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이 되어서

날개단약속|2017-01-25|조회 784

 

 




최근 왼쪽 팔의 통증 때문에 잠을 못 이룰 정도다.

파스를 붙여도 소용이 없을 정도의 통증으로 정형외과 병원을 찾았다.


'엑스레이를 찍겠지? 아님 MRI를 찍나? 돈이 많이 들면 안 되는데.'


여러 가지 생각으로 대기해 있다가 의사선생님을 만났다.

아픈 부분을 눌러 보더니 의사는 인대가 늘어났다고 명쾌하게 말해 주었다.

엑스레이도 MRI도 필요 없었다.

경험 많은 ‘도사의사’ 였던 것이다.

주사와 물리치료를 받고 나니 한결 팔이 나아졌다.

통증에서 나를 해결해 준 이 의학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나온 나는 우리나라 최초의 여의사인 박에스더가 떠올랐다.


우리나라의 최초의 여의사는 바로 박에스더인데, 그녀의 어릴 적 이름은 점동이었다.

점동이는 아버지를 따라 매운바람이 쌩쌩 부는 추운 겨울날 그의 운명을 바꿀 걸음을 걷고 있었다. 


때는 바야흐로 조선이 세계열강에 나라 문을 연 지도 벌써 10년이 지난 1886년 겨울, 서울 정동길. 

점동은 아버지를 따라 이화 학당으로 갔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학교 이화학당은 1886년 5월에 문을 열었다. 미국인 선교사 스크랜턴 부인이 우리나라 여성을 위해 세운 학교에 고종 황제가 내린 이름이 이화(梨花)였다. 이화는 배꽃의 한자말로 배꽃처럼 순결하고 아름다우며 향기로운 열매를 맺는 여성이 되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낯선 서양 사람에게 선뜻 자식을 맡기는 부모는 거의 없었다. 

더구나 여자에게 공부란 몹쓸 것이라고 여기던 시절로 그 때문에 이화 학당의 교장 선생님은 학생들을 

모으러 여기저기 사정하며 다녀야 했다. 


“따님을 학교에 보내 주십시오. 공짜로 먹여주고 재워주고 신학문을 가르쳐 주겠습니다. 

또 나이가 들면 시집까지 보내 주겠습니다.”


“당신 속셈을 모를 줄 알아요? 아이들을 모아 서양 나라에 노예로 팔아넘기려는 거죠? 

우리는 당신 말을 믿을 만큼 어리석지 않아요.”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하느님을 믿는 사람인데 거짓말을 할 리가 있겠습니까? 

원하신다면 서양 나라에 보내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써 드리지요.”


스크랜턴 부인이 아무리 사정해도 딸을 맡기겠다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스크랜턴 부인은 부모 없는 고아나 어려운 처지에 있는 아이들을 학교로 데려와 학교 문을 열고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스크랜턴 부인은 아펜셀레 선교사를 만났다. 감리교 목사인 아펜셀러는 1885년 8월 우리나라 최초의 학교인 배재 학당을 세우고 정동 예배당에서 선교 활동을 하고 있었다.


스크랜턴 부인은 이화학당에 학생이 겨우 세 명 뿐이라고 아펜셀러에게 하소연했다. 아펜셀러는 자기 집에서 일하는 김홍택씨에게 열 살짜리 딸이 한명이 있으니 김홍택씨에게 잘 말해서 이화학당에 보내라 하겠다고 말했다.


김홍택은 평범한 선비로 몇 년 전만 해도 딸은 시집만 잘 보내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서양인 선교사 집의 

일을 다니면서부터 생각이 바뀌었다. 

서양의 새로운 문물들이 김홍택의 생각을 자연스레 바꾸어 놓았던 것이다. 

그렇게 김홍택씨의 딸 김점동은 이화학당의 네 번째 학생이 되었고 처음으로 부모가 딸의 교육을 위해 

자진해서 데려온 최초의 학생이 되었다.


지금은 수없이 많은 여의사들이 있지만, 불과 130년 전만 해도 이 땅에는 여의사가 한 명도 없었다. 

한 명의 시작이 얼마나 위대한 결과를 낳았는지 알 수 있다. 


‘내 아픈 팔을 치료해 준 머리가 하얀 도사 의사선생님이 있기까지 이 땅은 어떤 시간을 보냈을까?’


작은 시골병원의 의사선생님을 만나면서 130년 전 조선이 떠올라, 다시 한 번 역사의 위대함을 

느끼게 되었다.


2017년, 한 살을 더 먹으면서 나이가 많구나하며 자신감이 없어지기도 했지만 무엇인가 이룰 그 씨앗이 될 수 있다면, 그 발판이 될 수 있다면 지금이라도 충분히 늦지 않았다. 


점동이는 추운 서울의 정동길을 걸어가면서 알았을까?

자신이 이 땅의 여의사의 씨앗이 될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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