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국장이 들려주는 세푼칼럼! '세푼'짜리 부족한 글 솜씨로나마..... '세'상의 언어로 '푼' 주일말씀을 써 올립니다.
주말마다 찾는 어머니 댁에는 애완견이 하나 있습니다.
'세상 최고의 요리사'가 준비한 음식 맛을 녀석도 아는 지 식탁이 차려지면 환장하듯 달려 와
식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 하나 없을까 온통 집중을 하고 식탁 옆에 떡 하니 자리 잡고 앉아있습니다.
우리만 먹기 안쓰러워 같은 시각에 제 밥 그릇에 사료를 듬뿍 부어 주지만,
매일 먹는 사료가 질린 듯 관심 없이 시큰둥 하다가 한 참 지난 뒤에서야 마지못해 먹는 모습을 보입니다.
신경 써 매 번 다른 회사의 사료를 사 준다지만 항상 그 맛이 그 맛인가 봅니다.
거기서 거기인 사료가 지겨우면 이 사료에다 녀석이 뭐라도 추가 하거나 양념을 손수 해서 '만들어' 먹으면 얼마나 좋을까?
아니 제 입 맛에 맞도록 '사료에 후추를 더 해 주세요' 정도 의사 표시만 우리에게 해 줘도 좋으련만...
이런 황당한 상상까지 해 봅니다.
'개 팔자 상 팔자'라고...
누군가가 다 알아서 해 준다는 것이 귀찮은 일 없고 편하기만 하여 좋을 듯 하지만 과연 정말 그럴까요?
만들지 못 하고 그저 주는 사료(환경)만 먹고 사는 '견생(犬生)'은 주어진 음식재료(환경)들로 제 입 맛에 맞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인생(人生)'의 맛과 도저히 비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정명석 목사께서는 이를 두고
“세상에 기쁨이 많다. 하나님이 기쁨 덩어리로 세상을 창조해 놓으셨다.
기쁨을 누리며 살아야 하는데, 그 기쁨 중에 '만드는' 기쁨이 크다.(중략...)
사람들이 살 곳은 하나님이 손대지 않으셨다. 인격적이고, 같이 하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다 만들어 놓고 그냥 살라고 하면 만드는 재미, 만드는 기쁨이 없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인생'들을 창조하실 때 다른 모든 만물들('견생')과 구별하여 창조하셨다는 내용 중에서도 아주 의미있는 대목입니다.
'만드는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삶이라...
아울러 '만드는' 일 중에서도 "최고 급선무는 사람 만들기, 자기 만들기.”라고 하셨습니다.
필자가 최근 출퇴근 길에 말씀 상고 외 몇 페이지씩 읽고 있는 책이 '그리스인 조르바'(니코스카잔차키스, 1946년 초판발행)입니다.
주인공으로 '나' 와 '조르바'라는 인물이 나오는데 '나'는 책 벌레로 엄격한 금욕주의자이고, '조르바'는 맨 몸으로 현장에서 부대 끼며 사는 '쾌락주의자(굳이 '나'에 대비해서)' 입니다.
단적인 예로 포도가 먹고 싶으면 '나'는 참고 참아 포도의 유혹을 극복('자유')하는 길을 택한다면,
'조르바'는 먹고 토할 지경까지 포도를 먹어 버려 포도로부터 '자유'로워 지는 그런 유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바로 이 둘(극단에 있는) 즉, '나'와 '조르바' 사이의 넓은 스펙트럼 내에 존재(지성과 야성, 금욕과 쾌락등에 대한 태도)하고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말은 사업의 실패로 양자('나'와 '조르바')가 모두 완전히 빈털터리('무소유', '空')상태가 되면서 동시에 '자유'를 얻는 해피엔딩(분명히 해피엔딩입니다ㅋㅋ)으로 매듭지어 집니다.
일반적인 '사람 만들기, 자기 만들기'란 바로 그 '나'와 '조르바' 범주내에서 고민해 보고 도전과 좌절, 그리고 다시 변화하는 과정을 통해 이뤄진다고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어쩌면 창조주께서 인간들에게 '기본'으로 제시해 주신 환경(생존을 위한 다양한 생체능력과 인지능력등)내의 '만들기'로 보입니다.
그래서 이는 오히려 '견생'에 가까운 일이라 생각하게 됩니다.
정명석 목사께서 '사람 만들기'로 제시하신 새로운 인간형(신과 하나 되는 완벽한 인간)은 이런 '견생'을 벗어나는 '초월적 인간'(Übermensch, 니체)의 '이데아'(Idea, 플라톤)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중심인물'을 특별히 부르시고, 온전하게 만드신 뒤, 추 후 모든 사람들이 보내신 그를 본받아 함께 '완벽한 자기 만들기'가 가능하게 된다고 말씀 하십니다.
이것이야말로 제대로 된 '자기 만들기'입니다.
사실 하나님과 인간 사이 충분한 소통을 기반으로 '완벽한 인간'이 되는 이 '만들기' 과정은 마치 애완견이 내게 '후추'를 요구하여 자기 입 맛에 맞게 '만들기' 하는 과정이 실현 되는 만큼 놀라운 일일 것입니다.
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을 가능케 할 방법, 역시 정명석 목사님의 삶을 통해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목사님께서는 밥 먹을 때도 '첫 술을 뜰 때 하나님, 두번째는 성령님.. 성자를 먼저 떠 올리고 감사한다'고 고백하셨습니다.
쿡 찌르면 언제라도 '성삼위'에 대한 말씀이 절로 나오는 평소 그의 모습을 생각해 보더라도 이는 결코 가식이나 거짓에서 나온 고백이 아닐 것입니다.
지난 주 저의 칼럼에 썼듯 성삼위에 대한 그의 생각의 양(思量, 사랑)이 범인의 상상을 초월할 지경입니다.
이는 훈련을 통해 강제화 된 것일 수 없고 성삼위와 사연만들기가 세상에서 제일 스릴있고 신나고 오묘하며 가장 큰 축복(만드는 기쁨)임을 온 몸으로 체득하심 때문일 것입니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나는 자유롭다'
'그리스인 조르바'를 쓴 니코스카잔차키스(Nikos Kazantzakis, 1883년~1957년)의 묘비명입니다.
언젠가 저는 감명깊게 읽은 이 소설의 주 무대이자, 작가의 무덤이 있는 그리스 크레타 섬을 꼭 가 볼 것입니다.
그리고 누워있는 니코스카잔차키스에게 물을 것입니다.
"당신이 찾은 자유는 온전한 자유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