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역사를 기록한 유명한 역사학자들이 많지만
그 중 사마천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사마천은 한나라 제6대 황제 경제 중원 5년인 기원전 145년쯤
오늘날의 섬서성 한성현에서 태어났습니다.
사마천이 태어난 한나라는 문화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큰 발전을 이룬 나라로
중국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유학이 세계적인 수준으로 발전한 때가 이 때였고 실크로드를 통해
중국문화와 상품이 지중해를 넘어 서양까지 전파된 때였습니다.
사마천의 집안은 대대로 나라의 역사를 기록하는 사관을 지낸 가문으로,
사마천도 계획적으로 아버지 사마담에 의해 사관이 되도록 교육을 받았습니다.
아버지 사마담은 중국 3천년의 역사를 쓸 역사서를 구상했으나
이루지 못하고 죽으면서 그의 아들에게 꼭 자기가 저술하고자 했던
역사를 써 달라고 유언을 남깁니다.
이에 사마천은 눈물을 흘리며 어떤 일이 있더라도
아버지가 이루지 못한 대과업의 중국역사서를 쓰겠노라고 다짐합니다.
나라의 역사를 기록하는 태사의 관직이었던 사마천의 자부심은 드높았고
아버지의 유언을 이루기 위해, 집안의 사명을 담당하기 위해,
책상에서만 역사를 공부하고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발로 뛰어다니면서
역사의 기록을 수집했습니다.
그러다가 흉노족에게 항복한 이릉을 변호하다가 무제에게 사형의 명을 받습니다.
사형을 면하는 방법은 50만 전의 막대한 벌금을 내거나
생식기를 제거하는 형벌인 궁형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살아가는 것도 넉넉지 못했던 사마천은 죽음보다 더한 치욕을 견디며
스스로 궁형을 선택합니다.
당시 궁형은 죽는 것보다 더 치욕스러운 일로 여겨졌기 때문에
이 벌을 택하는 사람들은 없었습니다.
사마천 역시 명예롭게 죽는 길을 택하고 평생을 치욕스러운 죄인으로
손가락질을 받으며 살 일을 생각하면 단 하루도 편히 잘 수 없고 억울했지만,
그에게는 반드시 해야 할 과제가 있었으니, 바로 역사를 기록하라는
아버지의 뜻을 잊지 않고 받드는 것이었습니다.
사마천은 결국 살아남기로 결심했습니다.
어떤 치욕을 당하더라도 아버지의 뜻을 저버릴 수는 없었습니다.
다행히 2년의 옥중생활을 마치고 무제의 신임을 회복하여
환관의 최고직인 중서령에 올라 계속 역사집필을 해 나갑니다.
무려 10년간의 산고 끝에 드디어 사기가 완성되었으니,
탁월한 재능과 예리한 관찰력, 거기에 인생의 가혹한 체험을 겪은
사마천에 의해 사기는 불멸의 역사서로 세상에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갖은 고생 끝에 책을 완성하고 자신의 사명을 다한 사마천은 2년 뒤 숨을 거둡니다.
비록 우여곡절로 채워진 불우한 생이었지만,
치욕을 견디며 지은 그의 책은 2천년이 넘는 세월동안
생명력을 잃지 않은 불후의 고전으로 전해 내려옵니다.
사마천처럼 여러분들에게도 치욕스럽지만, 억울하지만,
살아남아야 할 이유가 있습니까?
태어나서 꼭 이것만은 해야 하는 사명이 있습니까?
사마천이 집안의 업을 잇고 아버지의 유언을 필사적으로 지키려고 한 것처럼,
이 시대 하나님을 믿으며 신앙의 길을 가는 우리들 역시 하늘 역사를 기록해야 하는
사관의 임무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무엇을 기록하고 남길 것인가?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어떻게 기록해야 될 것인가?
사마천이 끊임없이 고민했듯이, 오늘을 사는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귀한 하늘의 말씀이 어떻게 쓰여지고 전해질지는 오로지 그 사명자만이 담당해야 할
몫이지만, 우리 개개인 역시 발로, 몸으로 역사를 기록하고 남겨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2016년 솟아오르는 해, 행함으로 역사를 남깁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