 두고 하나님과 율 법을 가르치는 선생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제대로 못 가르쳐 주었고, 하나님 을 제대로 모르고 죽은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나타나시고 그 제자들을 제대로 가르쳐 주시니, 몇 명 안되는 자들로 역사를 시작했지만 그 제자들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펴서 그 시대를 구원하는 일을 했습니다.  역사는 점점 커져서 환난, 핍박, 갖은 고통을 받아 가면서도 지구촌에 신약 의 나라를 세웠습니다. 


유대 종교인들은 외식과 형식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성경을 제대로 가르쳐 주지 못했습니다.  큰소리들만 쳤고, 전통과 조상들의 유전만 따지고, 모세의 율법만 딱딱하게 외 치며, 권위주의에 가득차 권위에 꽉 찬 신앙만 하였습니다.  고로 인생들을 제대로 구 원시키지 못하고 하나님을 제대로 믿게 해 주지 못하였으므로 예수님 당세 때, 구약 종 교는 4000년이나 되었지만 큰 역사를 펴지 못했습니다. 


구시대 유대 율법주의자들은 6000년 역사와 전통만 자랑하였지, 2000년의 기독교 역사와는 감히 비교도 되지 않는 현실을 볼 수 있습니다.  말씀을 제대로 가르쳐 주어 야 인간들이 각자 자기 책임의 사명을 다하면서 하나님과 주님의 뜻을 펴 시간이 갈수 록 더 창대하게 되는 것입니다. 


현실에도 성경에 기록된 주님의 말씀을 바르게 잘 가르쳐 주고 행하게 하도록 해야 하 나님의 뜻을 제대로 펴 나가며 신앙이 죽지 않고 절대적인 구원을 받고 살게 되는 것 입니다.  말씀을 제대로 못 가르쳐 주면 절대로 신앙이 제대로 들어갈 수가 없고, 주님 이 원하시는 구원을 받지 못하고, 살아 있는 신앙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됩니다. 


성경을 주님이 가르치신 대로 바르게, 세밀하게, 자세히 가르쳐 주고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속 시원히 행해야 이 시대에도 새롭게 변화가 일어나고 우리들도 더 굳건하게 서게 됩니다.  성경을 바르게 배우지 못하여 깨닫지 못하고 살면, 평생 그릇되게 생각 하고 살기 때문에 그 한계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주님은 성경을 복잡하게 해석하고 가르치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주님이 메시아이 심을 올바로 가르쳐 주어 믿게 하고, 그 말씀대로 하나님을 섬기고 절대 순종하며 영광 돌리고 형제들을 화목하게 대하고 사랑하면서 사는 것을 원하십니다. 


복잡한 것을 가르치다 보면, 근본의 주님에 대해 제대로 가르쳐 주지 못하여 인생들을 구원하실 주님에 대해 잘 모르고 그와 하나 되지 못합니다. 


주님은 포도나무요, 우리는 그 가지가 되도록 일체만 시켜 주면 됩니다. 주님은 억지로 자신을 믿게 하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스스로 알고 싶어 하고, 믿고 따르기를 원하십니다.  사랑도, 믿음도, 주를 위해 하는 일들도, 전도도, 헌금도 모두 스스로 원해서 하는 것을 원하십니다. 


본인이 자진해서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본인이 안 하면 소용이 없습니다. 주님이 다 해 주신다면 구원 못 받을 자도 없고, 천국에 못 갈 자도 없습니다.  천국에 가는 자는 적고 지옥에 가는 자는 많으니, 그 원인은 본인이 자기 책임분담을 해야 되기 때문입니 다. 


행하는 것이 그 얼마나 어렵습니까?  모두 겪어 보았지요?  모든 일에 있어서 자기 할 일들을 해 보았지요?  너무나도 실천하기 힘들지요?  하지만 행해야 구원이 이루어집니다.  행해야 사망에서 나옵니다.  행해야 꿈과 소망이 이루어집니다. 말로만 하면 말로만 이루어집니다.


사막을 홀로 외로이 고통을 겪으며 가고 있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낙타를 타고 그곳을 횡단하던 사람이 말하기를 “누가 와서 당신을 도와줄 것입니다. 그러니 걱정 하지 마십시오.” 하며 갔습니다. 


사막을 홀로 걷던 자는 가다가 힘드니 가던 길을 멈추고 온종일 타들어 가는 땡볕에서 그 사람의 말을 생각하며 희망을 걸고 앉아서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오지 않았 고, 밤이 돌아와 그곳을 지나가던 사자 떼한테 잡아먹히고 말았습니다.


제대로 잘 가르쳐 주지 못하니 안 죽을 자가 죽게 되었습니다.  사막의 모래 위를 홀로 힘들게 걸어가니 위로할 겸, 누가 도와줄 것이라고 자기 생각으로 잘못 가르쳐 줘서 죽게 한 것입니다. “힘들지만 열심히 가야 합니다. 가면 갈수록 희망이 옵니다.” 하고 제대로 가르쳐 주고 갔으면, 그는 가던 길을 열심히 가서 살았을 것입니다. 


주님은 “인생들이 이와 같으니 성경을 제대로 배우고, 제대로 가르쳐 주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우선, 먹기에는 감보다 곶감이 답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다 해 주신다. 주님이 다 해 주신다.”고 하며 좋게만 가르칩니다.  순간 듣는 자는 기쁘고 좋지만, 결국은 안 좋습니다.  어떤 상황이든지 최선을 다하라고 바르게 가르쳐 주면 자신도 성공 길을 가게 되고, 하나님과 주님도 돕고 함께하십니다.  본인이 열심히 하나님과 주님을 위해 행해 야 그 행위대로 하나님과 주님도 역시 열심히 해 주십니다. 


주님은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 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는 처음에는 듣기 힘들고 마음에 쓴 말씀이지만, 제대로 된 가르침입니다.  제대로 한 말은 쓰지만, 지키 면 제대로 희망이 이루어집니다.  고생이 되어도 생명 길을 가야 된다고 수없이 말했습 니다.


어떤 사람이 백지와 펜과 물감을 갖다 놓고 구상을 하고 앉아 글을 쓸까?  그림을 그릴까?  몇 시간씩 구상을 하는데 구상이 나오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행하지 않고 계속 구상만 하고 있으면, 생각난 것들이 머리에 떠올랐다가 사라질 것입니다.  잘하든지 못하든지 행해야 됩니다.  안 하면 하루가 가도, 한 달이 가도, 1년이 가도, 평생이 가 도 결국 아무것도 못 쓰고 못 그리는 것입니다.  생각만 하지 말고 행하고, 행하면서 고치고, 또 구상도 하며 멋있게 하는 것입니다.


시도, 잠언도, 그림도 행해야 구상이 글로, 그림으로 나옵니다.  우리 모두 구상만 하지 말고 행해야 됩니다.  전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일을 하든지 행해야 됩니다. 행하면서 고치게 되고, 발전하게 되고, 꿈을 이루게 됩니다. 


자기 생각들을 온전하게 해야 됩니다. 잘못 생각하고 그것을 실천하면 잘못 됩니다. 잘못 가르쳐 주면 잘못 행하게 되어, 생명들을 지도하고 관리하기 힘들다고 했습니다. 자기의 사고가 잘못되어 있으면 자기 몸이지만 제대로 다스리고 관리하기 힘든 것이라 고 했습니다. 


바로 알고, 바로 배우고, 바로 가르쳐 주고, 바로 행해야 힘들지 않고 쉽게 인생을 살게 됩니다.  배울 때는 힘들고, 가르칠 때는 힘들지만 올바르게 배우고 가르쳐야 결국 은 힘들지 않게 살 수 있습니다.  알고 가르치고, 알고 주장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려 면 주님의 말씀을 제대로 듣고, 온전하게 신앙을 만들고 자기 생각으로 만들어 행해야 됩니다. 


자기가 맡은 일들을 행할 때, ‘우선 먹기에는 곶감이 달다.’는 식으로 쉽게 해 버리 면 안됩니다.  뒷일을 생각하면서 제대로 알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해야 됩니다.  인간의 방법으로 자기 쉬운 대로만 행치 말아야 합니다. 


중직을 맡은 자들은 자기 입장만 생각하며 쉽게만 일하지 말고, 전체를 생각하고 하나 님과 주님을 생각하며 행해야 됩니다.  사람을 두려워 말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면서 행 해야 됩니다.  원수는 사랑하되, 원수의 말을 듣고 끌려 다닐 필요는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향해 그 은혜로 끌려 행해야 됩니다. 담대하게 행해야 합니다. 다윗이 항상 어떤 환경과 어떤 두려운 상황 가운데서도 행하니, 하나님은 원수의 목전에서 그에게 상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원수를 사랑하고, 주리면 먹여 주고, 입을 것이 없으면 입을 것 을 주어라. 그리하면 원수의 목전에서 네게 상을 베풀어 주리라.” 했습니다. 


주님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동일하게 가르치고 말씀하십니다.  고로 주님께 성경을 배 우고, 주님과 같이 실천해야 됩니다.  그 말씀에 순종해야 제일 좋아하시고, 주와 동행 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께 감히 거짓말을 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거짓말하는 자가 많습니다.  하나님께 한다고 해 놓고 못하는 것이 약속을 어겼기 때문에 거짓말입니다. 사람과의 약속도 아니고 하나님과의 약속이기 때문에 꼭 지켜야 합니다.  주님 앞에 약속한 것도 지켜야 거짓말하지 않은 것입니다.  사람과는 약속했어도 상황에 따라 행 하면 됩니다.  인간을 중심하지 말고 하나님을 중심해야 됩니다. 


거짓말하는 자와 참말을 하는 자가 있습니다.  이 중 누구의 말이 매끄럽고 믿어질까요?  거짓말은 만들기 때문에 매끄럽지만, 참말은 그대로 하니 더 이상 다른 말이 없습니다.  참말은 자기가 행한 대로 거칠든지, 구부러졌든지 그대로입니다.  그러므로 거 짓말하는 자의 말이 매끄럽게 다듬어져서 처음에는 믿어지나, 나중에는 믿어지지 않습 니다. 


하나님은 불꽃같은 눈으로 보시며 그 행위대로 대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거짓말의 편 이 아닙니다.  참말의 편입니다.  하나님은 회개하면 다 용서해 주십니다.  그런데 회 개한 후에도 회개한 대로 살기가 힘듭니다.  천국은 어느 시대, 언제, 누가 갈지라도 흠이 있으면 절대 못 갑니다. 그 흠은 회개로 없애고, 행함으로 없애 버리는 것입니다. 


자기의 행위와 삶을 통해 자기가 천국에 갈지, 지옥에 갈지 실상 거의 다 알 수 있습니 다. 주님은 이를 아시기에 “더욱 열심히 해야 된다. 새롭게 하라. 말씀을 듣고 마음과 생각을 더 새롭게 하여 변화를 받으라.”고 말씀하시며, 부족한 부분을 미리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8장 21-22절을 보면, 베드로가 예수께 나아와 “형제가 잘못하면 몇 번이 나 용서해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까.” 하고 물으니, 이에 예수님은 “일곱 번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해 주어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백구십 번이라도 용서해 주라고 했습니다.  남을 용서해 주는 만큼 자기도 하나님 앞 에서나 주님 앞에 용서받는다고 생각하면서 용서한다면 더 많이 용서해 주고 싶을 것 입니다.  이같이 수십 번의 엄청난 용서는 인간의 법이 아니고 하나님의 법입니다. 지켜야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형제가 잘못을 반복하면 계속 용서하기 힘들 것입니다.  어떤 한 건을 가지고 한두 번도 아니고 여러 번 잘못을 행하고 피해를 주면, 화가 나서 용서하고 싶은 마음 이 없어질 것입니다. 

가령, 일찍 일어나라고 했는데 한두 번도 아니고 다섯 번, 열 번씩 일어나지 않고 계속 게으르게 행한다면 용서해 주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용서하기보다 포기해 버릴 것입 니다.  한 번 약속한 것을 여러 번 번복하며 행하지 않거나 실수를 반복하면 용서하지 못하고 포기할 것입니다. 


사람은 한 가지만 행하고 사는 것이 아니라 수십 가지를 행하며 삽니다.  행하다 보면 이것도 실수하게 되고, 저것도 실수하게 됩니다.  또 형제에게 피해를 주기도 합니다. 각자 서로에게 잘못하게 되니 실상, 그 행위에 따라서는 각각 한두 건들입니다. 그같이 생각하면 용서해 주고 싶은 마음이 많을 것입니다. 


어떤 한 건을 가지고 반복해서 자꾸 안 한다고 해 놓고 하고, 한다고 해 놓고 안 하면 주님께 책망을 받습니다.  자신들이 온전하게 살려고 결심하고 생각을 굳히면 모두 할 수 있습니다.  주님 앞에 한 건을 가지고 계속 잘못했을 때는 책망을 받았습니다. 


형제들이 어떤 한 건을 가지고 일흔 번씩 일곱 번까지 자기에게 잘못하는 것이 아니고, 한 번이나 두 번 잘못하고 실수하게 되니 용서해 주라는 것입니다.  어떤 한 건을 가지 고 일흔 번씩 일곱 번 즉, 사백 구십 번을 반복해서 잘못한 것을 용서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다른 일을 하다가 자기에게 잘못했으면 서툴러서 그랬으니 용서해 주고, 몰라서 그같이 행하였으니 용서해 주라는 것입니다.  고로 늘 실수하지 않고 온전한 사고를 가지고 행하도록 잘 가르쳐 줘야 됩니다.


우리끼리 일어나는 일을 보아도 한 건을 가지고 반복하여 잘못하는 것이 아니고, 이것 하나 혹은 저것 하나 잘못을 하게 됩니다. 그같이 하다 보면 하루에도 몇 건씩 됩니다. 이를 깨닫고 자기 입장을 생각하면서 형제의 심정도 알고 용서해 주기 바랍니다. 그래야 주님의 마음을 가진 자들이 됩니다.  이 같은 자들은 천국의 마음을 가졌기에 천국에 가게 됩니다. 


온전히 행한 일도 형제가 오해하여 큰 죄나 지은 것으로 생각하여 그 형제를 죄인 취 급하는 자도 있습니다. 이런 때는 죄인 취급을 당하는 자가 무지한 형제들을 용서해야 됩니다. 용서하고 자기는 주님을 따라 급히 사명의 길을 가야 합니다. 


사랑하는 자라면, 횟수에 상관없이 용서해 줘야 됩니다.  그래야 사랑도 살아납니다. 그래야 그를 향한 희망을 이룹니다. 


주님의 말씀을 지켜야 주님의 자랑스러운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다 용서해 주어서 그가 낙심하지 말게 하고, 다시 잘하여 사탄의 나라 지옥에 가지 못하게 해야 됩니다. 주님의 마음을 가지면 용서하게 되지만, 자기 마음을 가지면 용서해 주고 싶지 않을 것 입니다.  용서해 주면 마음이 천국입니다.  용서받은 자의 마음이 기쁘듯, 용서해 준 자의 마음도 그같이 기쁜 것입니다. 


전쟁터에서 자기를 죽이려는 적을 용서해 주고 적을 쏴 죽이지 않으니, 평생 그 기쁨이 마음속에 있으므로 기쁩니다.  우선 먹기에는 곶감이 달다고 자기를 죽이러 오는 적을 먼저 보았다고 마구 총을 쏴서 죽이면 속이 시원하고 훈장도 타니 그때는 기쁠 것입니 다.  그러나 용서해 주고 자기도 살고 적도 살아 평화롭게 끝나면 하나님도 기뻐하시 고, 주님도 가르친 대로 행했으니 잘했다고 칭찬하며 기뻐하십니다.  자기도 생각할 때 마다 기쁩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우리와 부딪히고 싸우며, 더러는 많은 해를 준 원수 같은 자들을 용 서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주님을 믿고 주를 사랑하려면 원수까지 사랑해야 됩니다. 원수를 미워하고 살다가는 주님 앞에 갈 수 없습니다.  원수도 주님의 사랑하는 자들이 라고 보면 됩니다.  자기 마음에 용서할 마음이 없으면 주님을 보고 용서해 주고, 하나님을 보고 용서해 주면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그를 축복해 주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주님의 사랑하는 자가 되는 것이 크고, 사망으로 가지않고 구원받는 것이 더 큽니다.  남을 위한 것이 아니라 결국 자기를 위한 것입니다.  자기를 위해 무엇이든지 말씀에 순종하면서 가야 합니다.  말씀은 어렵지만 지킨 만큼 꼭 축 복해 주십니다.  믿습니까?

성경말씀은 모두 좋은 말씀입니다.  지키려면 정말 어렵고, 또 어렵습니다. 


그래도 지키는 자가 되어야 주님의 사랑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주님도 그 극한 환난과 핍박과 억울함을 받으면서 죽음을 앞에 놓고서도 가르치고 외치셨기에 심정의 말 씀이 더욱 불같이 나왔고, 몸소 겪으니 모든 세상을 아시고 확실하게 가르치고 말씀했던 것입니다. 겪어야 알게 되고, 겪으면서 외쳐야 가슴에 불이 붙어 깊은 말씀을 전하게 됩니다. 기독교는 체험 신앙입니다.  입술 신앙이 아닙니다. 갖은 고통을 겪으면서도 포기하지 말고 가야 됩니다. 


“겪고 제대로 가르쳐야 머리에 사고가 제대로 들어가 제대로 행하게 되고, 관리하기 쉽다.”고 말씀했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라. 주리면 먹이고, 헐벗으면 입혀 주어라. 그리하면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풀어 주리라.”고 말씀했습니다. 


이를 행하는 자가 생명의 주관권에 들어가 사는 자입니다. 제대로 가르쳐 주지 못하면, 가르치는 자가 책임을 져야 합니다.  성경을 자기 마음대로 가르치면 안됩니다. 


오직 주의 가르침에 따라 온전히 배우고 행하는 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조회수
24,070
좋아요
0
댓글
0
날짜
2009-01-19 오후 11:57: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