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는 누가 그랬다.
오프라 윈프리 쇼에서 필리피나 헬퍼들에 관한 토픽을 다루더라고... 그게 사실인지는 안 봐서 잘 모르겠지만, 이곳의 독특한 문화인 헬퍼 문화에 관한 이야기를 하자면 책 한 권은 족히 나올 만큼(실지로 이들 헬퍼들의 삶을 다룬 책도 있다고 함) 길어지므로 조심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뭘까?
이곳에 사는 한국인 아줌마인 나에게는, 주부의 일손을 한국과는 비교도 안 되는 값에 덜어주는 고맙고도 필수불가결한 존재들이심이 분명함으로...그리고 이곳에서의 이야기를 하자니 문득 떠오르는 이야기가 그들의 이야기여서다.
우리 집에도 거의 2년을 동고동락(?)한 야야-비사야어로 ‘보모’를 뜻함-가 있었다. 새집으로 이사하면서 나름의 사정으로 그 친구가 정리해고(?)가 되어 좀 가슴이 아프긴 하지만...
이름은 조이스. 조이스네 집은 우리 마을과는 걸어 10분 정도 거리에 떨어져 있는 가난한 사람들의 마을이다. 길 이름이 Gotong(비사야어로 ‘배고픈’이란 뜻) street에 위치하고 있다고 했다.
“길 이름마저 고통이네요.” 하며 그냥 천진난만하게 깔깔 웃는다.
나에게 있어 필리핀의 인상 깊은 얼굴 중 하나는 “해맑음”이다. 현재를 살아가는 한국인으로서는 상상하기조차 힘든 환경에 살면서도 이들의 표정은 그저 때로는 해맑기만 하다.
하루는 조이스가 그런다.
“맘 앨리스! 우리 집에 어저께 뱀이 나타났었어요. 그것도 팔뚝만 하고 길-다란 검은색 뱀이! 어두운 저녁에 그것은 빛이 나기까지 했는데, 우리 집 대문 근처에서 머리를 쳐들고 쓱~하고 사라지더라고요!” 하며 생생한 현장을 증언이라도 하는 듯 들떠서 설명한다.
뭣이? 그것이 어디서 기어들어 왔단 말인가!
상상조차 하고 싶지가 않다.
필리핀의 가난한 동네는, 택시를 타고 가다 보면 어딜 가나 쉽게 눈에 띈다. 조그맣고 지저분하게 생긴 대나무로 대충 만든 그런 집들...혹은 판자촌들...
조이스네 집은 더러운 하천 바로 옆인지라, 그 근방의 습하고 나무가 우거진 곳에서 가끔 뱀이 나타나기도 한단다. 예전에는 조이스네 아빠가 정말 사람 키보다도 길고 굵디굵은 뱀을 잡아 죽였단다. 색깔은 초록색이었는데, 껍질을 벗겨 오일을 만들고 몸뚱아리는 숯불에 구워 온 가족이 함께 시식하시고. 그 오일은 아주 쓴데, 아이들이 간혹 배가 아플 때 한 방울씩 사탕이나 초콜릿과 함께 먹이곤 했단다. 이유~!
참으로 위험천만한 일들도 다 겪네. 그러면서도 단란한 가족인 조이스네.
조이스가 첫째고 밑으론 여동생 3명, 맨 막내 남동생 하나다.
이처럼 그들을 마주하면, 차마 마주하고 싶지 않은 이곳의 가난 문제가 항상 머리를 비집고 내게 들어온다. 마치, 그 아이의 집 문 앞에 징그럽고 능청스레 머리를 쳐들고 있던 검은 뱀처럼...
그리고 연쇄적으로, 나의 삶은 그들에 비해선 얼마나 호화로운 삶인가? ‘호화로운’ 까지는 아니더라도 ‘여유로운’ 정도 즘은 되는 우리네 삶에 맘속으로 ‘주여 감사합니다.’를 읊조린 적이 몇 번이었는지...
꼭 그들의 삶을 들추어 보며, 그들에 대한 동정심을 통해 내 삶이 감사하다고 견주어 보는 건 옳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른 시각에서 보면, 때론 우리가 가진 것에의 감사함에 무뎌져 스스로를 불행과 따분함 속에 빠트리곤 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다시금 감사꺼리 밖에 없는 삶이 아닌가라고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시니 그 또한 감사한 일이 아닐까.
writer by 알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