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동네

독감주사 맞은 날by 주아나

 

 

 

이주 전 아빠한테서 연락이 왔다. 독감백신을 준비했으니 가져가라는 것이다.

가을이면 연례행사로 아빠가 우리 식구 몫까지 준비를 다 하신다.

병원을 직장으로 둔 아빠의 특권이다.

주사약을 가지고는 내 집 근처에 계시는 간호사 출신의 지인에게 팔뚝을 맡겼다.

 

 

지인은 독감주사는 독감바이러스를 약하게 만들어서 몸에 넣는 것이라 했다.

몸에서 독감을 충분히 이길 수 있는 항체를 만들기 위해서라고.

독감을 몇 번 앓았던 나는 독감의 끔찍함을 잘 알고 있었다.

몸 안에 용광로가 휘몰아치는데 나갈 생각을 안 한다. 땀도 안 난다.

하루를 꼬박 앓아야 열이 서서히 떨어진다. 그런데 이 끔찍한 일을 올해도 안 당하겠구나!  

 

 

독감주사를 맞고서 며칠이 지나자 몸에서 열이 나기 시작했다.

코에서 콧물이 맺혀서 내려갔다 올라 갔다를 반복한다.

머리가 어지러워서 눈을 몇 번이나 껌뻑였다.
‘이상하다. 몸이 왜 이리 무거울까.’ 
이런... 독감신호였다.

 

 

아니, 나는 독감주사를 맞았는데 이 무슨 어이상실?
독감주사를 괜히 맞았네, 괜히 맞았네.
독감주사를 맞지 않았으면 지금쯤 아주 멀쩡히 있었을 텐데, 너무 억울하다.
아가한테 시달리는 것도 부족해서 독감이라니... 눈물이 다 났다.

 

 

그런데 독감을 부른 것은 나였다.
몸이 건강한 사람은 독감주사를 맞아도 아무 일이 없다고 했다.

신랑도 아무 일 없이 지나갔다. 아가랑 같이 있다 보니 제 때 못자고 제 끼니를 못 챙겼다.

그러다보니 몸이 많이 약해졌다.

그 틈에 독감 바이러스가 내 몸에서 기승을 부린 것이다.

 

 

큰 병을 막기 위해서 주사를 놓았지만 몸이 그것을 버텨내지 못한다면 소용이 없다.

오히려 독이다. 몸이 튼튼해야 독이 약이 되는 것이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다.

환란은 앞날을 위한 독감주사 같다.

환란도 몸이 튼튼하면 약이 된다.

그러나 버텨내지 못하면 독이다.

 

 

엉뚱한 생각이 툭 튀어나온다.
‘이거 왠지 신과 악마의 확률게임 같다.
약이 될 것인가? 독이 될 것인가?’

 

 

오기가 발동한다.
어떤 주사도 약으로 만들어버리는 몸을 만들테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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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13/0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