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련님 오셨습니까?
1970년 중반, 우리 아버지 총각 때 이야기다.
(아버지의 입장에서 이야기 하겠습니다.)
서울에서 가까스로 직장을 구한 나는 가끔 시골에 내려왔었다.
시골집에 아버지와 막내 동생이 살고 있기 때문이었다.
내가 시골로 내려오자 친구 성구가 어떻게 소식을 알고 찾아왔다.
“내려 왔으면 이야기를 해야제. 퍼뜩 건너와서 술이나 한잔 하제이.”
친하긴 해도 집이 서로 먼 탓에 왕래는 없었는데 잘되었다 싶었다.
성구는 동구 밖가지 나와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서로의 안부를 묻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더니 어느덧 집앞에 도착했다.
겉모습이 꾀죄죄해서 나처럼 초가집 신세인가 했더니 의외로 번듯한 기와집이었다.
“우리 집 처음 보제? 너 온다고 술상 다 봐 놨다.”
대문을 두드리니 안에서 소리가 들린다.
70세 노인이 문빗장을 열며 맞이한다.
“도련님하고 친구 분 오셨습니까.”
나는 너무 놀라서 친구 얼굴을 바라보니 시큰둥한 표정이다.
노인이 안내하는 대로 건넌방에 자리를 잡았다.
이미 술상도 근사하게 차려져 있었다.
“더 시키실 일은 없습니까?”
“됐다.”
“친구 분은요?”
“아... 아니 없습니다.”
노인이 사라지고 나는 친구에게 물어보았다.
“아니 나이도 70은 족히 되어 보이는데 반말을 하는가?”
“내도 말 높였다가 우리 아버지한테 혼났제. 하인한테 말 높인다고.”
“아니 저 노인 자식들은 이 사실을 알아?”
“당연히 알제. 이제 우리 살만 하니까 아부지 제발 그 일 좀 하지 말라고 하는디,
좀처럼 듣지 않더라 카이. 너거들 교육시킨 것도 다 주인 어른의 은혜라면서 그 은혜를 모른다고.
자신은 이 일 하다가 죽을테니 너거들은 너거 좋은 대로 살라고 했다제.”
“그래도 그렇지. 너는 다 늙은 노인 부려 먹으면 좋냐?”
“내도 몇 번이나 만류했제. 근데 자기는 이게 좋단다. 그래서 그냥 포기하고 하는 거제.
본인 좋다는 대로 해주는 거지 뭐.”
노예제도가 공식적으로 폐지된 것은 1894년 갑오개혁 때다.
그 문화가 사라진 것도 1930년대다.
제도가 바뀌고 법이 바뀌고 시대가 바뀌어도 본인이 바뀌지 못하면 소용이 없나보다.
신앙도,
옛 신앙을 못 벗어나면 새 신앙에게 굽신굽신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