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고마운 지인이 있어 무엇을 해 줄까 고민하다가
부족한 손재주로 가방 하나를 만들어 주기로 했다.
첫째 날, 가방 구상을 했다.
쇼퍼백 사이즈로 정하고 천을 색깔별로 구상하고서 도안을 했다.
둘째 날, 그리기와 자르기를 했다.
그 다음 날, 구상한 것을 도안으로 해서 겉감에 그리고 잘랐다.
솜과 안감도 조금 더 크게 잘라 주었다.
다 자른 재료를 가지고 퀼팅 선을 그렸다.
퀼팅은 겉감, 솜, 안감이 떨어지지 않고 고정해 주는 작업이다.
셋째 날, 퀼팅을 시작했다 .
책가방 크기 같은 천에 2.5cm 간격으로 촘촘히 바느질을 해 준다.
그것도 격자무늬로 하다 보니 두 배의 시간이 든다.
가방은 특히 가방 솜으로 작업을 하는데 거의 부직포 수준이다.
겉감과 부직포, 안감을 한 번에 꿰매는 일을 수 백 번 해야 한다.
앞면, 뒷면, 밑면을 가지고 한 3일간 작업을 했다.
이렇게 작업을 하고 있는데 문뜩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거 참 아깝다.’
바늘에 대 여섯 번을 찔렸을 것이다.
퀼팅 작업을 오래하면 엄지와 검지 피부가 가뭄의 밭고랑처럼 갈라진다.
너무 힘들게 작업하고 고생은 고생대로 했다.
그래도 더 좋은 방향이 있으면 수고를 해서라도 다시 했다.
남들 보기에는 단순해 보일지 모르지만 내 눈에는 그 가치가 보였다.
‘나는 이 가방의 가치를 아는데…….
이 가방을 구상하면서 이렇게도 사용할 수 있고 저렇게도 사용할 수 있게 만들었는데…….
과연 이 가방을 받을 사람은 이 가방을 잘 활용할 수 있을까?
받는 순간에는 기쁘고 몇 번 들겠지만 이내 다른 가방과 똑같이 취급할 텐데…….
나는 정말 그 가방을 가치 있게 쓸 수 있는데…….
직접 만들지도 않고 고생도 해 보지 않았으니 내 마음의 반이라도 알까?’
가방 주기 싫은 사람처럼 생각이 깊어졌다.
‘그냥 이것은 내가 가지고 다른 거 해줄까?’
‘내가 이렇게 속이 좁았나?’
‘밴댕이! 밴댕이! 밴댕이! 밴댕이!’
결국 삼 주 만에 완성한 그 가방을 잘 포장해서 딸 시집보내듯이 보내버렸다.
지인의 손에 들려 점점 사라지는 그 가방에게 잘 쓰이라며 안녕을 보냈다.
가방을 떠나보내니 문뜩 예배 듣는 내 모습이 생각났다.
하늘의 귀한 말씀을 들을 때 그냥 귀로 들을 때가 많았다.
분명 그 말씀을 받고 준비하기까지의 노력은 말도 못할 것이다.
그것을 모르니 그 심정의 반에 반도 못 느꼈던 것 같다.
주님의 마음도 이와 같을 터,
‘나는 이 말씀의 가치를 아는데…….
이 말씀은 이렇게도 사용할 수 있고 저렇게도 사용할 수 있는데…….
이 말씀을 가지고 잘 사용할 수 있을까?
받는 순간에만 기쁘고 한두 번 실천하겠지만 이내 잊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나는 정말 그 말씀을 귀하게 실천할 수 있는데…….
직접 이 말씀을 받지도 준비하지도 않았으니 내 마음의 만분의 일이라도 알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