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냉장고 안에는 여러 벗들이 있었으니 그들은 인간을 이롭게 하는 음식의 재료였더라.
달이 깊어지면 벗들은 침묵을 깨고 이야기를 나누니 밤이 깊도록 그칠 줄 몰랐더라.
적막한 기운을 처음 깬 것은 야채실에 있는 사과 각시였더라.
“벗들은 들으라. 나는 아침에 먹으면 보약이라는 사과니라. 사과는 서로 기질이 강해 따로따로 보관함이 옳으니라. 그러나 주인은 한꺼번에 두는 탓에 멍든 놈 하나로 전체가 병 걸리기 십상이라. 이 속상함을 누구에게 하소연 할꼬.”
이에 냉동실에 김 선비가 급하게 이르되,
“사과 각시야 그래도 너는 나보다 나으니라. 나는 한번 들어가면 나오기 힘드니라. 밖에 기름지고 맛깔난 조리 김 친구들이 있으니 나를 더욱 멀리함이라. 내 참는 성격이 강해 오래두어도 변함은 더디지만 그래도 속병을 앓은 지 오래라. 내 몸 색이 괜히 까만 것이 아니라. 나를 잊은 주인 탓에 까맣게 탄 내 마음이니라.”
이때 떡 낭자가 혀를 내두르며 입을 열기를,
“그래도 김 선비는 사람들이 때때로 찾지를 않소. 나는 한번 들어가면 진정 잊어지기 십상이라. 모양이 작아 어느 선반 구석에, 문 선반 안쪽에 쑤욱 넣어버리니 나를 어찌 찾을 수 있으리오. 게다가 다른 재료 찾다가 발견이라도 하면 냄새를 맡고는 쓰레기통으로 직행을 시키니 내 탓도 아니거늘 이런 수모를 견딜 수가 없소이다.”
반찬으로 으뜸이라는 오뎅 부인이 한 마디를 거드니,
“내 어디 가서 인기 없다 소리를 듣지 않거늘 이 주인을 만나고서는 나도 날마다 눈물바다여라. 반찬도 많지 않은 주제에 매일 밖에서 무엇을 먹기에 내 몸에 하얗고 퍼렇게 솜털이 피어났을까. 내 마음에 멍이 올라온 것 같으이. 선반 중앙에 있으면 뭐하나. 주인의 손길이 닿아야 내가 살아나거늘 주인은 오늘도 뭘 먹기에 나를 잊었을까.”
콩나물 총각은 성을 내며 오뎅 부인에게 이르되,
“주인의 시선을 한 번이라도 받는 자는 말을 하지 마소. 그래도 오뎅 부인은 투명한 용기에 담기니 어디가 아픈지 금방 알아보지 않소. 그러나 나는 저 아래 칸에 박혀 시들어 쭈그렁할애비가 되도 찾지를 않는단 말이오. 한 평 방에 형제 수백 명과 수십 일을 지내 본적이 있소? 그 좁은 곳에서 요리는커녕 숨 쉬려다 죽을 판이오!”
팽이버섯 동자도 한 쪽에 숨어있다 조용히 입을 떼니,
“형님, 누이들, 나를 가만히 보시오. 내 키가 한 자나 더 자란 것 같지 않아요? 동무들과 함께 오래있다 보니 쓰이지도 못하고 키만 컸소. 주인은 징그럽다 나를 멀리하니 마음이 아파요. 나도 맛 날 때가 따로 있는데 그 때가 지나 버림받을까 걱정이에요.”
말없이 가만히 듣고 있던 두부 대감도 나지막이 읊조리는데,
“머리 좋다는 콩을 한데 모으니 어린 자녀들 뇌에 지혜와 총명을 주는 자가 바로 나니라. 그러나 주인은 귀퉁이를 조금 쓰고는 내 몸이 얼고 냄새가 나기까지 나를 찾지 않는구나. 내 본래 지혜를 주는 사명이나 이렇게 천대 받을 줄 알았으면 그냥 콩으로 싹이나 틔울 것을...”
이때 주인이 일곱 벗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말을 하는 지라,
“나의 벗들아 내 이야기를 들어보라. 내가 할 일이 많은 지라 너희를 잠시 잊었노라. 그런데 냉장고를 아무리 살펴도 딱히 음식이 떠오르지 않느니라. 너희가 부족함은 아닌지도 살펴봐야 하지 않느냐.”
이때 한 벗이 감히 주인에게 한 마디를 올리니,
“주인이여, 내 말을 듣고 성을 내지 마시오. 본래 냉장고 안에는 주인의 역량으로 수십에서 수백 가지의 요리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재료가 있음이라. 우리의 부족함이 아니라 주인이 제대로 찾지 않음이라. 무슨 재료가 있는지 모르면 살펴보면 되는 것이고, 요리할 줄 모르면 요리를 배우면 되는 것이니라. 그런데도 없다 부족하다 함은 주인 탓이 아니요.”
본래 하나님은 사람 안에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개성의 재료들을 잔뜩 채우셨건만,
사람은 제대로 찾지도 않고 배우지도 않고 하늘 탓, 부모 탓, 남 탓을 하네.
내 안에 재주가 제 때를 찾지 못해 썩기 전에,
남이 내 안에 재료를 가져다가 자기 것으로 삼기 전에,
찾고 배워서 누구보다 맛있게 사는 인생 되기를 삼가 바라옵니다.
writer by 주아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