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이사야 30장 26절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의 상처를 싸매시며
그들의 맞은 자리를 고치시는 날에는
달빛은 햇빛 같겠고 햇빛은 일곱 배가 되어 일곱 날의 빛과 같으리라
사람은 직접 보고, 직접 듣고, 직접 만져 봐야 <실체>를 실감 나게 느낍니다.
그러나 <상징과 비유>는
‘실체의 증거물’, ‘실체의 그림자’에 불과하여
느낌도 만족도도 100%가 안 되고, 실감도 나지 않습니다.
예수님 때도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후에는 <실체>가 없으니,
각종으로 <비유>를 들면서 <실체 예수님>을 증거 했습니다.
듣는 자들은 느낌과 실감과 감동을 약하게 받았고,
이에 증거자들은 애간장을 태웠습니다.
고로 <성령>께서 ‘증거자들이 증거 하는 터전 위’에
더욱 증거하고 감동시켜 깨닫게 하셨습니다.
실물보다 수백 배 작은 <사진>을 보는 것과 <실물>을 보는 것은 정말 다릅니다.
<사진>은 만져 봐도 ‘그림의 떡’과 같습니다.
<사진>은 다만 기억하는 데 도움이 될 뿐이지, <실체>와는 달리 ‘현실감’이 없습니다.
어떤 사람을 <사진>으로 보다가
사진보다 수백 배 큰 <실체>를 보면 ‘거인’을 본 것 같습니다.
고로 ‘생각’도 달라지고 ‘느낌’도 달라집니다.
<말씀>도 그러합니다.
<말씀>도 ‘실체 주, 실체 성삼위, 실체 역사’를 증거 하는 ‘증거물’입니다.
<말씀>을 듣고 생각만 하면 실체적인 감이 없으니 <말씀>이 실감 나지 않습니다.
말씀을 들었으면, 실제로 행하여 <실체>로 만들어야 수백 배 실감 나게 ‘큰 것’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자신도 <실체>로 살아 있으니 얼마나 귀하고 좋습니까?
그러나 <실체>가 살아 있어도 행하지 않으면 <실체>가 없는 것과 같아서
느낌도 감동도 실감도 약합니다.
이제, 자신이 <실체>로 살아 있음을 절실히 깨닫고
<실체>를 가지고 어서 주와 함께 행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