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국장이 들려주는 세푼칼럼! '세푼'짜리 부족한 글 솜씨로나마..... '세'상의 언어로 '푼' 주일말씀을 써 올립니다.
"네가 확실하다고 믿고 있는 모든 것을 의심해 봐야 한다" 라는 아빠의 주문에
"내가 아빠 딸 인것, 내가 여성인 것도 의심 해야 해?" 못 마땅하다는듯 묻는 둘째,
'의심(疑心)'이라는 단어 자체가 부정적인 뉘앙스를 갖고 있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의심'이야말로 '확신'에 이르게 하는 최고의 지름길이며 그러하기에 '확신'의 다른 이름인 것입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라는 명언으로 잘 알려진 데카르트(Descartes Rene, 1596~1650)는
의심할 수 없을 정도로 확실한 진리외에 어떤 것도 진리로 받아 들이지 말것(속단과 편견)을 강조하며
"끊임 없이 의심한 끝에 발견한 한 가지 사실은 내가 의심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내가 의심한다는 것은 내가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는 말도 남겼습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말을 '나는 의심한다 고로 존재한다'로 바꿔도 크게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그래 맞아, 네가 아빠의 딸 인것, 네가 여성인 것, 그런 것 부터 의심 해 보거라"
타성에 젖어 그저 의심 없이 '확신'하고 있는 모습은 마치 모래위에 지은 집과 같이 불안 합니다.
'불안'까지 갈 일이 아니다하더라도 '맹목'이 되면 말 그대로 '눈이 멀어' 내가 확신한 그 내용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오히려 제대로 못 보고 있을 확률이 높습니다.
저의 딸이 만약 제 요구에 따라 부녀 관계를 의심 해 본다면 부와 녀, 그리고 부와 모 관계까지 '쪼개어' 생각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 놀라운 인연은 과연 '하늘'로 부터 일 수 밖에 없음을 분명하게 깨닫게 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본인이 '나는 과연 여성인가?' 스스로 의심 해 볼 때에도 '여성'이라는 신체적 특징, 사회적 인식 등 '쪼개어' 고민을 할 것이고
마침내 제대로 성 역할를 비롯한 본인의 정체성에 대해 나름대로 명확하게정리 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의심'을 해야 맹목에서 벗어 나고, 쪼개어 보게 되고, 결국 '분별(分別)'할 수 있습니다.
이 '의심'에서 최종 목적지인 '확신'으로 가는 중간에 반드시 거쳐야 할 경로가 '분별'입니다.
정명석 목사께서 '분별'의 은혜를 받지 못 하면 '무분별'한 자가 되어 그 손해가 크다하십니다.
이 무분별 상태는 걱정, 불안, 초조의 지옥 세계에 있게 하는 것이며 잘 못 하면 영적으로든 육적으로든 '죽음'에 이르기까지 한다셨습니다.
이 '분별'에서 중요한 것이 있는 데 바로 남의 말을 듣거나, 책임 없는 여론에 따라 분별 하는 것을 경계해야 하는 것입니다.
데카르트의 말 처럼 오직 의심하고 있는 '자신', 바로 '자신'에게 역사하신 하늘 그리고 '자신'를 둘러싼 환경과 만물들 통해 성삼위께서 들려 주시는 말씀에 따라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소나 양 처럼 큰 사안에 대해서는 의심하고, 분별하여 확신에 이르게 되었다 하더라도 새 처럼 작은 '의문'에 대해 (의심해서)쪼개지 않고 남겨 놓으면 결국 큰 문제가 되는 사실도 새겨 두어야 할 일입니다
세상은 악합니다. 온갖 꾀는 말로 자신들의 저의를 이루고자 하거나 사리를 챙기고자 할 수 있습니다.
스스로 의심하고 분별하여 확신에 이를 수 있음에 부족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스스로 확신하다고 맹목적으로 분별하고 있는 것은 없는지 점검(의심)해야 하고, 타인이 확실하다고 주장 하는 모든 것 역시 의심해 보고
오직 하늘의 입장에서 분별하고 확신에 거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