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셨죠?”
“예. 갑자기 차가 중앙선 쪽으로 가기에 깜짝 놀랐어요.”
“자꾸 눈이 감기네요.”
신년 워크숍을 다녀오는 길에 일어난 소동이었다. 9시로 예정되었던 행사 마감이 참석자들의 열띤 토론으로 1시간 이상 뒤로 미뤄졌다. 결국, 동료와 나는 밤늦은 시간, 고속도로 야간운전을 할 수밖에 없었다. 예전에도 늦은 시간에 왔다 갔다 한 길이었으나 40대가 되어 종전에 비해 체력이 현저히 급감한 둘에게는 야간운전이 약간은 버거운 일이었다. 그래서 동료는 운전석에서, 나는 조수석에서 이를 악물고 절대 졸지 않으리라 결심하며 차에 올라탔다. 서로 이런저런 이야기로 대화하며, 먹을 것도 먹어 가며, 음악도 들으며 겨우겨우 도착한 고속도로의 휴게실에서 잠시 눈을 붙였다. 잠깐의 휴식 후 다시 출발하였지만 고갈된 체력을 완벽히 회복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동료가 운전대를 잡고 잠깐 졸고 말았다. 그나마 순간 핸들을 돌렸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큰 사고로 이어질 뻔하였다. 다음 휴게소에서 동료 대신 내가 운전대를 잡았다. 잠이 오거나 피곤하지는 않았지만, 경차 외에는 거의 운전을 안 해 본 나로서는 다소 불안한 마음이 있었으나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평소 3시간이면 도착할 거리를 휴게소마다 들려 쉬어가며 가다 보니 4시간 이상이 걸렸지만 그래도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나는 기독교인이다. 가끔 교회에서 합심기도를 진행하는 기간이 있다. 그때가 되면 이 나라와 민족, 시대를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고 한다. 사실, 나 자신을 위해 기도하기에도 부족한 시간에 왜 남을 위해 기도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마땅히 물어볼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깨닫게 되었다. 내가 졸든, 남이 졸든 우리가 타고 가는 차가 뒤집히면 둘 다 그 운명을 장담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한 배를 타고 가면 공동 운명이라 한다. 크게 확대해 보면 민족이라는 배, 시대라는 배를 탄 사람들도 공동 운명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알고 있는 우리 목사님은 그래서 눈물을 흘리며 이 시대에 전 세계를 위해 기도하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