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局長がお届けする3文(もん)コラム!3文くらいの安っぽい文章の実力ですが・・・世の中の言葉で解いた主日の御言葉をアップします。
과연, 기다릴 수
있을 것인가?
“때가 되면 나 여호와가 속히 이루리라” (사 60:22)
신앙인들이라면 '쉽게‘, “아멘” 할 수 있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과연 그 ‘때’를 기다렸다가 여호와께서 이루심을 끝까지 지켜 보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일까요?
사울이 적군이 바로 코 앞까지 들이 닥친 일촉즉발의 긴급 상황에서 하늘의 사람 사무엘이 와서 예배를 드리기까지 참고 기다리고 있기가
쉬웠을까요?
백세가 된 아브라함이 ‘하늘의 별 같이 허다한 자손들’의 약속 성취가 될 것을 어떻게 믿고 기다릴 수 있을까요?
사울은 자기 좋은 대로, 사무엘을 대신하여 제물을 드리고,
아브라함은 자기 인식대로 여종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얻습니다.
자기 좋은 대로, 자기의 인식대로 했다가 사울은 왕위에서 쫓겨나 죽임을 당하게 되고,
아브라함의 허다한 자손들은 ‘이슬람’과 ‘유대교’로 나뉘어 끝 없는 분쟁을 하고 있습니다.
신약, 그 여호와의
‘때’
많은 유대인들이 메시야의 출현을 기다리고 또 기다렸지만, 자기 좋은 대로, 자기의 인식대로 기다렸기에 ‘예수’를 알아 보지 못 하고 구약의 역사에서 못
벗어나고 있습니다.
메시야의 출현 '당시(여호와의 때)'를 보면 우선 알렉산더 대왕이 대 제국을 세우면서 헬라어를 중심으로 헬라의 문화가 널리 통용되었고, 이은 로마 제국이 군사와 군수물자 등의 수송이 용이하도록 수
십만 마일의 도로를 닦은 시대가 신약의 태동기입니다.
당시 세계 공용어로 헬라어가 자리를 잡고,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나올만큼 사통팔달의 교통 인프라가
갖추어진 바로 그 시점이 새 역사의 ‘카이로스(Kairos ; ‘기회’와 관련 된 특별한 시간)’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실제 사도 바울이 '헬라어'를 쓰면서 로마가 닦은 '좋은 길'을 따라 성공적인 선교 여행을 할 수 있었던 것을 비롯, 헬라 권역과 신약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고자 도달했던 범위가 상호 매우 관련이 깊습니다.
잘 알고 있는 바 같이 알렉산더가 '인도'에 까지 진출 했었는데, 예수의 제자 중 가장 먼 거리 선교에 나섰던
‘도마’(아마 예수를 의심했던 죄책감에 가장 먼 곳으로의 선교 여행을 자처 했는지
모르겠습니다)가 바로 ‘인도’에서 선교하다가 순교 당했습니다.
말 그대로 '인도'가 당시로는 ‘땅 끝’(선교사역지)이 아니었겠나 생각 해 볼 수 있겠습니다.
이런 때가 바로 ‘카이로스’
여호와께서 보내주신 메시야, 그리고 그의 말씀이 가장 효과적으로 잘 전파될 수 있는 ‘적기’였을 것입니다.
사탄이 좋은
것을 빼앗아 가는 방법
“이제 인간은 불사(不死)의 몸이 될 수 있다.”
4차 산업혁명으로 이 말이 실현 될 것이라는 의견이 나오면서 이제 인간에게 불가능은 없으며, 신의 영역에 도전할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인간이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는 식의 주장은 바벨탑 사건 당시에도 있었고, 더 거슬러 올라 가 하와 때부터 있었음을 알고 있습니다.
사탄이 하와를 향해 ‘너도 하나님처럼 지혜로워져서,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는 유혹이 그것입니다.
언뜻 들으면 참으로 좋아 보이는 말입니다.
하지만 그 말을 듣고, 그 꾀임 대로 했다가 하와는 에덴에서 쫓겨 났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모두 여호와께서 '가장' 좋은 것을 준비 해 두시고 그 때를 기다려 주실 것임을 믿어야 합니다.
'최고의 것'을 주시려는 '깊은 뜻'
실제 성경에도 ‘인간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말씀이 명기 되어있습니다.
단,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이라는 전제가 붙어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여호와께서 인간에게 요구하신 내용들은 ‘무조건적 순종’을 명령하시는 것 같습니다.
"산 꼭대기에 방주를 만들라, 네 아들을 제물로 바쳐라, 그물을 버려두고 나를 따르라"
언뜻 들어서는 참으로 이해 하기 힘든 말씀이고 차라리 사탄들의 제안이 더 인간적이며,매력적이고 합리적으로 보일 지경입니다.
하지만 여호와의 '명령'은 맹목적인 신앙을 강요함으로 절대신의 권위를 보이고자 주시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때(카이로스)를 기다려 더 속히 더 온전히 그 일을 이루시고자 하시는 '깊은
뜻(깊은 사랑)'에서 나온 것임을 알고 믿을 수 있어야 합니다.
사실 인간으로서 ‘그’의 역사하심이 전부 다 이해가 된다면 ‘그’는 이미 신이 아닌 것입니다.
정명석 목사께서는 돌 포도나무(자기 인식, 자기 좋아 하는 대로)를 자르고 참 포도나무에 접을 붙인 뒤
성장하는 기간을 거쳐 때(카이로스)가 되어야 비로소 진짜 포도열매를 얻을 수 있다는 말씀으로 이 귀한 지혜를 깨우져 주셨습니다.
또 한 가지, 간과하면 안 되는 것은
지금 이 시대가 '인터넷'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카이로스'가 임박했다는 것을 웅변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더더욱 자기 인식과 자기 좋아하는대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을 삼가해야 할 이유도 이에서 나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