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아닌 마음으로 읽어보세요. 영혼이 따뜻해지는 행복한 이야기~
원작: 정명석
각색: 주은경
그림: 김서현
깊은 산골짝 월명동 마을에 따뜻한 봄이 왔어요. 산과 들에 알록달록 예쁜 꽃들이 피어나고,
겨우내 얼었던 도랑은 경쾌한 물소리를 내며 아랫마을로 흘러 내려갔어요.
깨끗하고 맑은 도랑물에는 가재와 작은 물고기가 따스한 햇볕을 쬐며 요리조리 헤엄을 치고,
제비도 따뜻한 곳을 찾아서 날아왔어요.
“지지배배, 지지배배”
제비들은 어느 곳에 집을 지을까 하며 이 집, 저 집을 날아다니면서 살펴보는 것 같았어요.
석이네 집에도 제비 두 마리가 날아와서 집을 짓기 시작했어요.
제비 한 마리는 입에 물고 온 진흙을 토해 내서 벽에 바르고,
또 한 마리는 마른 풀을 물고 와서 벽에 발라놓은 진흙 위에 풀을 깔고 붙였어요.
제비가 집 짓는 모습을 신기해하며 한참을 쳐다보던 석이는
“우와~ 집 짓는 솜씨가 보통이 아닌데? 킥킥!”
부지런히 날갯짓을 하며 둥지를 만드는 제비를 보며 감탄했어요.
“며칠이 지나 예쁜 제비 집이 완성되면 알을 낳고 새끼들도 태어나겠지.”
어느 날 석이는 부모님을 도와 밭일을 하고 오후 늦게야 집으로 돌아왔어요.
“아니! 이럴 수가…….”
석이는 깜짝 놀랐어요. 거의 다 지어진 제비 집이 흙바닥에 툭!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겠어요?
“아이고~ 초가집이 너무 오래되고 썩어서 작은 제비집도 짓지 못할 정도구나.”
제비들은 석이네 집으로 몇 번 왔다 갔다 하더니 더 이상 집을 짓지 않고 다른 곳을 찾아 날아가 버렸어요.
“제비야~ 우리 집이 가난하다고 너마저 나를 무시하고 웃기게 보는 거냐?”
바닥에 떨어진 제비 집을 쳐다보다가 석이는 좋은 생각이 떠올랐어요.
‘아하! 제비 집이 떨어지지 않게 받침대를 만들어 주어야겠다.’
석이는 지붕 처마 밑에 받침대를 만들어 주었어요.
다음 날이 되자 제비는 받침대에 날아와 앉아서
“지지배배 지지배배”
노래를 한참 부르더니 그곳에 집을 짓고 알을 낳았어요.
해가 뜨고 지기를 여러 날, 드디어 제비 집에서 알을 깨고 새끼가 태어났어요.
그런데 새끼 제비들이 먹이를 먹기 위해서 온종일 시끄럽게 울어대고
똥을 너무 많이 싸니 집이 더러워져서 견딜 수가 없었어요.
석이는 제비 똥을 치우면서 생각했어요.
‘아~ 제비가 빨리 커서 다른 곳으로 가 버렸으면 좋겠다.’
석이네 마을에 봄날은 이렇게 가고 있었어요.
어느 날 석이는 어머니가 아랫마을 석막리에 심부름을 시키셔서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어요.
수풀 속에서 다람쥐가 돌아다니는 것을 본 석이는
“어? 다람쥐네. 석막리 마을에는 있는 다람쥐가 월명동에는 왜 없을까?”
조그만 두 손으로 나무 열매를 쥐고 까먹던 다람쥐는 석이를 보고 놀랐는지 얼른 수풀 사이로 사라져 버렸어요.
‘어휴~ 월명동은 가난한 마을이라서 다람쥐 너까지 나를 무시하는구나.’
석이는 언젠가는 다람쥐를 잡아서 월명동에 데리고 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다람쥐를 어떻게 하면 잡을 수 있을까 며칠을 생각한 끝에 석이는 좋은 생각이 떠올랐어요.
다음 날 아침이 되자 석이는 다람쥐가 좋아하는 먹이를 한 주머니 담고 석막리 마을 나무숲이 우거진 곳으로 갔어요.
다람쥐가 저 멀리 보이자 석이는 새소리 휘파람을 불며 가지고 온 나무 열매를 손에 쥐고 있다가 하나씩 던져 주었어요.
“다람쥐야. 너랑 친하게 지내고 싶어.”
석이가 던져 준 먹이를 물고 어디론가 쪼르르 사라진 다람쥐는 다 먹었는지 다시 나타났어요.
석이는 다람쥐에게 휘파람을 불며 먹이 하나를 또 던져 주었어요.
“다람쥐야. 너랑 친하게 지내고 싶어.”
주머니에 담아 온 먹이가 다 떨어질 때까지 석이는 다람쥐에게 먹이를 주며 이렇게 말했어요.
“다람쥐야, 맛있지? 이젠 남은 먹이가 없어. 내 휘파람 소리랑 얼굴을 기억하고 있어. 내일 또 올게.”
석이는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다람쥐를 만났던 그 장소로 가서 먹이를 주며 친해지려고 했어요.
이번에는 먹이를 멀리 던져 주지 않고 좀 더 가까이 던져 주니 다람쥐도 가까이 와서 먹이를 받아먹었어요.
석이가 또 던져 준 먹이를 다람쥐는 먹지 않고 뺨 주머니에 쏙 집어넣고는 또 달라는 듯 기다리고 있었어요.
“다람쥐야. 너랑 친하게 지내고 싶어.”
석이는 먹이를 손에 올려놓고 조용히 기다려 보았어요.
놀랍게도 손에 있는 먹이를 보고 다람쥐가 쪼르르 다가왔어요. 석이는 동그란 눈을 더욱 동그랗게 뜨고, 숨을 멈춘 채 다람쥐를 지켜보고 있었어요.
그리고 조심스럽게 다람쥐를 두 손으로 모아 잡았어요.
“잡았다! 내가 잘 보살펴 줄 테니 걱정 마.”
집으로 돌아온 석이는 다람쥐가 배고프지 않게 먹이를 주고, 바닥에 나뭇잎을 폭신하게 깔아 주었어요.
그런데 다람쥐는 갇혀 있는 것이 못마땅한지 먹이를 먹지 않고 계속 도망갈 생각만 했어요.
“다람쥐야~ 너 왜 그러니?”
다람쥐의 까만 눈동자를 보니 석이는 다람쥐의 마음을 알 것 같았어요.
“아……. 너, 식구들이 있는데 혼자 여기 잡혀 있으니 집에 가고 싶은 거로구나.”
할 수 없이 석이는 다람쥐를 살던 곳에 풀어 주기로 했어요.
다음 날 날이 밝자 석이는 아쉬운 마음을 가득 안고
다람쥐를 데리고 아랫마을 숲속으로 가서 풀어 주며 말했어요.
“어서 돌아가~.”
어디론가 총총히 달려가는 다람쥐를 끝까지 보려고 석이는 빠른 걸음으로 뒤따라가 보았어요.
굵은 나무뿌리가 뻗어 있는 곳에 다람쥐 대여섯 마리가 같이 놀고 있는 것이 보였어요.
‘아……. 다람쥐가 식구들을 만났구나.’
다람쥐를 보내 주었지만 날이 갈수록 다람쥐가 보고 싶어졌어요.
“우리 동네에도 다람쥐가 많이 와서 살 수 있게 내가 만들어 줘야겠다.”
석이는 아랫마을 숲속으로 달려가서 다람쥐를 찾아보았어요.
여기저기서 불쑥불쑥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다람쥐를 가만히 지켜보았어요.
다람쥐가 뺨 주머니 속에 먹이를 가득 담아서 어딘가에 자꾸 갖다 놓는 것을 보고 번뜩 생각이 떠올랐어요.
다람쥐는 먹이 창고에 차곡차곡 먹이를 넣어 두고는 무엇이 바쁜지 어디론가 쪼르르 가 버렸어요.
‘다람쥐가 없는 틈을 타서 먹이를 가지고 와야겠다.’
석이는 다람쥐 먹이를 싹 가지고 바위 뒤에 숨어서 다람쥐가 올 때까지 기다려 보았어요.
뺨 주머니가 풍선같이 볼록해지도록 먹이를 물고 온 다람쥐는 창고에 넣어 둔 먹이가 없어져서 당황한 듯 이리저리 살펴보았어요.
그러더니 물고 온 먹이를 다른 장소에 숨겨 두고는 또 어디론가 총총히 사라졌어요.
이번에도 석이는 다람쥐가 숨겨 둔 먹이를 싹 가지고 왔어요.
집에서 가지고 왔던 대바구니 안에 다람쥐가 모아 놓았던 먹이를 담아 두고, 새소리 휘파람을 불면서 다람쥐를 기다렸어요.
잠시 후 다람쥐가 다시 나타났을 때 석이는 멀리서 먹이를 던져 주고 또 던져 주었어요.
바위틈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또 다른 다람쥐가 뽀르르 다가왔어요.
석이는 대바구니에 담아 둔 먹이를 다람쥐들에게 보여 주며 말했어요.
“다람쥐야. 네가 모아 놓은 먹이는 내가 안 먹었어. 너 다 줄게.”
다람쥐들은 먹이가 들어 있는 바구니 안으로 쏙 들어왔어요. 이렇게 해서 석이는 다람쥐 두 마리를 데리고 집으로 왔어요.
다람쥐들은 서로 싸우지도 않고 잘 놀았어요. 석이가 먹을 것을 갖다 주고 잘 보살펴 주니 다람쥐들은 무럭무럭 자라서 어느새 새끼 다람쥐도 낳았어요.
다람쥐들은 석이를 잘 따르고 말도 잘 들었어요. 석이는 집에 먹을 것이 생길 때마다 다람쥐에게 갖다 주며 같이 놀아 주기도 했어요.
하얀 눈이 펑펑 쏟아지는 겨울이 되자 숲에는 밤이랑 도토리가 하나도 남은 것이 없었어요.
그래서 석이는 부모님이 농사지은 콩을 다람쥐에게 주면서 따뜻한 방에서 잘 보살펴 주었어요.
다람쥐도 석이를 좋아하고 길이 들어서 방에 풀어 놓아도 밖으로 도망가지 않았어요.
하루는 아버지가 언짢은 목소리로 석이에게 말했어요.
“너는 우리가 애써 농사 지어놓은 걸 다람쥐한테 다 주려고 하느냐?”
석이는 조그만 목소리로 대답했어요.
“다람쥐가 먹으면 얼마나 먹는다고 그러세요…….”
알고 보니 다람쥐가 하루에 한 주먹이나 되는 콩을 먹었지 뭐에요?
‘다람쥐가 한 달 동안 콩을 얼마나 먹는지 모아 봐야겠다.’
실제로 콩 30주먹을 세어서 모아 보았더니 한 자루나 되었어요.
다람쥐가 먹는 콩이 식구들이 밥에 넣어 먹는 양만큼이나 많았던 것이었어요.
아버지는 다람쥐에게 콩을 더 이상 주지 못하도록 강력하게 말씀하셨어요.
“식구들이 먹을 콩도 없는데, 왜 자꾸 다람쥐에게 갖다 주느냐?”
아버지가 다람쥐를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말하는 것 같아서 석이는 속상했어요.
“아버지, 겨울에 춥고 눈이 오는데 다람쥐가 먹을 것이 없어요. 집에 있는 콩밖에 줄 것이 없어요.
봄이 오면 제가 콩 농사 따로 지어서 드릴게요.”
그러자 아버지는 더 엄한 목소리로 말씀하셨어요.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라! 네가 내보내지 않으면 내가 저 다람쥐들 다 풀어줘 버린다.”
할 수 없이 석이는 다람쥐를 보며 말했어요.
“다람쥐야, 내 말 잘 들어. 아버지가 식구들이 먹을 콩을 너희에게 다 준다고 화가 많이 나셨어.
그러니 더 이상 같이 있을 수가 없게 됐어. 내가 콩을 집 뒤에 갖다 놓을 테니까 다니면서 주워 먹어.
알겠지?”
그날 이후 집 안에 다람쥐가 보이지 않자 아버지는 밖으로 풀어 준 것으로 알고 웃으며 말씀하셨어요.
“다람쥐가 없으니 속이 다 시원하네, 허허허.”
그러나 석이는 아버지 몰래 집 뒷마당에 다람쥐들이 먹을 콩을 뿌려 주었어요.
다람쥐는 석이네 가족들이 밥 먹을 때마다 집 주위에 있다가 나타났어요.
석이 옆으로 다람쥐가 와서 가만히 앉아 있으면 밥에 있던 콩을 몇 개 건네주었어요.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아버지도 따라서 콩을 주었어요.
아버지는 다람쥐를 붙잡아 놓고 계속 콩 주는 것은 허락 안 하셨지만, 밥 먹을 때 콩이나 팥을 조금씩 주는 것은 허락하셨어요.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자 다람쥐들은 서서히 바깥으로 돌아다니기 시작했어요.
가을에는 밤나무 밑에 들어가서 떨어진 밤을 주워 먹고 살더니 석이네 집에는 더 이상 내려오지 않았어요.
그러자 석이는 밤나무 동산에 밤이 주렁주렁 열렸을 때 다람쥐가 먹고 살도 찌고 뛰어 다니라고 알밤을 다 따지 않고 남겨 두었어요.
그리고 겨울이 되어서 먹을 것이 없을 때 다람쥐들이 먹을 알밤을 따로 남겨 두었어요.
어느 날 월명동 다람쥐는 아랫마을 석막리에 사는 다람쥐에게 쪼르르 내려가서 이렇게 이야기했어요.
“내가 사는 곳에는 말이야, 밤이 너~무 많아서 살기가 정말 좋아.”
월명동 다람쥐는 아랫마을 다람쥐들을 데리고 와서 밤나무 동산에서 같이 살았어요.
그러다 보니 월명동에 다람쥐가 아주 많아졌어요.
월명동 다람쥐는 석이와 더 친해지고 서로 좋아하게 되었고,
밤나무 동산의 모든 것을 자기 것처럼 누리면서 만족하고 행복하게 살았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