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동네

쐐기풀 옷by 날개단약속

20210618쐐기풀옷.jpg








우리 가족이 마법에 걸렸다. 아들에게는 사춘기, 우리에게는 우울증 갱년기라는 마법이. 이 마법을 풀려면 나는 쐐기풀로 옷을 지어야 한다. 이 옷을 지어 우리 가족에게 입히면 마법이 풀린다. 그러나 이 옷을 짓기까지 나는 말을 하면 안 된다.

아들이 게임에 빠져 있다 할지라도 입을 열면 안 된다. 아들의 장점을 쥐어짜 본다. 한 방울은 나오겠지. 프로게이머가 될 수도, 친구들과 협업을 배울 수도 있다. 그래, 좋게 생각하자. 아이를 향해 미소로 화답한다.

밥상머리에서 반찬 투정을 한다. 주걱을 쥔 손이 부르르 떤다. 놀부 아내가 되고 싶지만 참자. 주걱에 붙은 누룽지로 내 입을 막아본다. 우걱우걱. 누룽지가 내 마음을 녹인다. ‘애들 입맛엔 안 맞을 수 있어. 내일은 비엔나소시지를 사서 볶아줘야겠다.’ 다짐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아들이 컴퓨터 모니터를 향해 슛을 한다. 남편의 입에서 사자후가 터져 나온다. 남편은 기계에 약하다. 아들은 몸이 굳었다. 사자후에 제대로 걸렸다. 남편은 입에서 검을 쏜다. 나도 입으로 남편에게 미사일을 날리고 싶다. 한방에 저 입을 막을 수 있는데. 나까지 참전하면 3차 대전이다. 남편이 사자후를 멈추지 않는다. 선을 넘네. 이 남편이. 야!!!!!!!!

아, 질렀다. 소매가 찢어진다. 찌지 직-

화평의 옷을 짓고 있었는데. 사랑의 날실과 인내의 씨실이 이리도 고통스러울 줄이야. 그래서 쐐기풀인가 보다. 지을수록 상처 내는 가시투성이 풀.

화를 내면 옷이 죄다 풀려 버린다. 다시 감아야 한다. 한올 한올 마음에 감아내면 가시가 콕콕 찌른다. 또 화를 냈구나. 다시는 안 그런다면서 별일도 아닌데 왜 참지 못했을까. 구멍 난 가슴에 한숨이 새어 나온다.

옷을 완성할 수 있을까. 나는 기약 없이 또 옷을 짓는다. 손이 익숙해져 가는 것은 기분 탓일까. 이번에는 미안함을 넣어 3중으로 튼튼하게 꿰매야지. 오늘은 옷을 지을 수 있을 것 같다. 겨자씨만 한 믿음에 꿰어 다시 박아보리라. 드르륵


조회수
45,017
좋아요
6
댓글
8
날짜
2021-0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