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잼 칼럼 by 갓잼

갓잼과 함께 생각해보는 진리와 사랑의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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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을 들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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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펜을 먼저 드는 사람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훌륭한 상사에게 배우는 것보다 그렇지 못한 상사에게서 반면교사로 배우는 것이 더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좋은 상사를 만나면 ‘나도 저렇게 해야겠다’고 배우지만, 그렇지 못한 상사를 만나면 ‘나는 저렇게 하지 말아야지’ 하며 배웁니다. 어쩌면 두 번째 배움이 더 오래 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 역시 그리 짧지 않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여러 상사를 모셨고, 때로는 상사의 자리에서 사람을 이끌어 보기도 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 시간 동안 업무를 배우는 것만큼이나 사람을 대하는 법을 많이 배웠습니다. 특히 가장 왕성하게 실무를 쌓던 시기에 우연히도 극명하게 다른 두 분의 상사를 연달아 모시게 된 경험은 이후 제 직장생활의 한 축이 되었습니다.


당시 실무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차지했던 일 가운데 하나가 보고서 작성이었습니다. 초안을 작성하면 상사에게 가져가 검토를 받아야 했습니다. 같은 보고서를 들고 같은 책상 앞에 섰지만 두 상사의 반응은 너무도 달랐습니다.


첫 번째 상사는 누가 보고서를 가져가든 마치 습관처럼 펜부터 들었습니다. 보고서의 첫 장을 읽기도 전이었습니다. 첫 문장부터 무언가를 고쳤습니다. 첫 장을 한참 고치고 뒷장으로 넘어갔다가 뒷장의 내용이 앞에서 고친 내용과 연결되어 있으면 다시 첫 장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또 지우고, 또 고쳤습니다. 물론 그분은 실력이 뛰어난 분이었고 보고서를 보는 눈도 정확했습니다.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 잘 아는 분이었습니다.


두 번째 상사는 누가 보고서를 가져가도 일단 두 손을 책상 밑 허벅지 위에 내려놓았습니다. 그리고 몇 장이 되든 처음부터 끝까지 읽었습니다. 읽고 나서는 한참을 생각했습니다. 상당히 긴 시간이 걸릴 때도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그것이 무척 긴장됐습니다.


‘내 보고서가 뭔가 크게 잘못됐나 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보고서 초안을 가져온 사람의 생각을 함부로 건드리지 않으려는 태도였습니다. 어느 누가 써온 보고서든 끝까지 읽었습니다. 그리고 수정해야 할 부분이 있어도 최대한 손을 대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오랜 생각 끝에 고치는 것이어서인지 고친 부분은 대부분 보고서의 화룡점정과 같았습니다.

가끔 그 상사가 한참을 생각한 후에도 보고서를 거의 수정하지 않은 채 돌려주면서 슬쩍 웃으며 말했습니다.


“주어를 바꿔보는 게 어때?” 혹은 “결론을 앞에서 써주면 좋지 않을까?”


그때는 알았습니다.


‘아, 이건 정말 크게 고쳐야 한다는 뜻이구나.’


오히려 그분이 꼭 필요한 부분만 고쳐서 돌려주는 날은 기분이 좋았습니다. 내 생각을 살려주면서 꼭 필요한 부분만 짚어주었다는 뜻이었기 때문입니다.

두 분 모두 실력이 출중한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밑에서 배우는 직원에게 나타나는 차이는 시간이 지나면서 극명해졌습니다.


첫 번째 상사 밑에서는 보고서를 가져가기 전에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차피 고치실 텐데 뭐.’


아무리 자신 있게 쓴 보고서라도 결국 그 상사의 손을 거치면 상당 부분 달라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보고서를 쓰는 정성이 조금씩 줄어들었습니다. 잘 쓰고 싶은 마음보다 ‘어차피 다시 쓰실 텐데’라는 마음이 먼저 생겼습니다.


반면 두 번째 상사에게 보고서를 가져갈 때는 이상하게 더 긴장되었습니다.


‘이번에는 정말 잘 써야지.’


내가 쓴 것을 존중해 준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수정의 폭이 조금만 커져도 다음에는 더 잘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혹시 보고서의 방향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지적이라도 받는 날이면 더 집중해서 다음 보고서를 준비했습니다.


상사의 태도가 직원의 태도를 바꾸고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직원에게 ‘어차피 네 것은 다시 고쳐진다’는 것을 가르쳤고, 다른 한 사람은 ‘네가 더 잘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쳤습니다. 결국 한 사람은 보고서를 고쳤고, 다른 한 사람은 사람을 키우고 있었습니다.


물론 첫 번째 상사에게서도 보고서를 잘 쓰는 법을 많이 배웠습니다. 그분의 뛰어난 실무 능력과 정확한 판단은 분명 배울 만한 것이었습니다. 다만 그분의 손을 거쳐 완성된 보고서를 보고 있으면 한 가지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그 결과물은 훌륭했지만, 그것이 결국 상사의 결과물인지 초안을 쓴 직원의 결과물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때가 있었습니다.


반면 두 번째 상사가 고쳐준 보고서는 조금 달랐습니다. 그 보고서에는 여전히 내 생각과 내 문장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보고서를 다시 받아들고 나면 ‘내가 쓴 보고서가 조금 더 좋아졌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 차이는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의 실력 차이로 나타났습니다.


두 번째 상사 밑에서 일한 직원들은 눈에 띄게 발전했습니다. 자신이 쓴 것을 존중받는다는 경험이 있었기 때문인지 스스로 더 잘하려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것은 어쩌면 상사에 대한 보답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이 사람이 내 생각을 이렇게 존중해 주는데, 나도 더 잘해야 하지 않을까.’


존중은 묘하게도 사람을 게으르게 만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책임감 있게 만들었습니다. 그 경험은 이후 제가 사람을 대하는 한 기준이 되었습니다. — 하급자의 업무를 존중해야 한다는 것.


존중한다고 해서 틀린 것을 그냥 두라는 뜻은 아닙니다. 잘못된 것은 고쳐야 합니다. 부족한 부분은 가르쳐야 합니다. 다만 상대가 생각하고 노력한 흔적을 보기 전에 내 펜부터 드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존중은 손을 대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함부로 손대지 않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 답을 기다려 주는 사람

우리 지도자의 역할도 그런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자기가 더 많이 알고 있다고 해서 모든 것을 자기 방식으로 바꾸는 것이 지도는 아닙니다. 지도자에게는 오랜 경험과 시행착오를 통해 이미 보이는 답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상대가 한참 고민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답을 빨리 알려주고 싶어집니다. 하지만 그 답을 알려주는 것이 항상 상대에게 좋은 것은 아닙니다. 사람은 답을 듣는 것보다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더 많이 성장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주 말씀을 들으면서 무엇을 깨달았는지, 그 말씀을 자신의 삶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 무엇을 실천할 것인지 묻는 것도 같은 맥락일 것입니다. 사실 그렇게 고민하고 연구하면서 교인들에게 묻는 지도자가 얼마나 될까 하는 아쉬움도 있습니다. 그렇더라도 누군가에게 이번 주 말씀을 듣고 무엇을 깨달았느냐고 물었다면, 적어도 그 사람의 대답은 끝까지 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습관처럼 “그게 아니고요.”라는 말부터 나온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 사람은 다음부터 자신의 생각을 말하기보다 지도자가 원하는 답을 먼저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말씀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는 사람이 아니라 ‘어차피 내 답은 틀리고 자기 답을 말해줄 텐데’라며 자기의 생각은 접고 지도자가 생각하는 정답만을 맞히려는 사람이 되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말씀에 입각한 기준은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말씀이 각자의 삶 속에 들어가 깨달아지는 과정까지 모두 똑같을 수는 없습니다. 같은 말씀을 들어도 살아온 환경이 다르고, 현재의 문제도 다르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에게 필요한 깨달음의 지점도 다릅니다. 그러기에 말씀 안에서 각자가 찾아가는 자기만의 답이 있을 것입니다. 오히려 젊은 세대에게서는 구세대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기발한 답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지도자가 해야 할 일은 모든 사람의 답을 대신 찾아주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자기 답을 찾도록 돕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게 아니고요.”라고 바로 고쳐주기 전에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 한 번 더 들어주는 것입니다. ‘그 말씀을 자기 삶에서는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한 번 더 기다려주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정말 잘못된 것이 있다면 그때 바로잡아 주면 됩니다.


그렇다고 이것이 방임은 아닙니다. 두 번째 상사도 보고서를 고쳤습니다. 다만 끝까지 읽고, 생각하고, 꼭 필요한 만큼만 고쳤습니다.



어쩌면 좋은 지도자는 손을 놓는 사람이 아니라 손을 아끼는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사람을 존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부족함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스스로 성장할 기회를 빼앗지 않는 것입니다.


지도자가 자신의 답을 너무 빨리 들이밀면 사람은 편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편해진 만큼 스스로 생각할 기회도 줄어듭니다. 반대로 조금 기다려주면 처음에는 답답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기다림 속에서 사람은 생각하고, 시행착오를 겪고, 자기 답을 찾습니다.


그렇게 얻은 답은 오래갑니다. 남이 대신 찾아준 답은 그 사람이 떠나면 사라지지만, 자신이 고민해서 찾은 답은 자신의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섭리 안에는 자신만이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지도자들이 은근히 많습니다. 특히 애매한 상황에서 자신의 섭리 연륜과 연식을 답처럼 내세우는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말씀을 많이 알고 경험이 많을수록 오히려 조심해야 할 부분입니다. ‘내가 이미 답을 알고 있다’는 생각이 강해질수록 다른 사람이 자기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기다리기 어려워지기 때문입니다.


좋은 지도자는 자기와 똑같은 사람을 만드는 사람이 아닙니다. 사람을 자신의 틀에 맞춰 획일화하는 것은 지도라고 할 수 없습니다. 자신의 지도를 받은 사람이 스스로 생각하고, 말씀을 자기 삶에 적용하고, 자기 사명을 더 잘 감당하도록 만드는 지도자여야 합니다. 결국 사람을 성장시키는 것은 정답을 전달받는 것만이 아니라, 자신이 행하고 고민하고 연구하면서 터득하는 과정일 것입니다.


돌이켜보면 두 상사에게서 제가 배운 것은 보고서 작성법만이 아니었습니다.


한 사람에게서는 ‘이렇게 하면 사람의 의욕이 줄어들 수 있겠구나’를 배웠고, 다른 한 사람에게서는 ‘이렇게 하면 사람이 스스로 더 잘하려고 하는구나’를 배웠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누군가가 제게 무엇인가를 물어오면 가끔 두 상사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펜을 먼저 들던 사람. 그리고 두 손을 책상 밑에 내려놓고 끝까지 읽던 사람.


나는 지금 어느 쪽에 가까운가.


누군가의 일을 보면서 너무 빨리 고치고 있지는 않은가.


내가 더 잘 안다는 이유로 상대가 생각할 기회를 빼앗고 있지는 않은가.


내가 일을 잘하고 있다는 것과 상대를 성장시키고 있다는 것을 혼동하고 있지는 않은가.


특히 말씀을 전하고 사람을 관리하는 지도자의 자리에 있다면 더 자주 물어야 할 질문일 것입니다. 사람을 잘 지도한다는 것은 사람을 내 답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말씀 안에서 자신의 답을 찾아가도록 돕는 것일 테니까요.


보고서를 끝까지 읽어주었던 그 상사는 당시에는 그저 보고서를 꼼꼼히 보는 상사라고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는 보고서보다 사람을 먼저 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면 선생님은 누구보다 많이 기다려주시는 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답을 모르셔서가 아니라 이미 답을 알고 계시면서도 우리가 스스로 깨닫기를 기다려주십니다.

우리가 말씀을 듣고 생각하고, 직접 행해보고, 때로는 시행착오도 겪으면서 자기 답을 찾아갈 때까지 기다려주십니다. 그래서 선생님의 기다림은 단순히 시간을 주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스스로 성장할 수 있도록 자리를 내어주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생각해보면 기다려준다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가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다고 믿어주는 일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의 기다림은 방임이 아니라 우리에 대한 믿음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다시금 되새깁니다. 좋은 지도자는 펜을 잘 드는 사람이 아니라 언제 펜을 들지 말아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이라는 것을.

사람이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자리, 스스로 깨달을 수 있는 자리, 스스로 더 잘하고 싶어지는 자리를 만들어주는 것. 그것이 어쩌면 사람을 존중하는 가장 실제적인 방법일 것입니다.

정답을 주는 지도자는 한 번의 일을 잘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답을 찾게 하는 지도자는 그 사람의 다음 일을 바꾸어 놓습니다.

결국 공동체를 성장시키는 사람도 그런 사람이 아닐까요. 자신이 모든 답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각 사람이 자기 자리에서 답을 찾도록 믿고 기다려줄 수 있는 사람 말입니다.


자기 맡은 일을 하면서 더 이상적으로 하려고 노력하고 연구도 하여라.

그래야 하나님이 그 충성을 보시고 더 큰 일을 맡기신다.

종처럼 시킨 그것만 하고 끝나지 말고, 연구하면서 더 많이 더 잘하여 맡긴 자가 놀라게 하여라.

일을 할 때는 더 좋게 하려고 생각하며 차원 높여서 하라. (중략)

일을 잘해야 그 일로 다른 일의 기술 원리도 배운다.


— 2026년 6월 10일 <일의 지혜> 주제 수요말씀 중


[by 노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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