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국장이 들려주는 세푼칼럼! '세푼'짜리 부족한 글 솜씨로나마..... '세'상의 언어로 '푼' 주일말씀을 써 올립니다.
항해와 같은 인생
포르투갈과 함께 대항해시대(Era dos Descobrimentos)를 연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에는 천 년 역사를 자랑하는 조선소가 있다고 합니다. 이 조선소에는 그간 만든 배들을 모형으로 축소 전시해 놓은 전시관이 따로 있는데 전시관에는 그 간 이 조선소에서 만들어진 배들에 대한 간략한 역사까지 함께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우리 조선소에서 출고된 10만 척 중 6천 척은 바다에서 침몰했고, 9천 척은 심하게 망가져 다시 항해 할 수 없었으며, 6만 척은 20번 이상 큰 재난을 겪었다. 바다에 나가 상처를 입지 않은 배는 단 한 척 도 없었다. 배가 어떤 재료로 만들어졌든, 큰 바다로 나간 배는 모두 상처를 입거나 재난을 피하지 못했다.“
우리네 ‘인생’을 ‘항해’와 곧잘 비교하는 것도 그 험하고 예측불가 함이 유사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실제 예일 대학교 교수인 데니얼 레빈슨 (Daniel J. Levinson)은 사람을 배에 비유하고 인생을 항해에 비유하며, 도무지 변화하지 않는 사람을 가리켜 항해하지 않고 부두에만 정박해 있는 배와 같다고 하였습니다. ‘배’로서 아무 가치가 없는 그런 경우에 해당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한 생애를 뿌리내리지 못한 채 바다 위를 유령선처럼 떠다니는 것 또한 경계해야 할 바가 되는 것입니다.
닻은 ‘정착, 현실’, 돛은 ‘떠남, 전진’
배를 만든 목적은 항해이지만, 좀 더 따져보면 항해를 통해 원하는 곳에 도착하여 정착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항해만큼이나 정박도 중요합니다. 인생이란 ‘안정(정착)’과 ‘변화(이동)’라는 양대 축이 맞물려 돌아가면서 만들어 내는 ‘역동성’에서 우리네 삶을 앞으로 추진해 내는 본질적 원동력이 만들어지는 가 봅니다. 결국 ‘배’에게는 닻(Anchor)과 돛(Sail)이 모두 필요한 것입니다.
새해 들어 정명석 목사님께서 2주에 걸쳐 해 주신 말씀은 어쩌면 바로 이 ‘닻’과 ‘돛’에 관한 말씀인지 모릅니다.
‘닻’은 정착. 현실(現實). 모든 ‘떠남’에 대한 출발점입니다.
지난주 말씀의 ‘잊으면 죽는 것.’에 해당되는 것이며 금주 말씀의 ‘자기소유’입니다.
"잠깐만"하며 잊지 않고 돌아봐야 하는 것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반면 ‘돛’은 ‘떠남’, ‘전진’을 뜻합니다.
그래서 희망이며, 미래(未來)입니다. 새로운 지향점(도착점)으로서 ‘자기소유’를 팔아 얻어야 할 밭에 감추인 보화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를 정확히 알아야 어디로 갈지를 제대로 결정할 수 있습니다. 잊지 말아야 할 닻을 확인했으면 이제 돛을 높이 내걸고, 바람(運, 天運)을 타고 원하는 ‘그곳’을 향해 출발해야 합니다.
너무나 다행히도 어떤 재료로 만들어졌든, 모든 배에 상처를 입혔거나 재난을 던져 주었다던 험하고 예측 불가한 망망대해(茫茫大海)에 성삼위께서 친히 ‘돛’이 되어 주신다 하니 백골난망(白骨難忘) 감사드릴 일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닻줄을 끌러 깊은 데로, 저 대양(大洋)의 한가운데로 가 보십시다.
주께서 친히 우리의 닻이 되어 주셔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대(大) 항해에 벌써 가슴이 희망으로 벅차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