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푼칼럼 by 봉국장

봉국장이 들려주는 세푼칼럼! '세푼'짜리 부족한 글 솜씨로나마..... '세'상의 언어로 '푼' 주일말씀을 써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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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알지 못하는 자기완성의 때

 

 


인문학의 관점에서의 ‘하늘과 통하는 인간’

  최근 우리 사회에서도 인문학(人文學)이 열풍이라 불릴 만큼 각광(脚光)을 받고 있습니다. 인문학이 놀라운 것은 ‘그 사는 모습의 본질적 측면에서는 동서고금(東西古今) 사람 살이란 것이 비슷했으며, 옛사람들도 지금 우리네와 비슷한 고민을 했고 주어진 환경과 여건이 어떠하든 간에 나름의 <답>을 찾아 그 길을 갔었구나.’ 하는 사실을 알게 되기 때문인지 모릅니다. 그리고 수백 년 혹은 수천 년 전 나와 같은 고민을 했던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도 큰 ‘힐링(Healing)’이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인문학에 신(神)을 결합하게 되면, 그 비슷비슷한 인간들의 삶 속에서 하나님 역시 그때나 지금이나 ‘답’을 찾아오라고 계시를 쉬지 않으셨을 것이라는 추측에 더욱 가슴 설레게 됩니다. 대개의 인문학자는 이러한 하늘과 사람이 통하는 통로로 사람의 마음(心, 腦)이 중요하다고 여겼는데, 바로 이 사람의 마음에는 하늘의 명(命, 天道, 性…)이 깃들어 있어 마음이 주인 되는 삶을 하늘 향한 이상적 삶으로 간주하고, 진정한 학문은 마음을 중심으로 하는 것이라, 마음을 수렴하여 항상 깨어 있는 상태로 공부를 계속하면 누구나 하늘의 음성을 듣고 성현(聖賢)이 된다고 보았습니다. 


  한국의 큰 스승 중 한 분인 퇴계 이황 선생은 ‘하늘과 통하는 인간’에 대해 더욱 구체화하여, 도(道)가 바람직한 것을 아는 자를 선인(善人), 도를 자신에게 지닌 자를 신인(信人), 도를 충실하게 갖춘 자 미인(美人), 도가 내면에서 충실하여 겉으로 광채로 드러나는 사람을 대인(大人), 대인으로서 본질적이며, 온전한 변화를 이룬 사람을 성인(聖人). 성인으로서 그 경지를 헤아릴 수 없는 상태에 이른 사람을 신인(神人)이라고 하며, 진리가 쌓여 익힘(學)과 일(實踐)이 자연스레 하나 되는 경지를 천인합일(天人合一)의 경지로 신(神)과 같은 사람이 되는 것으로 이해하였습니다.

  결국, 인문학의 관점에서 어느 시대나 진정한 인간구원(휴거, 부활, 영생)에 대한 소망, 천인합일(天人合一)에 대한 꿈이 인간 내면에 면면히 내재 되어 내려왔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신(神)’에 대한 정확한 이해(시대 말씀)는 인문학의 정점(頂點)일 수 있을 것입니다.



수평적 공감과 소통의 시대, ‘신부’의 시대

  그러나 신을 담는 그릇으로서 시대의 종교가 제 역할을 못 하게 될 경우가 문제인 것입니다. 시대에 따라 마음이 깨끗한 자가 있어 그 하늘의 음성을 뚜렷하게 듣고 전해 주었을 때가 있었고, 온통 사람들의 마음이 어지러워 그 음성을 많은 소음 중 하나로 묻어둔 채 간과를 했던 시대가 있었을 것입니다. 현재의 시대는 물질적 풍요와 함께 지극히 개인적 자유가 보장되는 시대로 막말로 표현하자면 ‘자기 혼자 제멋대로 살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오랜 노력과 투쟁으로 얻은 결과물입니다.

  이때 자유로운 개인들 사이에 필요한 커뮤니케이션은 수평적인 것이어야 합니다(공감과 소통). 그런데 종교는 아직도 절대적인 선과 절대 가치를 기준으로 수직적 커뮤니케이션을 하고자 하니, 지금의 종교는 시대의 몸에 맞지 않는 의복인 셈입니다. 이것이 근래의 탈 종교화 경향이 가속화될 수 밖에 없는 원인 중 하나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종교’는 인류의 현대 문명의 뒷전으로 물러나야 하는 것일까요?
사실 종교, 특히 기독교의 성서는 이미 이를 잘 알고 있었으며 이에 대한 해법을 미리 제시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종’과 ‘아들’이 아닌 ‘신부(신과 대등하고 수평적인 관계를 갖게 되는...)’의 시대를 수천 년 전에 예언했다는 것을 놓쳐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 어느 때가 될지 모르나, 인간으로서 신과 대등한 신부의 자격을 인식하고 이를 갖추기 위한 노력을 시작하는 그런 때가 우리 모두가 기다리고 있는 아무도 알지 못 하는 때가 되는 것입니다.

  이황 선생의 ‘퇴계전서’에 보면 군자의 학문이란 ‘자기완성의 경지’에 이르고자 하는 것이며, 그 경지에 이르게 되면 마치 깊은 산, 무성한 숲 속에 한 떨기 난초가 꽃을 피워 종일 그윽한 향기를 풍기면서도 난초 스스로는 향기를 내는 줄 모르고 있는 그런 상태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어디선가 난초의 그윽한 향기를 맡게 된다면 관심을 갖고 어디 어떤 꽃이 도대체 어떤 향기를 내고 있는 것인지 찾아서 확인해 볼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아무도 알지 못 하는 때를 알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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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15-05-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