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우리 집은 새해맞이 연례행사로 항상 목욕탕에 갔다. 엄마는 대야에 목욕준비물을 잔뜩 챙긴다. 샴푸, 린스, 세숫비누, 때밀이, 빨래용 수건, 오이, 우유... 나와 여동생은 상기된 얼굴로 엄마 뒤를 졸졸 뒤따랐다.
현관문만 열었는데도 왁자지껄하다. 동네 아줌마 절반은 온 것 같다. 작은 칸막이 안으로 옷 뭉치를 꾸겨 넣고 나와 여동생은 급하게 탕 문을 연다. 뿌연 연기가 문틈으로 퍼져간다. 가려진 시야가 확 뚫린다.
워터파크다. 보글보글 탕은 아이들로 한가득하다. 벽을 잡고 물장구치는 아이, 대야 두 개를 마주 보게 붙여서 둥둥 떠 있는 아이, 보글보글 물거품 안에서 수중발레 하는 아이...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다.
엄마는 자리 찾기에 바빴다. 궁둥이라도 밀어 넣을 수 있는 곳이라면 남의 물건을 옮겨서라도, 구석진 맨땅에 수건을 깔고서라도 자리를 만들었다. 그날은 그래도 이해해 주었다.
한참 놀다 엄마한테 가니 두 손으로 내 팔을 잡는다. 연신 비벼댄다. 빨랫감처럼. 국수가락 봐라. 엄마가 혀를 찬다. 헉헉. 엄마가 나를 잡고 진땀을 흘리신다. 나와 여동생은 누워서 국수가 되었다.
얼마나 밀었는지 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다시 온탕에 들어가려 하니 몸이 따갑다. 냉탕에 가서 살을 식혔다. 몇몇 아이들은 벽에서 자리를 잡더니 갑자기 자유형을 한다. 2 미터도 못 가는 자유형. 어푸어푸.
우리를 다 씻긴 엄마는 대야에서 강판을 꺼낸다. 오이를 한입 베어 물고는 갈아댄다. 누군 꿀, 누군 밀가루, 누군 우유. 탕찜방에 둥글게 둥글게 모여 수다 삼매경이다. 캬~ 한해 묵은 속이 녹아내린다.
“엄마 언제가?”
슬슬 물놀이에 지겨워진다. 그러나 엄마는 갈 생각이 없다. 거금(?) 내고 목욕탕 왔으니 본전을 뽑아야 한다. 우리는 엄마의 외적 내적 마사지가 끝날 때까지 버텨야 한다.
우리 몸이 쭈글쭈글 하얀 번데기로 변신하면 그제야 엄마가 움직인다. 이제 충분히 값어치를 했으리라. 부랴부랴 옷을 챙겨 입고 밖을 나선다. 깨끗한 몸이 상쾌한 공기를 타고 나비가 되어 날아갈 것 같다.
다시 우리 3인방 뭉치고 싶다. 3살 조카도 이번에 새로운 멤버가 되었다. 조카에게 수영도 가르쳐 줘야지. 꿈 아닌 현실이 어서 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