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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0보
‘희망과 감사와 기쁨의 부활의 해’에 들어서서 오늘 오전까지 제가 걸은 총
걸음의 수 입니다. 사실 필자는 지난 해 11월부터 하루 평균 1만보씩을 꾸준히 걷고 있습니다.
‘걷는다는 것은 사람들에게 가장 자연스러운 일이고, 걷는 모습이야말로 가장 역동적이고 친근한
이미지’ 줄리안 오피 (Julian Opie 1958년~ 영국 서양화가)의 의견입니다.
(줄리안 오피 작품이 전시 중인 수원시립 아이파크 미술관)
‘병의 90%는 걷기만 해도 낫는다’ (나가오 가즈히로 저)라는 책에서는 ‘걷기’가 아토피성 피부염, 우울증, 고혈압, 골다공증, 암까지 병의 90%를 예방하고 치료하는 힘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다른 동물들과 달리 인간은 걸을 수 있어 '뇌'가 급격히 발달했고, 신을 의식하는 차원까지 그 수준이 높아 졌을 것입니다.
'걷기'야 말로 인간으로 하여금 건강하고 행복하게 그리고 만물의 영장이 될 수 있게 만들어 준 창조주의 놀라운 선물입니다.
단순히 ‘걷기’의 효용성을 설명하고자 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일이건 작심삼일에 그치던 것이 다반사 였던 필자가 석 달 가량 꾸준히 ‘하나의 일(걷기)’를 실천하면서 깨달은 바가 있어 이를 공유하고자 합니다.
아주 사소하지만 매일 만보를 달성하면서
스스로에게 ‘오늘도 너 해냈구나 이와 같이 어떤 일이든
해 낼 수 있을 거야’ 혼잣말을 하면 ‘희망’이 생깁니다.
'걷다' 보니 이렇게 씩씩하게 걸을 수만 있어도
얼마나 ‘감사’ 한 일인지 절실하게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발목,무릎과 허리가 큰 통증 없이 나를 잘 걸을 수 있게 해 주는 것이,
만보 를 걸을 수 있도록 필요한 일용의
양식을 공급받고 있음이,
맑은 공기를 마음 껏 폐에 불어 넣을 수 있음이,
게다가 마침 따사로운 햇볕이 걷고 있는 내
뺨 위를 간질이듯 내려 앉아 준다면,
마음에 드는 가로수까지 내 가는 길에 죽
늘어 서 있어주기까지 한다면…
구름과 바람, 기온... 풀과 꽃, 낙엽과 눈..
단 한 순간도 똑 같은 적이 없었던 이 놀라운 걷기의 무대, 배경
그 위를 걷고 있다는 이 사실이 얼마나 놀라운 감사의 이유들입니까!
“이렇게 씩씩하게 걸어 다닐 수 만 있어도
놀라운 정도로 감사하고 기쁜 것인데…”
금주 정명석 목사께서 말씀 하신 바 같이
생활 속에서 죽어 있는 일들이‘수백 가지’라고 하셨는데 그 중 감사와 기쁨에 죽어 있지는 않았는지,
참으로 우리는 하나님과 주께 감사하기 위해 너무나도 ‘헛되고 ‘큰(?)’ 욕심만을 간구하고 있지는 않았었던가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교회에서나 '하늘 일을 열심히 해서' '새 아파트 분양권에 당첨' 되었다거나,
'높은 지위로 생각지 않은 승진을 했다'는 ‘간증’을 들을 수 있습니다.
물론 은혜로운 장면들임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정작 이방인들의 선교를 위해 목숨 건
전도여행을 했던 사도 바울에게서 ‘로마의 신도시 아파트 당첨’에 대한 내용을, 무수한 환난과 핍박 속에서 오직 주를 증거했던 베드로가 '원로원에 추대' 되었다는 내용은 들어 보지 못 했습니다.
그렇다면 바울과 베드로는 그의 사명의
노정에서 ‘감사’와 ‘기쁨’이 없었던 것일까요?
단언컨대, 매일매일 고단한 사역의 삶 가운데 감사와 기쁨이 가득했을 것이며,
교수형에 처해지던 그 마지막 순간에도, 거꾸로 십자가에 매달렸던 그 때에도 바울과
베드로의 마음은 여전히 감사와 기쁨이 충만했을 것입니다.
두 영웅은 가장 위대한 희망과 감사는 오직 하늘과 연관
되어져서 ‘영원히 행복해야 행복한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경지에 오른 사람이기에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데살로니가전서 5장 16-18절)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늘의 뜻 어린 역사의 길을 가는 우리는
지극히 사소한 것에서 위대한 ‘희망’을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하찮은 지경의 일들에서 놀라운 ‘감사’를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죽어 있어 그런 것이지 지극히 사소한
것, 하찮은 수준의 그것들이야 말로
위대한 하늘의 은혜이며 놀라운 축복임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도저히 견디기 힘들 것 같은 상황과 여건
속에서도 ‘나는 행복하다’ 하늘 향해 찬양하시는, 사과 한 조각을 놓고 기쁨의 눈물을 흘릴 줄 아신 정명석 목사께서 강조
하십니다.
희망과 감사와 기쁨의 부활의 해가 왔는데도 여전히 희망을 맞지 못하고, 감사와 기쁨이 없으면 ‘죽은 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