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푼칼럼 by 봉국장

봉국장이 들려주는 세푼칼럼! '세푼'짜리 부족한 글 솜씨로나마..... '세'상의 언어로 '푼' 주일말씀을 써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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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자신과의 싸움


 


자기를 부인하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자기부인하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누가 나를 때려도 ‘앗!’ 하고 아프다는 소리조차 않을 수 있는 것. 그런 것이 자기 부인입니다.”

최근 월명동 수련원장님께서 말씀 하신 자기 부인에 대한 정의 입니다.
쉽게 말해 ‘자기부인’이라는 것은 ‘시체’나 다름없이, ‘죽었다.’하고 살라는 말씀인지도 모릅니다. 바로 금주 말씀 ‘자기와 싸워서 이김(克己)’이, 성경상의 표현으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를 따름’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 점에서 ‘자기부인’, ‘자기를 이김’은 사도바울의 ‘나는 매일 죽노라.’라는 말씀과도 일맥상통하는 말씀입니다.

‘자기’가 스스로 자기를 ‘죽일’만큼 치열하게 싸워야 한다는 것은 내 안의 서로 ‘다른’ 두 생각(두 법)때문이라고 금주 본문 말씀을 통해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와 같이 자기부인이란, 자기모순을 다 없애는 경지를 이름이니 결코 쉽지 않은 일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틀림’과 ‘다름’의 혼란

자기부인이 이처럼 어려운 이유는 ‘다름’과 ‘틀림’의 구분을 확실하게 하지 못 하는 인간들의 어리석음에서 기인 한 것일 수 있습니다. 이 ‘다름’은 말 그대로 ‘다름(Different)’ 일 수도 있고 ‘틀림(Wrong)’일 수도 있습니다. ‘틀린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서 자기는 ‘다른 것’이라면서 자기 부인을 하기는커녕, 주위 사람들에게 ‘다름’을 인정 않는다고, 다양성이 부족한 전 근대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것이라며 비난하는 지경에 이른 사람들도 꽤 많아 보입니다. 


반면에 ‘다른’ 것을 ‘틀린 것’이라고 막무가내로 우기고 덤벼드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우리 섭리역사는 ‘틀린 것’이 아니고 전혀 ‘다른’ 역사인데 ‘틀린 역사’라고 오해하면서 핍박을 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 되는 것입니다.

‘틀림’과 ‘다름’의 혼란, 어쩌면 사도 바울의 삶은 그것들과 싸우는 삶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틀린 역사로 오해 하고 그토록 기독교 박해에 앞장섰던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주를 만난 후 기독교가 ‘틀린’ 역사가 아니고, 기존과 전혀 ‘다른’ 하늘의 새 역사임을 인식하고 ‘개종(改宗)’하는 큰 싸움을 했어야 했고, 그 후로도 수 없는 ‘틀린 것’이라는 오해와 핍박들 속에서 ‘다른 것’임을 증거하는, 때로는 ‘다름’을 주장하는 수많은 ‘틀림’들과의 싸움을 하는, 그야 말로 ‘선한 싸움’을 연속한 삶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늘 그 ‘싸움’에서 오는 ‘고난’을 자랑하였고 오히려 그 고난을 ‘사도’ 된 징표로 역설하였습니다. 그에게 있어 외부적으로 혹은 내부적으로 끝없이 벌어지는 ‘다름’과 ‘틀림’ 사이에서의 힘겨운 싸움은 영원한 생명의 면류관을 향한 경주였던 것이었습니다.




우리 싸움은 ‘금메달’을 놓고 싸우는 싸움

사실 ‘다름’인지 ‘틀림’인지를 제대로 판단하기는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살겠노라 하면서 ‘자기 생각대로 사는 자가 90%’ 라는 말씀까지 주셨습니다. 

오직 성삼위만이 유일하게 ‘선’과 ‘악’간의 ‘심판 주’ 되심을 성경에 분명히 기록 해놓으신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하기에 하늘이 주신 시대 말씀이야말로 다른 것인지, 틀린 것인지를 구분할 수 있고 더 나아가 이 시대를 제대로 분별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잣대가 되는 것입니다.

천하를 평화롭게 하는 일(平天下)도 내 한 몸 닦는 것(修身)에서 출발 되는 것이라 했습니다.
내 안의 ‘틀림’을 철저히 부인 하고 ‘자기(육에 속한 생각)’와 싸워 이겨 늘 ‘성자 주님(영에 속한, 성자의 생각)’을 차지하고 오직 성삼위에 속한 뜻만을 내 삶 속에서 실천 해 가는 귀한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또한 더 감사하며 우리의 싸움을 할 것은 우리 싸움은 ‘금메달’을 놓고 싸우는 싸움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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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14-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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