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알리고자 하는 것은
목사는 말했다 : 「맞습니다. 불교를 인정한다고 해서 교회를 버리고 산사로 들어가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으면서 불교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인정해야 대화가 되고 진정한 평화를 이룰 것입니다. 」
글 : 정범석
대화
월명동에 내려와서 일을 한 지도 오랜 세월이 흘렀다. 몇 년 전 추석연휴가 끝나가는 어느 날, 산책을 하다 보니 몇 그루 나무에 가지치기를 하지 않은 것이 보였다. 그냥 지나치려다가 창고로 내려와서 도구를 챙겨 들고 나무에 올라가 가지치기를 하고 있는데 어떤 분이 올려다보고 계셨다. 가지치기를 마무리하고 내려오니 간 줄 알았던 그 분은 그때까지 그곳에 있었다.
“안녕하세요? 휴일인데 일을 하시네요. 여기 음료수 있는데 좀 마시고 하시지요?”
“감사합니다. 인생에 휴일이 있나요? 쉬는 것보다 일하는 것이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겠습니까?”
“일하시는 분이 철학자 같네요?”
“저야 여기서 일하는 사람입니다만, 선생님께서는 휴일에 집에 안 계시고 혼자서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저도 하루 쉬고 나니 별로 할 일도 없고 또 가족이 없습니다. 이곳에 오면 조용하기도 하고 소나무 산책로를 걸으면 머리가 맑아지고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여기 온 것이 처음이 아니시군요?”
“이번이 세 번째입니다. 늘 혼자 조용히 왔다 가곤 했지요. 은퇴를 바로 앞에 두고 있습니다. 이제부터 무엇을 할까, 나머지 인생을 어떻게 보낼까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이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다지만, 저도 살아 보니 인생이 짧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의 선생께서는 ‘진리를 배우고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 없다. 오늘이 너에게 주어진 마지막 시간이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살라.’고 가르쳐 주셨고 또 그렇게 사셨습니다.”
“좋은 말씀입니다. 진리는 배우기도 어렵지만 실천하기는 더 어렵습니다. 배운 대로만 살아간다면 이상세계인들 못 이루겠습니까.”
“실례지만 선생님은 뭐 하시는 분이신지요?”
“말씀드리자면 성직자이지요.”
“그러시면 스님은 아니신 것 같고 목사님 아니면 신부님이신가요?”
“목사입니다.”
“대개 목사님들은 여기 한 번 다녀가시면 그 뒤로 잘 오시지 않는데 목사님은 다르시네요.”
“특별하게 다른 것은 없습니다. 사람마다 가치관이 다르지 않겠습니까. 모든 것을 선입견을 갖고 봐서는 안 되지요. 서로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도 목사님은 생각하시는 폭이 넓으신 것 같습니다. 세 번씩이나 오셨다니 이곳에 오시면 좋은 일이 있습니까?”
“정말 좋지요. 이곳에 오면 모든 것이 자연적입니다. 개발은 했지만 인위적인 냄새가 전혀 나지 않고 소란스럽지 않아서 좋습니다. 자연은 인간을 편안하게 하고 모든 것을 품어 줍니다. 인간은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만 좋아하고 그런 사람들만 같이 모여서 살려고 합니다.
그런데 자연은 활엽수와 침엽수, 가시나무, 잡초들까지 모두 어우러져 다투지 않고 잘 살고 있지 않습니까? 사람들은 자기와 생각이 다르면 내 것만 옳다고 서로 다투고 싸웁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의 모습이 아닐 겁니다. 이런 곳에서 일하시면 힘은 들겠지만 공기도 좋고 건강에도 좋으니 얼마나 좋습니까?”
“그렇습니다. 날씨가 이렇게 더워도 나무 그늘만 들어오면 시원합니다. 땀을 흘리고 나서 나무 밑에서 물 한 잔 마시면 전율이 느껴집니다. 그 어떤 음식보다 맛있고 마음을 즐겁게 합니다. 이곳에 와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고 가면 되는데 순수한 마음으로 보지 않고 좋지 않은 쪽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을 보면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마음에 두지 마세요. 세상에는 사람 수만큼이나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같은 현상을 놓고서도 수없이 다른 의견이 나옵니다. 저도 처음에는 이곳에 대해 좋지 않은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지만 여기 와서 대화를 해 보고 나서야 내가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생각들이 잘못됐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곳에 계신 분들이 저와 대화를 하면서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나게 해 주셨다.’고 하며 ‘하나님 감사합니다. 예수님 감사합니다.’라고 했습니다. 나와 이야기하는 동안에도 감사하다는 말을 여러 번 했습니다. 처음에는 훈련을 받아서 그렇게 이야기하는 줄 알았습니다.
두 번째 와서야 그것이 훈련을 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해 제대로 배워서 그렇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아, 이곳도 하나님과 예수님을 가르치고 배우는구나.’ 하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이 어린 학생들까지도 ‘하나님 감사합니다. 예수님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입에서 술술 나왔습니다. 제가 여기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 본 것은 아니지만 만났던 사람들마다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목사님께서 그렇게 잘 봐 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리는 늘 하나님과 예수님을 중심해서 배우고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사랑을 실천하고 삶을 살아가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혹시 보셨는지요? ‘오직 주 하나님’이라고 돌에 새겨 놨는데, 그것이 우리들의 신앙의 근본 뿌리입니다.”
“봤습니다. 처음에 그것을 보고 그냥 넘겼는데 여기 분들과 대화를 나누고 나서야 왜 그것을 써 놓았는지 알게 됐습니다. 여기 지도자의 교육 목표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도 목회를 40년 이상 하고 이제 곧 70을 넘어 은퇴를 앞두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저에게 성공한 목회자라고 합니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겪어 봤습니다. 제가 느끼기에 저는 훈련이 덜 됐지요. 그래서 세련되게 말하지 못하고 행동도 어설픕니다. 하지만 진실한 마음은 상대에게 전해진다는 걸 압니다. 훈련을 한다고 해서 진실이 가려지지는 않습니다. 제 나이 정도 되면 누구나 다 진위를 구분하는 능력을 갖게 됩니다.”
“목회를 성공적으로 하시고 은퇴를 앞두시고 인생을 돌아보시는 목사님을 보니 참 보기 좋습니다.”
“무슨 성공이요? 남들이 말하듯이 제가 성공한 목회자일까 생각해 봅니다. 교회가 크고 교인이 많다고 성공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전한 말씀을 듣고 교인들이 주님의 삶처럼 살기 위해서 노력해야만 올바른 삶을 산 것이고 제대로 된 목회를 한 것입니다. 그래서 진지하게 생각해 봤습니다. 그러나 스스로의 물음에 자신이 없습니다. 제가 봐도 그런데 주님이 보시면 어떻겠습니까?”
“진지하게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그 자체가 성공한 것 아닐까요?”
“아닙니다. 제가 이곳에 왔을 때 여기 있는 사람들이 열심히 기도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방문한 사람들에게는 친절하게 진심으로 대해 줬습니다. 처음에는 그러려니 했는데 두 번째도 그랬고, 오늘이 세 번째인데 오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저는 깊게 생각해 봤습니다. 제가 전한 말씀을 들은 사람들이 여기 있는 사람들처럼 열심히 기도하고 하나님을 믿고 사람들에게 늘 기쁜 마음으로 대하고 있을까 진지하게 생각해 봤습니다. 하나님을 잘못 믿고 있다고 생각했던 여기 사람들이 이처럼 하나님을 열심히 믿는 것을 보니 충격이었습니다. 목회를 오랜 세월 했지만 ‘내가 말씀을 전한 사람들이 이렇게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살고 있을까?’ 생각해 보니 저는 자신이 없습니다.”
“저희 선생님께서는 말씀을 들었으면 말씀대로 실천하고 살아야 한다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여기를 개발하는 동안 선생님께서는 저희들보다 더 많이 일하셨습니다. 모든 것이 부족하고 작업 환경이 열악했지만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의 모범을 보여 주셨습니다. 저희는 하루 백 번 이상 하나님, 예수님께 감사해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감사할 것이 왜 없느냐? 살아 있는 것이 최고의 감사거리 아니냐? 없으면 찾아서 감사해야 한다.’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은 진정한 신앙인이 아니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말씀을 듣고 교회 문 열고 나가면 금방 잊어버리고 실천하지 않으니 삶이 변화되지 않고 즐겁지도 행복하지도 않은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불만이 많고 남과 비교하고 부족함만 느끼고 나중에는 희망을 잃어버리고 절망합니다. 옛말에 ‘귀 장사 하지 말고 눈 장사 하라.’는 말이 있듯이 직접 보고 들어 보면 이해하지 못했던 것도 이해하게 되고 오해가 풀어지게 된다는 것을 여기 와서 알게 되었습니다. 믿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믿음대로 사는 것이 중요한 것 아니겠습니까? 살아 있는 것을 늘 감사하면서 즐겁게 살아야지요.”
“목사님 말씀 잘 들었습니다. 오늘은 시간이 많으신 모양입니다.”
“아닙니다. 은퇴를 앞두고 있으니 마음이 복잡하여 이곳에서 산책을 하면서 생각을 정리해 보려고 잠깐 왔는데 우연하게 일하는 것을 보게 되었지요. 이곳에 오면 자연의 아름다움에 젖어 마음의 평화를 얻게 됩니다. 일하는 것을 바라보니 재미있어서 시간 가는 것도 잊고 구경하게 됐습니다. 가지를 자르는 것을 보고 나도 좀 배웠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 Photo Credit: Erwin Soo@Flickr CC BY 2.0
“목사님 이게 보기보다 힘듭니다. 막상 저도 올라오면 힘에 부치고 다리가 후들거립니다. 나이 먹으면 못 할 일입니다. 작은 나무는 몰라도 이것을 배워서 뭐 하시게요?”
“저도 배워서 은퇴한 후 정원 손질할 때 쓰게요.”
“이것을 배우려고 하지 마시고 은퇴하셔서 정원을 가꾸게 되시면 연락하세요. 저랑 친해지면 제가 가서 해 드릴 수도 있습니다.”
“미국까지 오시겠습니까? 부인하고는 사별했고 제 자식 놈이 하나 있는데 미국에 살고 있어 저에게 오라고 합니다. 그래서 바로 가려고 합니다.”
“친하게 되면 미국 아니라 더한 곳도 가지요. 목사님, 미국은 우리나라처럼 나무를 가꾸지 않습니다. 나무를 그냥 크게 키우는 정도이니 특별하게 배우지 않으셔도 될 것입니다.”
“나무를 기르고 가지치기를 하는 데도 방법과 원칙이 있겠지요?”
“저는 전문가가 아니라 특별하게 말씀드릴 것이 별로 없고 이곳을 개발하신 선생님께서 일을 함에 있어 몇 가지 당부하신 말씀이 있었지요. ‘나무를 키우려면 나무를 귀히 여기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가꾸어야 한다. 사람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균형을 맞추어 살아가야 하듯이 나무도 가지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균형을 잡아서 길러야 한다.
모든 만물이 인간의 소유물이 아니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니 소중하고 귀하게 여기고 이것을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하신 하나님과 예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대하고 사용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과 예수님께서 멀리 계신 것이 아니라 무슨 일을 하든지 언제 어디서든지 항상 지켜보시며 어려울 때 도와주시고 늘 함께하신다고 하시면서, 주인이 있든지 없든지 최선을 다해 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돌조경을 보셨겠지만 그 일은 정말 위험한 일입니다. 한 번도 일해 본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 10년 동안 공사를 했는데도 손끝 하나 다친 사람이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함께하셨기에 가능한 것 아니겠습니까? 이곳은 정원이 아니라서 크게 손댈 것은 없고 꼭 필요한 것만 손을 대고 자연스럽게 놔두는 편입니다. 나무는 크면 큰 대로, 작으면 작은 대로 우리들에게 즐거움과 유익을 줍니다. 목사님께서 넓은 마음을 가지고 많은 것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시니 한 가지 묻겠습니다. 목사님께서는 이단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단에 대해 신학적으로 얘기할 수도 있고 복잡한 이론을 펼치기도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과 다르면 이단’이라고 얘기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이단에 대해서 우리들이 판단하지 말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 밭에 가라지를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을 때 ‘놔두어라 추수 때 주인이 오시면 알곡과 가라지를 다 구분하시고 알곡은 창고에, 쭉정이와 가라지는 불 태운다.’고 하셨습니다.
인간들이 정죄하고 심판할 수 없습니다. 때가 되면 심판은 오직 하나님만이 하십니다. 우리들은 열심히 복음을 전파하고 주님의 말씀대로 실천하고 살면 됩니다. 서로 상대를 인정해야 합니다. 내가 상대를 인정해야 상대가 나를 인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종교도 다양하고 믿는 방식도 사람 수만큼이나 다양하지 않습니까? 저희 교인들이 천 명이 넘습니다만 같은 설교를 들어도 받아들이는 것이 각기 다릅니다.
그래서 어떤 종교학자는 종교는 인간의 수만큼 된다고 했습니다. 지금은 다양성의 시대가 아닙니까? 내가 있으면 상대가 있는 것입니다. 내 것만 옳다고 주장한다면 다른 사람은 그것을 받아들이지도 않고 인정하지 않겠지요? 내 것만 옳다고 하는 것은 오만과 독선입니다. 남을 탓하고 지적하기 전에 자기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옳고 그름은 주님만이 아십니다.”
“옳으신 말씀입니다. 목사님께서는 세상을 받아들이는 넓은 마음을 가지신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다양성의 시대라고 해서 다른 사람을 마냥 따라갈 수는 없겠지요. 자기 정체성을 지키면서 남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마음을 가져야 서로 이해되고 화평할 수 있습니다.”
“맞습니다. 불교를 인정한다고 해서 교회를 버리고 산사로 들어가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으면서 불교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인정해야 대화가 되고 진정한 평화를 이룰 것입니다. 저도 젊었을 때는 모든 것을 이분법적으로 판단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마음을 열고 인정하고 이해하게 되면서 새로운 눈을 뜨기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옳고 그름을 누가 알겠습니까? 다 사람들의 판단일 뿐입니다. 어느 누가 내가 의인이다, 구원받았다고 하나님 앞에 자신 있게 나아갈 수 있겠습니까? 젊은 시절에는 모든 사람들을 다 주님 앞으로 인도할 것처럼 의욕에 넘쳐 있었습니다. 지금은 내 구원 받기도 힘겨운 일이라는 것을 이 나이가 되어서야 깨달았습니다.”
“목사님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혹시 연락처라도 남겨 주시면 좋겠습니다.”
“좋은 인연은 이렇게 자연스럽게 만나는 것입니다. 인연이 되면 또 만날 것입니다. 혹시 미국에서 만날지 누가 압니까? 만나서 즐거웠습니다.”
몇 년 전의 짧은 만남이었지만, 우리는 참 깊은 대화를 나눈 것 같다.
책 소개
《고목이야기: 정범석의 인생 지혜 산문》 본문에서 발췌함, 명인출판사
위와 연결해서 구매된 책을 통해, <관건평론망>으로부터 아이들의 행복을 위한 단체에 전액 기부될 것입니다.
작가 : 정범석
작가는 한국 정신을 갖고 있는 강인한 어른이며, 가족에게 있어서는 정이 있고 의미가 크며, 일에 있어서는 용감하게도 목사를 담당하고 있다. 한국인에 대한 대만인의 오해와 호기심이 있는 시기에, 정범석은 펜끝으로 부모, 가족, 및 사회에 대한 관찰을 도출하고, 신앙의 열매인 진정한 아름다운 의리와 인정을 전달하며, 한 가지 견해에만 구애받지 않아 현대적인 느낌을 지니고 있어 색다른 한류를 사람들은 볼 수 있다.
작가는 2차 세계대전 이후에 태어났고, 인생의 고난을 통해 지혜를 얻은 경험들이 있으며, 대형 자연 돌조경의 책임자와 수련원의 수석 엔지니어 외에도 세계 각국의 대학교에서 순회 연설을 진행하며 전 세계에 발자취를 남겼다. 한 세월을 통해 인생 각 방면의 성공들을 축적하고, 동시에 유머와 시원함을 갖고 있으며, 연장자들, 성공 인사들, 혹은 젊은이들에 상관없이 모두와 몹시 즐겁게 대화할 수 있는, 젊은이들에게 있어 강직한 어른이다. 본 책은 하나의 결정체와 같은 지혜에 충만한 인생에 관한 대화를 하나의 책으로 묶은 것이다.
책의 이름 <고목 이야기> 안에 '고목'은, 그가 운영하는 블로그의 이름이기도 하며, 또한 한 그루의 오래된 나무와 같은 자신을 은밀히 가리키기도 한다. 고목은 표면은 멀쩡하지만, 안은 비어있고 생명만을 유지할 수 있는 그러한 나무다. 그러나 못 생기게 자라서 쓸모없게 보이더라도, 오히려 도끼로 찍혀 하나의 목재가 되지 않고 요행히 한 그루의 고목으로서 살아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