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국장이 들려주는 세푼칼럼! '세푼'짜리 부족한 글 솜씨로나마..... '세'상의 언어로 '푼' 주일말씀을 써 올립니다.
절실한 자가 감탄한다
지난주 세푼칼럼에서 ‘절실함’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과연 어떻게 하면 ‘절실할 수’ 있을까요?
3년을 아르바이트하며, 아껴 모은 돈으로 미국의 그랜드 캐년을 본 사람과 부모가 ‘빈둥빈둥 노느니 여행이나 가라’고 던져 준 용돈을 받아 그랜드 캐넌을 본 사람의 ‘감탄’이 같을 수 없을 것입니다. ‘내 평생에 이런 감동이 없었다. 나도 그랜드 캐넌 같은 위대한 인생이 되어야지. . .’하는 결심한 사람과 ‘뭐 나름 볼만하던데...’하고 마는 감탄의 차이는 바로 ‘절실함’의 차이에서 온 것입니다.
‘절실’하면 ‘감탄’을 할 수 있고, ‘감탄’하면 ‘절실’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연결된 것은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뜨거운 ‘감탄’으로 감사와 사랑을 하늘 앞에 돌린 정명석 목사
사실 정명석 목사께서 가장 잘하시는 일 중 하나가 성삼위 앞에 ‘감탄하기’입니다.
이 같은 ‘감탄하기’는 잘 ‘알기’ 때문에 ‘절실’하고, ‘절실’했던 일이기에 관련한 기도가 이루어졌을 때는 ‘감탄’으로 감사하게 된 것입니다. 금주 말씀에도 한반도의 위급한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그토록 ‘절실’하게 기도하셨고, 절실하게 기도하셔 그 응답을 받게 되셨을 때 뜨거운 ‘감탄’으로 감사와 사랑을 하늘 앞에 돌려 드릴 수 있으셨던 것입니다.
비단 이 일뿐이 아닙니다.
“와~ 알고 보니 백보좌 형상이었네요.”, “와~ 귀뚜라미를 보내셨네요. . .”
매주 말씀에 ‘감탄’의 사연이 빼곡히 채워져 있음을 우리 모두는 잘 알고 있습니다. 사연 하나하나에 깊이 감탄하니, 사연마다 감동의 대역사가 되는 것입니다. 이를 선교하는 해, 선교 활성화의 관점으로 적용해 보면 선교 활성화에 있어 최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는 ‘감탄’하지 않는 우리들의 모습을 바꾸어야 하는 일인지 모릅니다.
감탄하는 인생이 되길 ...
우리 사는 사회 전반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감탄하는 일이 줄었습니다.
왜 우리 사회에 ‘감탄’이 갈수록 사라져 가는 걸까요?
‘절실’함이 사라져 가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언급한대로 감탄하려면 ‘절실’해야 하는데, 그만 그만 먹고 살만하니 절실한 게 없어져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선교가 안 되는 교회들은 새로운 생명이 와도 ‘감탄’하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한 사람이 온다는 것은 그 사람의 이때까지의 수많은 사연들을 포함하는, 그 인생 전체가 온다는 대(大) 기적인데 이를 보고도 감탄을 않는다는 것입니다.
137억년 전 화석이 발굴되면 세계가 감탄하며 난리가 날것이나, 137억년 성삼위와의 사연이 깃든 산 사람이 우리 교회에 걸어 들어오는데 감탄을 않는 것입니다. 사실 137억년 전 헤어졌던 애인을 찾은 것과 같은 큰 사건인데 말입니다. ‘생명’에 대해 감탄하지 않는 교회에는 결코 생명이 모일 수 없을 것입니다.
전 교인들이 생명들을 향해 '감탄'하는 교회가 된다면, ‘감탄하고 싶고’, ‘감탄 받고 싶은’, ‘감탄이 고픈’ 현대인들이 절로 모여드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감탄하는 정도가 생명에 대한 사랑을 가늠할 기준일 수 있고 나아가 자신의 사명의 크기를 결정하는 잣대가 될지도 모릅니다. 감탄하고 감탄하십시오. 우리는 아무리 ‘감탄’해도 부족한 대감동의 역사를 빚진 자들임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