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국장이 들려주는 세푼칼럼! '세푼'짜리 부족한 글 솜씨로나마..... '세'상의 언어로 '푼' 주일말씀을 써 올립니다.
사람이 만든 인공지능, 사람을 넘어서다
2016년 3월 9일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역사적인 날로 기억될 것입니다.
인공지능 알파고(AlphaGo)가 우주의 원자 수보다 많은 경우의 수가 나온다는 ‘바둑’에서 세계 최고의 인간(바둑 기사, 이세돌 9단)을 이겼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이 당황스러운 뉴스에 인간을 넘어서는 기계를 만들어 낸 인간의 위대성에 감탄하기 보다 기계로 대체 될 미래 인간 사회에 대한 두려움을 더 크게 느끼는 것 같습니다.
과연 인공지능은 어느 정도까지 인간 영역을 침범할 수 있을까요?
“바둑의 낭만과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지켜내겠다”던 ‘인류’의 출사표(出師表)가 무색 해 지면서, 과연 기계로 대체 되지 못할 인간 고유의 가치(혹은 인간 고유의 영역)는 무엇일지 깊이 생각을 해야 할 때가 온 것입니다.
도저히 설명될 수 없는 인간 고유의 영역 (Chemistry)
그렇다면 도저히 기계(인공지능)가 넘볼 수 없는 인간 고유의 영역은 어디일까요?
당장 떠 오른 것은 개개인의 화학적 반응(Personal Chemistry)영역은 어떤 기계도 넘볼 수 없는 인간 교유의 영역이 아닐까 생각 해 봅니다.
‘첫 눈에 반해 버리는 뜨거운 사랑’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당사자인 나 조차 이해 할 수 없고, 그래서 아무런 설명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아무리 방대한 정보들을 순간에 수집할 수 있고 이를 논리적으로 잘 분석할 수 있는 인공지능이라도 이러한 순간에 벌어지는 인생들의 ‘화학적 반응’들에 대해서는 아무 분석도 할 수 없을 것이며, 그럼으로써 아무런 영향도 끼칠 수 없을 것입니다.
더욱이 재미있는 것은 우리네 인생을 결정 짓는 대 부분의 중요한 사건들은 바로 이 ‘personal chemistry’ 에 의해, 말 그대로 ‘운명처럼’ 결정된다는 사실입니다.
사람은 어떻게 설득 되는가? (Persuasion)
또 한 가지를 더 살펴보자면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서 태도와 행동 변화를 일으키는 영역’에도
인공지능이 개입할 여지가 적어 보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Rhetoric) 이라는 저서를 통해 인간을 설득하는 3요소를 정의 했는데 ‘Logos (상대에게 명확한 증거를 제공하기 위한 정보, 논리)’, ‘Pathos (상대방의 말을 받아들일 수 있는 심리, 감성적 상태)’ 그리고, ‘Ethos (설득하려는 사람의 인격, 카리스마, 매력도 등 그 ‘사람’ 자체)’로 명명하였습니다.
‘왜 이웃을 사랑해야 하는지’ 완벽한 정보를 기반으로 매우 논리적인 설명(Logos)을 한다고 해서 사람들이 이웃을 사랑하게 되기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차라리 이웃을 사랑하며 사는 아름다운 영화 한 편을 보여 주며 감성적인 동의(Pathos)를 얻어 내면서 이를 행동으로 실천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더 쉬울 수 있습니다.
만약 평생 이웃 사랑을 전하며 십자가에서 자신을 희생한 ‘예수’(Ethos)를 만나 그의 말씀을 듣게 된다면 이웃사랑을 평생 실천하게 될 사람들이 훨씬 많아 질 것입니다. 사람은 대상으로부터 받는 인격적 감화를 통해 가장 잘 설득되기에 ‘Ethos’가 가장 중요한 설득력의 원천입니다. ‘인격’을 갖지 못 하는 인공지능은 사람을 설득하여 태도와 행동 변화를 일으키는 일은 쉽게 할 수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인간의 생각, 제2창조의 시발점 (Creation)
정명석 목사는 제1의 창조를 조물주가 천지만물을 무에서 유로 창조한 것이라 정의하시면서 제2창조는 신의 속성을 부여 받은 인간이 제1창조물을 갖고 새로운 제2창조를 해 내는 것이라 구분 하셨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제2창조는 인간의 ‘생각’에서부터 시작 됩니다. 생각하는 대로 몸이 움직이고 몸 움직이는 대로 제2창조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매일 늦잠 자던 아이가 어느 날 제대로 생각을 고쳐 먹고 부지런하게 살기로 마음 먹었다면 다음 날부터 일찍 일어 나게 됩니다. 일찍 일어나 하루를 부지런하게 시작한 이 아이는 정말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이 ‘생각’이 갖는 위대한 창조성은 그 어떤 만물, 기계도 흉내 낼 수 없는 말 그대로 ‘신(神)’의
속성입니다. 정명석 목사는 ‘신의 생각 갖기’를 매우 강조 하셨습니다. ‘기계’의 빠른 발전 속에서 인간 고유의 가치를 유지 하고 오히려 확장 해 갈 수 있는 지혜의 말씀이었습니다.
인간이 인간으로서 신의 생각을 담아 내고 신과 같은 모습으로 사는 것.
땅을 벗어나 하늘에 가 닿은 인간.
신약성서에 예언한 공중으로 들림 받는 ‘휴거’의 개념에서 인류의 미래를 찾게 되지 않을까
궁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