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국장이 들려주는 세푼칼럼! '세푼'짜리 부족한 글 솜씨로나마..... '세'상의 언어로 '푼' 주일말씀을 써 올립니다.
'사랑하다'의 '사랑' 이라는 말은 한자어의 생각하다 '사(思)'와 부피 '량(量)' 이 합쳐진 '사량'에서 '사랑'으로 변한 것이라고 합니다.
상대를 '얼마나(量) 생각(思)하는 지'가 바로 사랑의 척도라는 뜻입니다.
또 상대를 몹시 그리워하여 마음에 병이 들 지경에 이른 것을 '상사병(相思病)'이라고 하는데 이것을 보더라도 '사랑'은 '생각(思)'과 아주 밀접하게 연관 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과연, 연애 때 경험을 떠 올려 보더라도 잠이 들기 전 까지 생각하다가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또 생각나는 사람 그 사람을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이라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은 '생각'입니다.
정명석 목사께서도 '사람이 생각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계시할 수도, 느끼게 할 수도 없다. 생각을 해야 하나님의 세계를 알 수 있고, 사랑도 할 수 있다.' 말씀하셨고,
더불어 "물질을 많이 사랑(생각)하면 너는 물질의 것이고, 먹는 것을 좋아하여 하루 종일 음식 생각(사랑)을 한다면 너는 음식의 것이다.”는 경구까지 제시하셨는데
결국 우리가 많이 생각하고 사랑하는 것에 우리가 속 하게 된다는 말씀일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들고 나설만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나의 재물도, 세상에서 얻은 권력과 명예도 아닐 것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을 생각하고 사랑하는지 오직 그것만으로 그 앞에 설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은 '얼마나 생각하느냐'에 달린 것이란 전제와 사람이 생각하는 것을 말하고, 말 하는 것을 생각한다는 전제를 결합 해 보면
평소 내 삶에 있어 하나님에 대해 얼마나 생각하는지....
누구가 됐건 나는 얼마나 하나님에 대한 말을 그와 나누며 살고 있는지....
그래서 과연 '나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는지...'
최근 전 세계를 혼란속에 빠뜨린 '역병 사태'는 인간의 힘과 재능으로 신을 넘어설 수 있겠다 호언장담 하던 인간들의 입을 몇 겹의 천 조각(마스크)에 가리운 채 그 안에서 공포에 떨도록 만들어 버렸습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바이러스, 그 미물을 두고 만물의 영장인 인간들이 도저히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저마다 신을 생각하게 된 건지 모르겠습니다.
이 '사태'가 만약 신의 심판이라고 한다면 필자는 아마도 더 이상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는 잘 못을 꾸짖으려 하심이 아닐까 생각 해 봤습니다.
더 이상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으니 하나님이 계시를 주실 수도, 당신을 느끼게 할 수도 없어 결국 사랑하는 관계를 이어 갈 수 없게 된 그것 때문일 것입니다.
한 때는 '하나님이 세워 주신 나라'임을 자부하던 우리 이웃의 초 강대국이 어느샌가 세계 최 강국이 되면서 자신의 힘을 의지하고 더 이상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는 모순에 빠졌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번 사태를 계기로 자신들의 교만을 꺾어 버리고 '기도하자' 선포하면서 다시 하나님을 생각하게 된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까 생각해봤습니다.
하나님과 인간사이에 오직 중요한 것은 '사랑하는 관계의 형성'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다시 "하나님을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도 충분히, 많이...
그리고 어떻게 그 사랑을 우리에게 전해 주시는지 깊이 고민 해 봐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을 이루기 위해 특히 더 사랑하는 한 사람을 선택하고 그를 '보냄'으로써 백성들이 하나님을 생각하게 하고 사랑하게 만드시고자 하셨습니다.
"만약 성서에 '오늘 빛이 나셨다' 고 했다면 사람들의 가슴이 그렇게 뛰지는 않았을 것이다.(중략)
이 '빛'이 '아기'가 되고 '아기'가 '하나님'이 되어 이십세기가 흐르는 동안 우리 영혼은 그 젖줄을 빨고 있는 셈이다."
-'그리스인 조르바' 중에서
사실 그 보내시는 방법에 대해서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하늘에서 '빛'이 뚝 떨어져 내림이 아니고, '아기'가 오고 그 '아기'가 '하나님'이 되어 주었을 때
우리는 제대로 하나님을 생각할 수 있게 되고 이해할 수 있는 하나님을 결국 사랑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하나님을 찾아야 할 이 때,
우리를 먼저 찾아 오신 '아기'의 탄생에 대해 아주 풍부하고 깊이 있게 생각 해 봐야 하겠습니다.
그때서야 비로소 우리는 외칠 수 있을 것입니다.
"Merry Christma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