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전에 참전 했을 때의 정명석 목사.
지난 3월부터 현재까지, 기독교복음선교회(JMS)를 창교(創敎)한 정명석 목사의 준(準) 성폭행 관련 사건으로 떠들썩했다.
정명석 목사는 지난 1966-1969년까지 베트남 전(戰)에 참전했었다. 두 번에 걸쳐 전투병으로 참전했다. 그는 M79 유탄 발사기(사정거리 400m, 살상범위 4방 20m)의 특등 사수였다.
정명석 목사의 저서인 “전쟁은 잔인했다, 사랑과 평화다“라는 제목의 책(2021.8.20. 도서명문 간행)에 정명석 목사가 치열했던 전투에서, 살아난 장면이 나온다.
1967년에 있었던 전투였다. 이 책 278-279쪽에 게재된 내용을 인용한다.
"대대의 본부 포대가 쏘는 조명탄이 날아와 연속 터졌다. 주위를 대낮같이 훤히 비췄다. 주위를 살피니 나와 불과 5m 밖에 떨어지지 않는 곳에 4명의 베트콩들이 방금 총에 맞고 쓰러져 아직 죽지 않고 꿈틀거리고 있었다. 소대원들은 시체를 확인하고 총을 노획했다.
나도 웅크렸던 몸을 그제야 쭉 펴고 전우들과 시체 확인에 들어갔다. 베트콩 시체 옆에 김이 모락모락 솟아오르는 밥공기 크기의 타원형 흰 물체가 있어 궁금하여 손으로 만져 보았다. 따뜻하고 두부 같은 느낌이 들어 자세히 들여다보니, 머리가 쪼개지면서 튀어나온 적의 골이었다.
크레모아(claymore. 대인지뢰의 일종. 내부에 700여 개의 파편이 내장됨. 살상거리 50m)의 폭발에 적(敵)은 두개골이 깨지면서 싸고 있던 바가지 같은 해골은 날아가 버리고 그 속에 있던 뇌가 터지지 않고 튀어나와 땅 바닥에 고스란히 놓여 있었던 것이다. 대낮같이 밝은 조명탄 빛에 뇌의 핏줄이 선명히 보여 틀림없는 사람의 골임을 알고 기겁을 했다.
'나도 크레모아가 터질 때 적 바로 옆에 있었는데...' 생각하니 너무 끔찍했다. 하마터면 나도 적과 함께 잔인하게 이렇게 될 뻔 했던 것이다.
내가 절대 사랑하는 신은 나의 죽음을 허락지 않으셨다. 아 나는 이날 밤 베트콩과 같이 한 자리에서 어이없는 죽음을 당할 뻔했다. 크레모아에 죽을 뻔 했고, 아군의 총에 맞아 벌집이 되어 죽을 뻔 했다. 정말 죽음을 피할 수 없는 밤이었다.
'만일 내가 죽었더라면, 이 억울한 죽음을 누구에게 호소할 수 있었으랴. 그렇게 귀하게 살려준 몸을 가지고 하나님께 인생을 두고 감사하며 그의 몸이 되어 그의 일을 기쁨으로 삼고 살아야지, 이 몸을 가지고 모든 자들을 위해 뜻있게 살아야지.'하고 시체 확인을 하며 또 한번 마음 속 깊이 다짐했다. (정명석, ”전쟁은 잔인했다, 사랑과 평화다” 2021.8.20. 도서명문 간. 278-279쪽.)"
포탄, 총탄이 오 가는 그 와중에 죽을 수도 있었는데 살아났다. 가까스로 살아난 그는 그 때 하나님에게 의존했다. 죽을 목숨을 살려준 이가 하나님이라고 믿게 됐다.
"내 옆으로 6m 떨어진 곳에서 크레모아가 터지고 소낙비가 펴 붓 듯 실탄이 날아왔으나, 하나님이 나의 방패가 되어 막아주고 내 생명의 놋(참고=성경의 예레미야 15장 10-21절에 놋이 나온다. 11절에는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를 강하게 할 것이요 너에게 복을 받게 할 것이며 내가 진실로 네 원수로 재앙과 환난의 때에 네게 간구하게 하리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성벽이 되어 주셨다.(정명석, 위의 책 279쪽.)"
▲ 정명석 목사의 저서 표지.
채명신 전 주월사령관은 정명석 목사가 쓴 ”전쟁은 잔인했다, 사랑과 평화다”라는 저서의 서문에서 “베트남 전쟁의 동지로서 같은 시대, 같은 하늘 아래에서 함께 싸웠다”고 전제하고 “모든 전쟁은 인간인 만든 죄악이지만, 그 이면에 고차원적인 하나님의 섭리가 숨겨져 있었음을 새롭게 조명하고 있다. 나도 베트남 전쟁에 관한 회고록을 통해 하나님은 보호하심으로 살았음을 고백한 바 있지만, 정명석 총재의 이 글은 특히나 참전 병사로서. 그리고 인생길을 가는 한 사람으로서 끊임없는 하나님의 구원을 목도하며 체험한 것을 감동적으로 기술(지난 2007년 3월)하였다”고 썼다.
박정희 정권 시절, 한국군은 미국 정부의 요청에 따라 월남전에 참전했다. 후일, 학자들의 정리에 따르면, 한국군의 월남전 참전은 용병(傭兵)형태였다. 대한민국이 가난한 나라였기 때문에 젊은이들의 목숨이 월남이라는 전장(戰場)에서 5,000여명 이상 희생(사망) 됐다. 한국군이 월남에 참전했던 기간은 1964년부터 1973년까지. 이 기간, 참전 누계 합산은 총 30만 명이었다.
정명석 목사는 베트남 전쟁-치열한 전쟁에 두 번이나 참전했다가 살아온 사람이다. 그는 고백했다. 한 전투에서 “크레모아에 죽을 뻔 했고, 아군의 총에 맞아 벌집이 되어 죽을 뻔 했다”라고. 그는 죽음의 사지(死地)에서 생환한, 대한민국 전쟁 영웅 중의 한 명이다.
11월21일은 정명석 목사의 준(準) 성폭행 관련 재판(대전지법)일이다. 전쟁에서 살아 온, 한 전쟁의 영웅이 국가를 위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을지? 전장(戰場) 터에서 그를 살려낸 하나님은 과연 어디에 계실까? 기독교복음선교회(JMS) 신도들뿐만 아니라, 베트남 전(戰)에 참전했던 30여만 명의 전우(戰友)들도 지켜보고 있다.
기사원문 : [브레이크뉴스] https://www.breaknews.com/9989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