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동네

잔디 인형by 펜끝 이천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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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쓱 내미는 아이의 손에 이쁘게 꾸며온 작은 화분 하나. 오늘 어린이집에서 잔디 인형 키우기 활동을 했다는 알림장이 생각났다. ‘흙만 고스란히 담겨 있는 여기서 잔디 싹이 난다고?’ 식물이든 동물이든 키우는 건 영 자신이 없던 터라 살짝 막막했다. 집에 조심스레 들고 와 담임선생님의 알림장을 몇 번이고 정독했다.

* 잔디 인형 키우는 법 *
분무기로 물을 충분히 뿌려주고 물이 마르지 않게 자주 분무기로 물을 뿌려주면 약 3~4일 후에 새싹이 발아되고 약 7일에서 10일 후면 잔디가 예쁘게 자랍니다.


흙 속에 씨앗이 담겨 있으니, 아이와 함께 물을 주며 예쁘게 키워달라는 내용도 같이.

"잔디 인형아~ 안녕!" 먼저 같이 인사부터 나눈 뒤, "잔디 인형아~ 이제 건강하게 자라~." 말도 건네며 아이에게 물을 주도록 했다. 베란다가 볕이 잘 드니 금방 잘 자라겠지? 그런데 기대와 달리 사흘 나흘이 지나도록 감감무소식이다. 이상하다. 무슨 싹이라도 나야 하는데 왠지 베란다에 잔디 인형이 춥고 외로워 보인다. 설마 싹도 못 틔우고 이대로 끝나는 건 아니겠지? 안 돼! 아이가 괜히 실망할까 초조해지는 엄마 마음. 잔디 인형을 실내로 다시 들였다. 흙이 약간 살얼음이 된 것 같기도 하고 ㅜ.ㅜ 어서 살려야 한다. 11월의 베란다는 너에겐 혹독한 곳이었구나. 잔디 인형에게 미안해졌다. 거실 따스한 곳에 자리를 마련하고 언 마음부터 녹여주었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희망을 놓지 않고 하루 더 기다려 보기로 했다. 간절한 마음이 통했는지 드디어 잔디 머리털이 조금씩 올라오기 시작했다! 기쁨과 안위의 만감이 교차하는 순간 얼른 아이를 불렀다. "이것 봐 잔디 인형이 이쁘게 자랐네." 아이도 활짝 미소 지으며 쳐다본다. 아이보다 더 흥분한 나는 신랑에게도 자랑했다. 잔디 인형이 드디어 자라났다고~~


이처럼 생명의 성장을 목격하는 건 신기한 일이다. 화분이 여러 개도 아니고 고작 하나 키웠을 뿐인데 감격은 배나 된다. 1년 수확을 마친 농부의 보람에 비할 바는 안 되겠지만 마음 졸이며 잘 자라주기만을 고대하던 지난 시간. 손수 생명을 길러내는 뿌듯함과 희열이 얼마나 컸던지 잔디 새싹의 생기가 집안 가득 돈다. 크든 작든 생명을 보살피고 관리하는 것만큼 최고 값진 게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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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4-0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