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동네

내 운동장이다by 펜끝 이천 리

20240716내운동장이다.jpg





본격적으로 맨발 걷기를 시작한 지 한 달이 조금 넘었다. 집에서 가까운 초등학교 운동장을 출근 전 30분 퇴근 후 30분 쉬는 날은 한두 시간 더 걷는다. 나 외에도 맨발 걷기를 하는 서너 명이 있었다.

걸으면서 바닥을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다.
혹시나 뾰족한 것이 있을까 싶어서 조심조심 발을 내딛다 보니 처음에는 크고 날카로운 돌을 운동장 모서리로 하나둘 던져가면서 걷기 시작했는데 며칠 하다 보니 녹슨 커다란 못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못을 줍고, 날카로운 술병들이 깨진 것도 줍기 시작했다. 깨지고 날카로운 플라스틱 조각들과 아이들이 먹고 버렸을 길고 날카로운 꼬치들도 한 줌씩 주웠다. 매일 꼼꼼하게 주워서 이제 안 보일 정도로 주웠다고 생각했는데 다음 날이면 또 그만큼의 쓰레기들이 생겼다.

그렇게 내 발을 보호하기 위해 본능적으로 매일 운동장에 나뒹구는 슬러시 컵, 떡볶이 컵 등에 하루에 한두 컵을 온갖 날카롭고 위험한 것들로 채웠다. 학교 운동장이라서 안전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위험하고 날카로운 것들이 꾸준히 나오고 있었다. 그 넓은 운동장을 구석구석 걸으면서 한 걸음 가다 줍고 또 한 걸음 가다 줍기를 반복하다 보니 한 달 열흘 동안 매일 매일 빈 컵이 차도록 줍고 또 주웠다. 큰 쓰레기를 다 줍고 나니 더 작은 쓰레기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느 날은 개를 데려와서 산책한 후 용변 처리를 하지 않아서 크고 작은 개똥을 몇 번 치우기도 했다. 비가 오는 날은 조금 망설여지기도 했지만 나가서 걷다 보면 비에 씻겨 깨끗해진 운동장에 흙먼지 속에 숨겨져 있던 투명한 색깔의 작은 유리 조각들과 못들이 씻겨 드러나 한 주먹씩 줍기도 했다. 한 달 열흘이 지나니 거의 주울 것이 없을 정도로 안전해졌다. 매일 누군가가 버렸을 새로운 뾰족이가 몇 개씩 등장하는 정도이다.

날씨가 좋아지면서 맨발 걷기를 하는 사람이 늘었다. 나도 안전해졌고 그들에게도 안전한 곳이 되어서 마치 우리 집에 온 손님들을 잘 대접한 것처럼 뿌듯해졌다. 한 달 동안 그 넓은 운동장은 내 운동장이 되었다. 하나씩 줍다 보니 내 마음속 모순과 모난 성격도 하나씩 생각하게 되고 이 넓은 운동장도 이렇게 깨끗해졌는데 매일 매일 조금씩 고치다 보면 나도 그만큼 깨끗하고 괜찮은 사람이 되지 않겠나 하는 자신감도 생겼다.

비가 오면 평소에 안 보이던 작고 날카로운 것들이 드러나 줍게 되듯 어려움이 있으면 평소에 안 보이던 문제들을 발견해 해결할 수 있다는 것도 알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한 달 동안 맨발 걷기로 몸도 마음도 건강해졌다. 내일도 맨발로 내 운동장을 밟으러 가서 또 다른 운동장 주인들을 만날 것이다.



조회수
4,482
좋아요
2
댓글
0
날짜
2024-07-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