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국장이 들려주는 세푼칼럼! '세푼'짜리 부족한 글 솜씨로나마..... '세'상의 언어로 '푼' 주일말씀을 써 올립니다.
한 밤 중에 누가 사도바울을 찾아 와서 아주 은밀히 만나 줄 것을 요청합니다.
'무슨 일인지…'
“사실 나는 예수요, 십자가에서 기절 했다가 다시 깨어 나고 보니
내가 죽은 것으로 알고 장사를 지냈더군요. 홀로 무덤 문을 열고 나와 이 후 잠적해서
이렇게 지내고 있소.
듣자 하니 당신이 나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
모든 인생을 걸고 증거하며 산다기에 안타까워 이 진실을 전해주러 이리 찾아 오게 된 것이니 이제부터 정신 차리고 헛된 일로 당신의 인생을
허비하지 마시오”
너무나 충격적인 소식이었을 것인데 사도
바울은 조금의 미동도 없이 바로 대답합니다.
“당신이 예수가 맞는지 아닌 지 내가 알 수
없소 이다만, 나의 이 일은 분명히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사명이고, 예수를 통한 구원의 사역 또한 틀림없는
하늘의 역사요.
혹 당신이 정말 예수라면 정신을 차려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고 당신인 듯 하군요.
나는 나의 이 일을 끝까지 해 갈 것이오.”
어디서 읽었는지 지금은 그 출처도 기억이 안
나지만, 필자가 학창 시절 읽었던 사도바울의 이 허구(Fiction)로 한 동안 생각이 깊었었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나의 달려 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전 20:24)
사도바울은 ‘나’의 달려 갈 길을 분명히 알고 ‘나’의 일을 한 사람입니다.
남의 일 해 주기 증후군
저마다 주의 일을 한다고 하지만, 이 일을 겉으로 하는 사람과 속 깊이 하는
사람으로 나뉘어 지는 것이 현실입니다.
겉으로 하는 사람은 그저 ‘남의 일’을 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남의 일’을 하는 사람들은 말 그대로 남이 요청하는
대로 이것저것 할 것이 많은지라 정말 바쁩니다. 하지만 정작 남아지는 것은 없습니다.
시급한 것을 그 때 그 때 해 치우고 말아 버린 것이라
의미 있게 남아 지는 일들이 적을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바쁘게 뛰어 다니는 데 정작 남아
지는 것은 없는….
그래서 ‘바쁘게 살기’와 ‘실망 속에 잠수함 타기’를 주기적으로 반복하는 현상.
이를 ‘남의 일 하기 증후군’ 정도로 부를 수 있겠습니다.
또한 ‘남의 일’을 하는 사람들의 다른 특징은 ‘주의 일’을 해 드린다는 그럴듯한 겉 포장 속에 사실은
나의 책임을 안 지려 하는 것이기에 오래 지속하지 않고, 끝까지 해
내지 않는 것입니다.
그저 일 시킨 '남'의 비난을 피할 정도 했으면 눈치껏 슬그머니 그만
두고 싶어 합니다.
남의 일을 하는 사람은 '들러리 인생', '종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정명석 목사께서 금주 말씀 통해 ‘겉은 번지르르하고 그럴 듯 해 보이지만 그
속을 살펴야 한다. (속) 행실을 봐야 안다.’ 하신 말씀도 이와 관련 깊을 것입니다.
종의 시대는 당연히 주인의 일, 남의 일을 해 주는 시대가 맞습니다.
하지만 신부의 시대는 달라져야 합니다.
신부의 일은 남의 일이 아니고, 주인(안 주인)으로서 하는 ‘나’의 일입니다.
종들은 ‘남(주인)’이 시키는 대로 얼른 몸을 바삐 움직여
행하는 것이 맞겠지만 주인 된 자는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살피고 ‘나’의 일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바쁘다 바빠’ 엄살 떨지 말고 ‘나는 지금 내 일을 하고 있나?’
정말 깊이 생각해 보는 일부터 해야 할
것입니다.
하늘 주신 사명을 정말 나의 일 삼고
꾸준하게, 끝까지 이룰 때 까지 행하는 자들은 ‘나’의 영혼을 성장시키고 아름답게 하는 일(이것이야말로 제대로 된 신부 단장)을 하는 자들입니다.
“그 누가 주인(안 주인, 신부)되어 행할꼬?” 물으실지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대답하실 것입니까?
“하나님 구상 따라 받은 ‘나의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하게
여기지 아니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