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씀] 정명석 목사
[본 문] 요한복음 15장 4-5절
4)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5)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요한계시록 22장 12절
12)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할렐루야! 영원하신 성부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평강이 충만하기를 빕니다.
<동물>들도 ‘본능, 근성’이 있습니다.
염소는 뿔로 들이받는 근성, 고집 근성이 있고, 소는 꾸준히 일하는 근성이 있습니다. 코끼리는 발로 밟고, 몸으로 밀고, 코로 휘두르는 근성이 있습니다
이처럼 <사람>도 저마다 ‘근성’이 있는데, 다 다릅니다.
<근성>은 ‘사람의 육이 있어 육에서 오는 근본 성향’입니다. 고로 우리에게 ‘육’이 있는 한, 성자 주님과 일체 돼도 ‘근성’은 남아 있습니다.
마치 고욤나무에 참감나무를 접붙였어도 결국 고욤나무 뿌리로 인해 가지가 무성하게 자라듯이, 성자 주님과 일체 됐어도 ‘자기 근성’은 결국엔 솟아오르게 됩니다.
사람마다 ‘좋은 근성’을 가지고 있기도 하고, 혹은 ‘나쁜 근성’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좋은 근성>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은 성자 주님과 일체 됐을 때, 그 좋은 근성으로 더 좋게 행하겠지만, <나쁜 근성>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은 성자 주님과 일체 됐어도 혈기가 나오고, 욱하는 성질이 나오고, 분노를 표출하고, 말을 함부로 하고, 고집을 부리는 등 ‘자기 나쁜 근성’이 자꾸 나오게 됩니다.
그러나 자기 영이 휴거됐다면, ‘자기의 나쁜 육성과 근성’을 모두 좋게 만들어 버립니다.
그리고 고욤나무와 참감나무를 접붙일 때 <뿌리>끼리 접붙이면, 맞지 않아 못 삽니다. 곧 <근성>끼리는 접붙여지지 않습니다.
<인간의 근성>끼리 부딪히면 ‘부부’끼리도, ‘애인’끼리도, ‘친구’끼리도, ‘형제’끼리도, ‘윗사람과 아랫사람 관계’에서도 <큰 전쟁>, 혹은 <작은 전쟁>이 일어납니다. 또한 <민족의 근성>끼리 부딪히면 ‘싸움과 냉전’이 일어나고, 결국 ‘전쟁’까지 일어나게 됩니다.
이를 알고 한쪽에서 <근성>이 솟아나면, 다른 한쪽에서는 꼭 <신성>으로 대해야 됩니다.
‘사랑으로 부드럽게 대하기’입니다.
혼자 있어도 삶 속에서 ‘근성’이 나오면, 자꾸 죄를 짓고 자포자기하게 되니, 모두 휴거되려면 ‘나쁜 근성’을 ‘좋은 근성’으로 바꾸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