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동네

이르쿠츠크에서by 펜끝 이천 리

20241017이르쿠츠크에서.jpg







대학원을 다닐 때 언어연수를 위해 교환학생으로 러시아 이르쿠츠크에 갔었다. 10개월 정도 지냈는데, 정말 평화로웠던 시절로 기억한다. 잔소리하는 사람 하나 없이 내 마음대로 살았으니. 학교와 집을 반복하는 단조로운 날들이었지만, 종종 가던 시내와 DVD 가게, 별식으로 먹던 중국 식당의 꿔바로우, 기숙사에서 혼자 해 먹던 볶음밥, 두어 번 갔던 바이칼 호수와 작은 섬 여행이 기억에 남는다. 새로운 곳에 있다는 설렘과 외국인이어서 느끼는 낯섦이 모든 순간을 조금씩 특별하게 느끼게 했다. 어디 가서 무엇을 하든 다 새로운 도전이었으니까.

교수님을 통해 알게 된 선교사가 개신교회를 소개해 주었다. 우리나라와 달리 정교회가 일반적인 러시아에서 개신교회는 흔하지 않다. 아는 사람도 없었고 성격상 새 친구를 사귀지도 않았고 러시아어로 하는 설교 말씀이 이해되지도 않았는데, 왜 그렇게 열심히 갔을까? 매주 교회는 가야 한다는 생각에,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영하 30도로 내려가는 날에도 집을 나섰다. 버스를 타고 한참 가서 예배를 드리고 혼자 살짝 빠져나오면서 뿌듯해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 나의 열심을 하나님께서 기쁘게 바라보셨길 바라지만, 한국에서 친구가 보내준 주일 말씀을 읽지 않고 쌓아두던 나를 생각하니 부끄러워진다. 그때도 지금처럼 내가 좋아하는 것만 열심히 했나 보다.

그곳에서 정말 열심히 했던 것이 하나 더 있다. 바로 ‘감사하기’. 추운 지역이라 겨울이 6개월 정도 되었던 것 같은데, 늘 길에 얼음이 있었다. 유독 나는 잘 미끄러졌다. 매일 넘어지는 그때마다 “감사합니다.”를 중얼거렸다. 더 크게 미끄러지지 않은 것에 대해, 다치지 않은 것에 대해 감사드렸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해야 남은 날들도 무사히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후로도 자주 미끄러졌지만 큰 사고는 없었고, 한국으로 돌아올 때쯤엔 추운 날들이 지나가서인지 더 이상 미끄러지지 않았다.

나의 러시아 연수 기간을 두 단어로 말하자면 ‘평화로움’과 ‘감사’다. 정작 원래 목표였던 언어연수를 알차게 하진 않았지만, 내 인생에서 가장 평화로웠던 시간으로, 그래서 너무나 감사했던 시간으로 남아있다.



조회수
1,344
좋아요
1
댓글
0
날짜
2024-1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