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3학년 1학기 첫 수업 때 현대문학 교수님은 솔깃한 제안을 하셨다.
“중간 기말고사를 리포터로 대체하려고 하는데 반대하는 사람 있는가?”
학우들은 시험 봐도 되는데 왜 그러시냐면서 전원 찬성에 손을 들었다.
시험까지 넉넉히 넉 달이 남았으니 다들 여유로웠다.
시험 기간이 가까이 오자 교수님은 다시 한 번 언급하셨다.
“리포터는 6월 30일 밤 12시까지 냅니다. 시간 어기면 리포터 안 받습니다.”
“왜요? 왜 하필 6월 30일이에요?”
“내가 7월 중순에 미국으로 3개월 연수를 갑니다. 그 전에 리포터 확인을 해야죠.”
‘아뿔싸, 여태 놀았는데... 리포터 써야 되겠다.’
시험기간과 겹치다 보니 리포터는 엄두도 나지 않았다.
일단 급한 시험부터 처리하고서 시간이 비면 리포터를 쓰기로 했다.
리포터 주제도 정해야 하고, 구상도 해야 하고, 자료도 찾아야 하고...
산이 하나 인줄 알았더니 산이 일만이천봉 금수강산이었다.
리포터 마감기간 당일이 되어서 문과대 컴퓨터실이 난리가 났다.
현대문학 수업 듣는 애들이 숙제 끝낸다고 초만원이었다.
나도 마무리를 지어야 하는데 구상을 너무 광범위하게 풀어놓아서
결국 마감기간을 넘겨서 밤을 새고 다음날 아침에 겨우 교수님께 메일을 보낼 수 있었다.
(그때까지 집에 컴퓨터가 없었다.)
성적이 기대되었다.
다른 학우와 달리 논문형식으로 구상하고 자료도 방대하게 찾아서 내용이 풍부했다.
7월 중순이 되고 집에 성적표가 날아왔다.
기대하는 마음으로 성적표를 펼치는데 헉! 내 눈을 의심했다.
‘D+’
보통 출석만 잘 하고 시험만 봐도 성적이 C 이하로 내려가지 않는데, 혹시 잘못 인쇄됐나?
과사무실에 문의해서 교수님 연락처를 알아냈다.
“교수님, 현대 문학 성적으로 D+이 나왔어요. 점수가 잘못 나온 것 같아요. 문의해주세요.”
교수님은 잠시 부스럭 거리시더니,
“아니, 점수 맞게 줬는데.”
“네? 리포터 두 개 다 냈는데요?”
“그런데 왜 점수가 D+이 나왔지?”
“사실... 제가 하루 늦게 냈거든요.”
“그럼, 점수 틀린 거 아니네. 그 점수 맞아. 난 늦게 온 리포터는 보지도 않았어.
난 분명 제 시간에 들어온 리포터만 본다고 약속했잖아.
이 정도면 점수에 대한 충분한 답변으로 생각되는데.”
전화기를 든 체 잠시 어안이 벙벙해서 말을 잇지 못했다.
올 A를 받고도 D+덕분에 장학금이 저 멀리 훨훨 날아갔다.
‘때를 놓치면 과거의 수고가 모두 허사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