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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개질의 묘미by 날개단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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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뭇잎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무슨 열병처럼 나는 뜨개질에 미쳐있다. 올해도 찬바람이 목덜미를 살짝 스칠 때 냉큼 털실 한 상자 질러버렸다. 상자 안 알록달록 털실은 보는 것만으로도 내 마음결이 같이 물드는 것 같았다. 이번에는 무엇을 떠볼까? ‘아이코드’기법으로 네키 목도리에 도전한다. 벌써 마음이 들뜬다.


처음에 대바늘로 7코를 걸었다. 그리고 2단에 안뜨기 3코, 겉뜨기 1코, 안뜨기 3코를 뜬다. 3단에 3코를 그냥 옮기고 겉뜨기로 코를 늘리고 다시 3코를 그냥 옮긴다. 결국, 홀수 단은 코를 계속 늘리는 것이고, 짝수 단은 그다음에 안뜨기- 겉뜨기- 안뜨기로 떠주는 것이다. 머리로 완벽히 이해했다. 이제 도전!!


지금은 짝수 단이지?

여기 실이 있으면 이건 홀수 단이고. 짜고 있는 목도리를 앞뒤로 확인하며 한 단 한 단 늘려갔다. 대바늘이 실을 걸어 또 다른 코를 만들고 그것이 모여 작은 직물이 되는 과정, 게다가 겉뜨기, 안뜨기의 순서의 차이로 이토록 독특한 무늬의 목도리가 만들어지는 것은 정말 경이로운 일이다. 무에서 유로, 내 손가락 끝에 작은 빅뱅 같다.


그렇게 7단쯤 떴을까?

뭔가 찝찝하다. 코가 하나 더 늘어난 것 같은 건 기분 탓인가? 코를 세어보았다. 원래대로라면 14코가 되어야 하는데 15코다. 얜 대체 어디서 튀어나왔지? 앞뒤를 아무리 살펴보아도 이해가 안 된다. 이럴 때는 대바늘에 있는 코를 풀어야 한다. 좌르르~ 코들이 힘없이 나부낀다. 골든타임이다. 코들이 죽어 나가기 전에 빨리 범인을 색출해야 한다.


잡았다 요놈.

끝 코가 얼떨결에 두 코를 잡아먹었다. 그렇게 역시 범인은 나야. 누가 뜨개질은 마음의 여유를 두는 취미라고 했는가. 뜨개질이야말로 고도의 집중력과 수리 능력을 갖추지 않으면 두통에 시달리는 수능 수학 마지막 문제 같은 존재다. 난제를 풀고 나면 무릎을 치게 하는 그 개운한 맛이 뜨개질의 묘미다.


그런데 이놈 보소? 이게 풀린 코를 다시 대바늘에 넣어야 하는데 코가 겹쳐있어서 헷갈린다. ‘내가 누구게?’ 이것들이 좌우로 코를 흔들며 나에게 메롱 한다. 이 코인가? 저 코인가? 짜증 나. 이런 것 걱정할 시간에 일단 넣고 하다 보면 알겠지. 그렇게 코를 넣고 뜨개질을 하니 얽히지도 않고 잘 떠진다. 코를 잘 넣었다는 안도감에 3단 정도 떠서 다음 단을 돌아보니 넌 또 누구니? 이상한 무늬가 나를 향해 찡긋한다. ‘언니~ 내가 누구게?’ 짜증 난다. 나야, 그새 또 무슨 짓을 한 거니?


얘는 또 어디서 튀어나왔을까? 한 단을 풀어도 모르겠고, 두 단을 풀어도 모르겠고…. 결국 7단까지 오니 까꿍이다. 여기가 또 문제였네. 그럼 범인은 6단? 아니네…. 그럼 5단? 아니네…. 실이 술술 풀린다. 이렇게 탐정 놀이하다가 시간이 흘러간다. 그제야 나는 한숨을 크게 쉬고 허공을 본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게 더 빠를 수도 있겠다. 처음에는 아니라고 금방 해결할 수 있다고 해보지만, 어느 순간 난 미로 속을 뱅뱅 돌고 있다.


결단하고 다시 코를 전부 풀었다. 손엔 빈 대바늘뿐이다. 벌써 11번째다. 짜증을 넘어 자괴감이 든다. 내가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망부석이 되어 실을 짓고 있는가. 백조 공주도 아니고. 실패야. 다 실패야. 방구석에 널브러진 방석처럼 내 시간도 자존심도 쭈글쭈글해졌다.


뜨개질아, 어쩜 넌 나를 닮았니? 코를 잡았다 풀기를 반복하는 그 모양새가 마치 뭘 하나 진중하게 하지 못하고 이리 기웃 저리 기웃, 뭔가 안 맞는 것 같고 얽매이는 것 같아 도망치기만 하고... 그렇게 손에 남는 거 하나 없는 제자리걸음만 하는 내 인생사 같구나.

손아, 주인을 잘못 만나 고생이다.

내가 왜 고생이야.

헛짓거리했잖아.

야, 그 정도 했음 너 없어도 내가 외우겠다.

그래? 하긴…. 그렇네.

코와 함께 버린 시간인 줄 알았는데 손은 아니란다. 그럼 너를 믿고 한번 해보지. 다시 대바늘을 잡았다.


어쩜, 그 수많은 헛짓거리가 이렇게 글로 얽히고, 울 아가들 마음 판에 엮이고, 때로는 지인들의 삶에 자극제가 되면서 나도 모르게 내 삶의 무늬가 겹겹이 단을 올리고 있을지도.


이번엔 잘 될까?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코를 잡아본다. 안뜨기 세 번, 겉뜨기 한번, 다시 안뜨기 세 번. 다음 단에는 그냥 3코 넘기도 코를 늘리고 다시 3코 넘기고, 재밌네? 그토록 외워지지 않던 짝수단, 홀수단의 순서가 이리도 명쾌하게 손에서 리듬을 타다니... 대바늘이 무늬를 따라 넘실댄다. 벌써 30단이다. 목의 절반이 감긴다. 느낌이 좋다.


멈추지 않으면 실패란 없다.

내가 이래서 뜨개질을 좋아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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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0-1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