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국장이 들려주는 세푼칼럼! '세푼'짜리 부족한 글 솜씨로나마..... '세'상의 언어로 '푼' 주일말씀을 써 올립니다.
인류 고통의 시원(始原)이 된 ‘여성’
인류 고통의 시원(始原)은 ‘여성’으로 말미암았을까요? 아니면 ‘남성’에서 비롯되었을까요?
남자 ‘아담’이 혼자 지내는 것이 외로워 보여 보내준 이브(Eve, 라틴어로는 에바 Eva, 히브리어로 하와 Hawa)는 아담을 돕는 배필이 아니라, 금기된 선악의 열매를 따 먹도록 아담을 유혹하여 결국 인류에게 영원한 생명을 잃게 하고, 삶의 터전 에덴에서 쫓겨나게 되는 계기를 만드는 ‘파멸의 문’이 되었습니다.
인간을 사랑하여 불을 훔쳐 인간에게 준 프로메테우스.
신에 속한 것을 인간에게 주는 것은 신성모독이라 여겨 화가 난 제우스는 프로메테우스를 카우카수스 산봉우리에 결박하고 독수리에게 간을 쪼여 먹히게 하는 고통을 벌로 내립니다. 그리고 불을 얻게 된 ‘복’만큼의 ‘재앙’을 인류에게 보내주고자 했는데, 흙과 물로 여인을 빚어 ‘재앙’으로서 ‘여자’를 만들어 세상에 보내게 됩니다. 이 여인에게 모든 신들로 하여금 가장 뚜렷한 자신들의 특징을 각각 한두 개씩 불어넣어 주게 하는데, ‘모든 선물을 다 받은 여자’라는 뜻을 가진 여인 ‘판도라(Pandora)’는 금기된 이른바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 인간 세상에 고통을 퍼트린 여인이 되고 맙니다.
‘여성’에서 목숨을 걸고 ‘사랑과 그 결실로서의 생명’을 지켜내는 ‘모성’으로 ...
두 내용 모두 인류의 고통은 ‘여성’에서부터 시작되었음을 알려 주는 이야기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잠근 자가 열 수 있다.’는 말과 같이, 그 해결의 열쇠 역시 여성인 마리아에게 주어집니다. 마리아의 처녀성은 신을 이 땅으로 인도하는 문이 되었고, 동시에 메시아를 낳으므로 지니게 된 그녀의 모성(母性)은 인류에게 천국을 향한 문(메시아)을 여는 열쇠와 같은 입장이 된 것입니다.
당시 남자를 알지 못한 마리아로서, 그의 수태는 생명의 위협을 느낄 그런 일이었습니다. 유대의 율법에는 처녀가 임신하면 돌로 쳐 죽이도록 정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리아와 관련 된 성화 중 ‘수태고지’는 결국 목숨 걸고 ‘여성’이 ‘모성’으로 전환하는 타락한 이브가 성모의 이미지로 전환 되는 … 그런 모습을 그려 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이브의 ‘EVA’와 ‘AVE Maria(아베 마리아)’의 ‘AVE’는 같은 단어로 볼 수 있는데 ‘아베마리아’는 천사들의 라틴어식 인사요, 아울러 에덴동산의 하와(이브)가 남긴 원죄의 종말을 암시하는 것이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결국, ‘여성’은 목숨을 걸고 ‘사랑과 그 결실로서의 생명’을 지켜내는 과정을 통해 ‘모성’으로 전환 되는지 모릅니다. 이 점에서 ‘수태고지’ 성화는 이 땅의 모든 ‘성모들’을 위한 그림이라 할 수도 있겠습니다.
이 ‘모성’의 힘은 모든 생명 있는 것들에게 생명을 유지하게 만드는 공통 된, 그리고 실로 위대한 ‘힘’입니다. 삼국유사에 혜통(惠通)이라는 스님이 출가하게 된 계기를 설명하는 글에서 미물(微物)들에서도 찾을 수 있는 모성애를 보여 줍니다. 혜통이 출가 전 어렸을 때 수달을 잡아 살을 발라 먹고 뼈를 내다 버린 적이 있었는데, 다음 날 보니 뼈가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신기하게 여겨 핏자국을 따라가 보니 그 뼈가 제 굴로 돌아와 어린 새끼 다섯 마리를 돌보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이를 본 혜통은 자신의 배를 불리기 위한 살생에 몸서리치는 후회를 했을 것이고, 도저히 이해될 수 없는 무한광대의 모성애 앞에 차마 세속의 ‘아비’ 된다는 것의 무게를 견딜 수 없으리라 마음먹고 출가를 하게 됩니다.
천모 성령의 시대
성경 창세기에도 창조주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때 ‘우리’의 형상대로 지으신 ‘우리’ 중에 절대 사랑과 생명의 신으로서, 천모(天母) 성령이 존재했다고 합니다. 다른 신화에도 태초에 하늘의 신 우라노스(Uranus)와 넓은 가슴을 가진 대지의 여신이 부부와 같은 입장에서 많은 자녀를 낳는 장면을 그리고 있는데, 이 여신이 바로 가이아(Gaea), 모든 신의 어머니입니다.
초기 그리스도교도들은 성령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새로운 시대 ‘신약’에 와서 하늘 역사의 새로운 양상은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 ‘성령’의 역사에서 비롯되는데, 말씀이 육신이 된(즉 ‘성자’께서 이 땅에 오신) 사건만큼이나 놀라운 역사였을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수많은 자들이 땅끝에서부터 모여들어 사도의 가르침을 따르고 함께 떡을 떼며 기도하는, 바로 오늘날 교회의 모체가 만들어지게 된 것입니다.
이후 신학자들은 신약성서에서 말하는 '성령의 은사'가 교회에서 더이상 필요하지 않다면서 사도들의 시대 이후에는 효력이 없어졌다고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20세기 초에 성령과 성령의 은사를 다시 강조하기 시작하며, ‘성령이 충만한’ 교회를 꿈꾸기 시작했습니다. ‘삼위일체’와 관련해서는 아직 많은 논쟁이 진행 중인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천재 수학자며, 과학자 동시에 위대한 철학자이며, 종교 사상가였던 프랑스의 파스칼(Blaise Pascal, 1623~1662)은 ‘신은 그를 찾는 이에게 그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고, 피하기를 원하는 이에게는 자신을 감추고 싶어한다.’ 하였습니다. 그리고 ‘신을 발견한 다음 신을 섬기는 사람들, 신을 발견하지 못하였기에 온 힘을 다하여 신을 찾는 사람들, 신을 찾지도 발견하지도 않은 채 살아가는 사람들’로 분류하여, 이 중 첫 번째 부류만이 합리성(이성)과 행복을 동시에 획득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누구나 쉽게 ‘성령의 시대’를 말합니다만, 성령은 진정 그를 찾는 이에게만 그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실 것이고, 그를 찾아 함께 하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위대한 성령의 시대를 펼쳐 나가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