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동네

무지개 by 날개단약속

 

 


1992년 여름 태풍.
나의 기억 속에 가장 강력했던 태풍 ‘셀마’.
태풍이 한반도에 상륙하기 전부터 내 친구 미야는 태풍 셀마에 대해서
아주 집중하며 상기된 얼굴로 얘기하곤 했었다.


미야의 말대로 태풍이 마을에 상륙한 날,
마치 평화로운 이곳에 사나운 사자가 모습을 나타낸 것과 같이 움츠려 든 날.

 

바람은 우리 사과나무 가지를 모조리 꺾어 놓았고, 미야네 논에 벼를 순식간에 눕혀놓았으며 천둥소리와 번개는 주연이네 병아리를 놀라게 해서 집단 폐사시켰다.
도랑에는 금방이라도 물이 마을에 넘어올 듯이 넘쳐 흐르며 거대한 물살에
돌 굴러가는 소리가 ‘구르릉, 구르릉’ 울렸다.
비와 전주 울리는 윙윙~ 소리에 선잠을 깼다.
‘마을 아재, 아지매 그리고 아이들, 밤새 웅크리고 있었으리라.’

이른 아침, 동네 분들은 조심스레 마을 앞으로 모여들어서 밤새 태풍에 난리가 난 마을을 지켜보며 아이들은 도랑에 물을 구경하며 약간은 흥분되어 있었다.
그런데 동진이네가 큰일 난 모양이다.
도랑 근처에 있던 돼지 막사가 물에 떠내려갔다는 것이다.
돼지들은 어디로 떠내려갔을까?

 

아직 바람은 남아 있어 선선했고 온 동네는 맑고 맑았다.
태풍이 지나간 하늘엔 길지 않았지만 곱고 고운 무지개가 떠 있었다.
‘아 예쁘다.’
그때 이상하게도 기분이 좋아 행복해졌다.

 

곱고 고은 무지개 끝엔 보물이 있다는데
그 보물 내가 캐내어 와서 동진이네 돼지 막사 새로 지어 주고 싶었다.

 

-박화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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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10-10-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