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국장이 들려주는 세푼칼럼! '세푼'짜리 부족한 글 솜씨로나마..... '세'상의 언어로 '푼' 주일말씀을 써 올립니다.
유럽 여행 일정에 있어 많은 비중은 성(城)과 성당(聖堂)을 구경하는 것입니다.
옛 날 성(성당)들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지역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 해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는데,
당시에는 빈번한 외적의 침입이 있었기에 방어 하기 유리한, 또 잦은 물난리 등의 자연재해를 피하기 위한 목적으로 고지가 선호 되었습니다.
그래서 신분이 높은 사람(왕, 영주, 대주교)은 자연스럽게 높은 곳에 위치한 집(성, 성당)에 거주했던 것이며, 결국 높은 곳에 사는 사람들이 높은 사람들이었던 것입니다.
조금이라도 더 높은 곳에 가야 살 수 있는 확률이 더 높아지는 것이었기에 '높은 곳으로 올라 가는 것'은 모두에게 참으로 절실한 목표이며, 소망이었을 것 같습니다.
인류가 오래도록 기다리던 높은 사람!
아마 최고로 높은 그 분은 응당 가장 높은 '하늘'에서부터 올 것이라는 예상도 시대상을 반영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아는 가장 높으신 '그 이'는 낮고 낮은 '땅에서' 오셨습니다.
이 '경로(?)'에 대한 인식의 차로 인해 높으신 이는 시대 사람들에게 '거짓말 하는 사람‘으로 고난을 받고 핍박을 받았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유럽 한 성당에 새겨진 글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어떤 길로 온 것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길 되신 이(Ego sum via)를 찾는 것이 중요하며
그토록 살기 위해 해야 할 것은 높은 곳에 오르는 것이 아니라 생명 주실 이(Ego sum vita)에게 가야함이 중요하다는 이 말씀이 엉뚱한 '높은 곳'에 대한 환상을 품고 있는 이들에게는 억지스런 거짓말로 들렸을 뿐이었습니다.
꼭 신약 시대 예수님의 사건 외에도 각 시대마다 이런 관점과 인식의 차로 인해 벌어지는 수 많은 '고난‘의 과정들은 일상다반사 처럼 흔히 볼 수 있는 일들이었습니다.
‘역사를 바꿀만한 위대한 혁신들은 대개 처음에는 조롱 받고, 나중에는 의심 받다가 핍박까지 받지만 결국 상식이 된다’
그와 같이 진정 하늘이 허락하신 위대한 역사에 있어서도 이 '고난'은 태생적으로 장차 비할수 없는 '영광'으로 결론 날 '고난‘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정명석 목사께서는 최근 '영광을 받는 것'에 대해 이렇게 정의하셨습니다.
영광을 받는 것이란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은혜를 더 해 주고, 말씀을 전해 주고, 모든 사람들이 반대하지 않고 좋아하는 것'
종래의 상식을 깨는 듯한 이 말씀이 오래도록 가슴에 남습니다.
사람들의 환대와 존경 받고 칭송을 듣는 그런 것이 아니라, '하늘의 일을 행함에 있어 반대해 주지 않는 것'을 영광으로 표현 하신 것에 "가슴 찡" 적잖이 놀랐습니다.
모든 하늘 역사의 사명자가 가야 할 길, 그리고 영광을 받는 다는 것, 그것의 엄중함에 절로 머리 숙여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