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국장이 들려주는 세푼칼럼! '세푼'짜리 부족한 글 솜씨로나마..... '세'상의 언어로 '푼' 주일말씀을 써 올립니다.
"우리는 승리했다! 우리는 이겼다!"
이 신나는 응원가사에 대해 "왜?" 혹은 "어떤 근거로?"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 본 적이 있습니까?
'질문'에 확신에 차서, 명쾌하게, 즉시, 자신만의 대답을 할 수 없다면 '우리는 이겼다'가 아니고 '우리가 이겼대' 정도의 간접화법으로 노래해야 할 지 모릅니다.
첫 번째 자격 ; '이김'에 대해 정확히 알고 귀하게 여긴다
정말 승자(勝者)라면 명확하게 그 승리한 사실을 알고 확신에 차 세상에 '선포'(증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정명석 목사께서는 궁극적으로 '영원한 세계를 보장 받고 가는 것'을 이김의 큰 증거로 삼으십니다.
최종 '결론'이 내가 원하는 대로 명확하게 보장이 되었다면 이는 실로 놀라운 축복입니다.
예를 들어 마지막에 반드시 승리한다는 사실을 미리 알고 축구 경기를 하게 된다면 그 게임의 과정에서 일희일비 않고,
그저 준비 한 대로 다치지 않게 신경 쓰면서 멋진 경기를 보여 주기 위해 열심히 뛰기만 하면 됩니다.
마찬가지로, 죽지도 다치지도 않는것이 확실하게 보장 되었다면 비록 전쟁터에 나가더라도 즐길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승리'를 확실히 알아, 패배에 대해 염려하고 걱정하지 않으며 승패에 대한 스트레스 없이 그저 지금 이 게임을 즐길 수(Carpe Diem)있으면 진정한 승자입니다.
불교에서 추구하는 '해탈(vimoka)을 통해 열반(nirvana)에 이름' 역시 그 '결론'(모든 것이 윤회하니 삶과 죽음조차 다르지 않음)을 명확히 알게 되어 생로병사 일체를 관조할 수 있게 된 것을 뜻합니다.
그 '결론'를 아는 지혜를 '반야(般若)'라 부르며, 미륵불은 이 '반야의 지혜'를 전함으로써 중생의 해탈을 도와 열반에 이르도록 하는 미래의 불(佛)이니 기독교에서 기다리는 메시야와 크게 다른 이가 아닙니다.
단지 불교는 이 '결론'이 원래부터 스스로 그러한(自然)것이라 주장하는 것이고,
우리 선교회는 바로 '하나님의 약속'으로 결정 된 것이라 믿는 것이 다른 점입니다.
'결론'이 '승리'라면 지금 이 '과정'은 어떠하든 이미 이긴 것입니다.
'영원한 세계를 보장 받고 간다'면 이 짧은 육신의 삶은 영원한 천국을 향해 가는 위대한 여정입니다.
'이겼다'는것은 그 '결론'이 어찌될것인지 확실한 '약속을 받은 것'입니다.
두 번째 자격 ; 충성함으로 뺏기지 않아야 한다.
우리가 알게 된 '결론(승리)'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아브라함이 받은 '약속'으로 늙고 무자식이던 '아브람'의 '결론'은 그 후손들이 하늘의 뭇 별과 같이 많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었습니다.
이 '약속'으로 아브라함의 후손 야곱이 환란을 당해 외가로 쫓겨났음에도 '결론'은 오히려 후손들의 '영역 확대'였고,
또 그 아들인 요셉 역시 형들에 의해 머나 먼 타국으로 팔려갔지만 '결론'은 애굽이라는 당대 최강국으로의 '진출'이었습니다.
이 '약속'이 하나님으로부터 났으니 당장에 환란과 어려움이 있더라도 낙심말고 '약속'을 믿고 그 '약속'을 뺏기지 말고 지켜내면 된다는 것입니다.
월명동 자연성전도 이미 '결론'을 하나님께서 보여주셨기에 돌 쌓는 그 과정에서 5차례나 무너졌어도 '돌은 무너났어도 내 마음은 여전타' 연습삼았다 치고 포기않고 결국 하나님 보여주신 '약속'을 지켜 이루었습니다.
이 받은 약속을 뺏기지 않는 최고의 핵심은 '충성'임을 정명석 목사께서 금주 말씀 통해 알려 주셨습니다.
야곱이 그 외삼촌 집에서 보여주었고,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서, 또 애굽 총리로서 보여 주었으며 자연성전을 건축한 손길들이 보여 주었던 '충성'입니다.
'과정'에서 어렵고 힘들더라도 끝까지 '충성'하면 '결론'은 '승리'이고, '성공'입니다.
"우리는 승리했다 우리는 이겼다"
목청 돋우어 더욱 크게 우리의 응원가를 불러야겠습니다.
사마리아와 온 유대와 땅 끝에서도 들을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