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요나 선지자를 기억하는 것은 바로 니느웨(Nineveh)에서 대 반전의 위대한 역사를 만들어 냈기 때문입니다.
나의 가치를 가장 완벽하게 드러내어 눈에 띄는 대업을 이룰 수 있는 '그 곳'은 내게 매우 낯설고, 극히 위험해 보이는 곳일지도 모릅니다.
출애굽을 결심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눈 앞의 '홍해'가 낯설고
위험해 보여, 정말 극복하기 어렵고 건너기 힘든 장애물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건너기만 한다면 수심이 깊으면 깊을 수록, 파도가 거치면 거칠 수록 애굽의 군사들로 부터 자신의 생명을 보호 받을 수 있는 최고의 방어벽이 되는 것입니다.
니느웨와 홍해 이런 곳들이 정명석 목사께서 일러주신 장점과 단점이
극적으로 높이 솟아 있는 바로 그런 곳입니다.
무릇 산이 높으면 골도 깊다고 했습니다.
산이 높고 골이 깊어야 명산이 되는 것이지, 장단점이 뚜렷하지 않은 곳은 지극히 평범한 곳에 지나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자녀를 양육하는 부모들도 훌륭하고 위대한 인물이 되라 기대하면서 정작 ‘모난
돌 정 맞는다’며 그저 평범하고 안정된 인생 살기를 조언합니다.
직업에 귀천이 따로 없습니다만 옛날에는 소위 '안정된 일'들은 주로 ‘백정’, ‘노예’와 같은 천직(賤職)들이었음을 상기 해 볼 필요는 있습니다.
백정이 되면 그 어려웠던 시절에도 고기를 먹을 수 있었고, 일정 상권 내 독점적 지위를 안정 되게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부유한 가정의 노예로 사는 것 역시 안정 되게 대를 이어가며 먹고 입고 자는
걱정 없이 편히 살 수 있는 방법이 되었습니다.
요나 앞에 (자신의 생각대로)'갔으면... 하는' 다시스와, (하늘의 뜻에 의해)'가야만 하는' 니느웨, 두 갈래의 길이 있었듯,
우리 모두에게 ‘갔으면 하는 길’과 (고생 돼도)'가야 하는 길’이 있습니다.
내가 ‘갔으면 하는 길'은 익숙하고 편하며 안정적으로 보이는 길입니다.
이 길을 가는 것은 쉬워 굳이 내 장점을 극대화 하고 이 악물고
단점을 개선해야 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니 더 나아가 편히 가는 길에서는 그저 여태 하던대로 하면 되니 자신의 진짜 장점은 무엇이고 단점은 무엇인지 아예 알지도 못 하고 가게 될 것입니다.
반면에 뜻에 따라 낯설고 불편하고 부담 되지만, ‘가야
하는 길'은 자기 몸과 부딪혀 가며 가야 하기에 자신의 장점과 모순이 잘 드러 나 알 수 있게 되고, 나의 있는 장점을 끌어 모아 극대화 하고, 나의 작은 단점까지 찾아 내어 없애야 갈 수 있는 길입니다.
요나에게 '니느웨'는 목숨을 걸고 가야하는 그런 길이었습니다.
여태 안 하고 있던 그래서 뭔가 또 새로운 것을 배워야 할 수 있는, 불편하고
어색한 일들(어쩌면 목숨을 걸고 해야 할 그런 일들)을 지금 하고 있지 않다면 ‘자기 만들기’가 제대로 안 되고 있는 지 모릅니다.
익숙하고 평범하고 안정적이기만 한 상태가 지속 되고 있다면 이는
그 자신이 장사 지내야 될 ‘옛 것’이 되고 있다는 경고의 신호등이 켜진 상태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물론 평범하고 안정 된 삶이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기성을 벗어나 새 시대, 새로운 역사를 가고자 한다면, 결혼을 앞 두고 식장에 앉아 조신하게 신랑을 기다리는 신부가
아니라 신부 단장을 하고서도 시장을 쫓아다니면서 기름을 사고 신랑 맞을 준비에 분주하고 불편을 치렀던 신부들 만이 신랑을 맞았다는 성경의
가르침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