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Cents Column by Director Bong

Three Cents Column by Director Bong of RGO 24! 'Although I am lacking and my writing is only worth as much as 'three cents...' I share the Sunday messages and interpret them with 'the language of the world.''

칼럼_연재칼럼_Three Cents Column

세푼수필) 오병이어 기적의 현장

필자의 주일 날 새벽 꿈에...
'큰 스승'께서 나타나서 '작은 일들이 여기저기서 또 여러 사람들에 의해 일어 날 때 이것이 큰 일이 된다'는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꿈에서 깨고 '이게 도대체 어떤 말씀일까' 언뜻 이해가 안 되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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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오랜 식민지 하 이스라엘 사람들은 메시야에 대한 소망마저 상실할 지경에 이르러 힘에 겨운 나날을 보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디서 시작 되었는지 소문에 소문을 듣고 많은 무리들이 '그'를 찾아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성인 남성들만 계수 했을 때 4~5천명이었다고 하니 모름지기 실제 모인 인원은 1만명도 훌쩍 넘어 섰을 것입니다.      

삶이 무척이나 퍽퍽했을 당시 사람들이 생업도 아랑곳 않고 그렇게 몰려 든 까닭은 무엇이었을까요?
어디서도 구할 수 없었던 위안과 행복을 그곳에서는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행복은 전염된다'(니컬러스 크리스태키스 , 제임스 파울러 공저)는 책에서 밝혔듯 행복한 사람들은 행복한 사람들끼리 모이게 되어 있습니다.
행복하려면 행복한 사람 곁으로 가라고 일러 주는 책의 내용과 같이 '행복'의 전염력이 별 통신 수단도 제대로 없었던 당시 수 많은 구름 떼를 결집 했을 것입니다.
그 '위안과 행복'은 떡과 물고기로 인해 물리적 배를 채울 수 있었음이 아니고 분명히 예수께서 전하신 말씀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었을 겁니다.

이 장면을 연상해 봄으로써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개' 기적에 대해 다시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첫 번째, 만 여명이 모일 정도였다면 아주 먼 거리에서도 사람들이 왔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오가는 거리와 머무를 시간을 계산하여 나름대로 먹을 것들을 준비했을 것이 틀림 없고,
받은 말씀을 통해 위안과 행복을 느낀 이들이 서로 자기 먹을 것을 떼어 이웃 해 앉은 자들과 나누었을 것입니다.
서로 자기의 배고픔을 채우기 보다 나눔에 더 행복감을 느꼈을 이 들이 나누고 또 나누고 나서도 여전히 모자랄지 모를 누군가를 위해 몇 바구니를 가득 채울 정도의 음식을 남겼다는 것은 매우 상식적인 일일 것입니다.

두 번째, 이렇게 큰 군중이 음향 시설 하나 없이 동시에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방법은 없었을 것입니다.
앞에서 전하신 예수의 말씀을 중간중간 제 각기 다른 규모의 집단으로 다시 나뉘어 대언 해 주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었을 것입니다.

오병이어 그 기적의 현장은 이 같이 '육의 음식(떡과 물고기)'과 '영의 음식(진리의 말씀)'이 자연스럽게 '나눠 지는' 현장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영과 육)음식 나눔'의 과정에는 자연스럽게 어떤 이는 거두고 어떤 이는 분배하는 등 제 각기의 역할(일) 나누기(분배)가 수반 되었을 것이고,
이 '(음식과 일)나눔'의 과정은 그야말로 출신과 신분의 여하를 막론하고 자연스런 자원과 상호간 추천들로 아름답게 진행되었을 것입니다.

또한 이 '나누기'는 비단 오병이어의 현장에만 국한 되지 않고 각자 자신의 생활의 터전으로 돌아가서도 확대, 재생산 되어 전혀 새로운 삶의 양식으로 자리 잡아 가기 시작 했을 것입니다. 누군가 얘기했듯, "기회는 평등 했고, 과정은 공정했으며 그 결과는 정의"로웠울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신약'이라는 전혀 새로운 역사가 시작 되는 가장 중요한 기반 중 하나가 되었을 것이 틀림 없습니다.

오늘 날 여전히 하늘 양식을 나누는 일에 전념하고 계신 정명석 목사께서는 일을 나눔에 대해서도 말씀을 주셨습니다.

까마귀들도 우리들이 위험한 일을 하려 할 때 깍깍 거리면서 조심하게 알려 준다시며 까마귀에도 일을 맡기시는 하나님을 생각하게 해 주셨습니다.
그러시면서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의 일들을 나눠서 하게 하셨다는 사실.

만물도, 사역자도, 하늘의 천사들도 쓰시고,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각 위치에서 각자 저마다의 개성대로 쓰시면서 엄청난 역사를 운영 하신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셨습니다.

이 '개성대로 일을 맡기시는' 하나님의 뜻을 잘 헤아려서

다른 사람 하는 것이 맘에 들지 않는다고 일을 너무 자기 혼자만 해서도 안 되고,
자신이 없다고 아무 일도 맡지 않은 체 게으르게 살고자 해서도 안 됩니다.
또 자기와 비슷한 일을 한다고 해서 시기질투 하거나 남의 일을 뺏어도 안 되며

커 보이든 작아 보이든 저마다 자기 일은 자기가 중심되어 하면서 같이 도움으로써 더 큰 일을 도모 해 가야 됩니다.

여라가지 예상치도 못 했던 일들이 겹치면서 현대인들은 메시야에 대한 소망마저 상실할 지경에 이르러 힘에 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디서 시작 되었는지 소문에 소문을 듣고 많은 무리들이 모이기 시작했다면 틀림없이 '강력한 위안과 행복'이 나누어지는 현장,
'기회는 평등 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그 결과는 정의'로운 새로운 '(영과 육의 음식과 일)나눔의 세상'이 시작 되었기 때문인지 모릅니다.

주일 새벽 꿈에서 들은 '작은 일들이 여기저기서 또 여러 사람들에 의해 일어 날 때 이것이 큰 일이 된다'는 말씀이 너무나도 확실히 이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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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9/14/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