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국장이 들려주는 세푼칼럼! '세푼'짜리 부족한 글 솜씨로나마..... '세'상의 언어로 '푼' 주일말씀을 써 올립니다.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윤동주 시인이 쓴 ‘십자가’라는 시 입니다.
시인은 십자가 위에 달린 예수의 육은 ‘괴로웠'을 것이나, 그 영은 ‘행복’했을거라 봤습니다. 하지만 시의 말미에 너무 선연(鮮然)한 ‘외로움’ 을 짙게 그려 내고 있습니다.
정말 가상(架上) 의 예수는 너무나도 ‘외로웠’을 것 같습니다.
빌라도 법정에서 일어난 일
예수의 십자가 형이 공식적으로 확정 된 곳은
빌라도의 법정 입니다.
모두 알다시피 빌라도는 아무리 찾으려 해도 예수의 ‘죄’를 찾을 수 없어 무죄를 확정하고 싶었으나, 법정 안을 가득 채운 무리들이 ‘십자가 처형'을
강력하게 요구하며, 반란까지 일으킬 듯한 기세를 보였기에 ‘피 값을 당신들이 치루라’며 결국 예수를 내어 주고 맙니다.
예수께서 활동 하던 당시의 ‘성전’은 정치, 경제, 종교 모든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었습니다.
서기 64년 성전이 완공 되었을 때 (당시 예루살렘의 총 인구를 3~5만명으로 추정하는데) 무려 1만8천명이 실직을 했다고 하니 ‘성전’이 갖는 경제적 의미 역시 엄청났던 것입니다.
성전건축 외에도 다양한 성전 관련 ‘비즈니스(?)’들을 생각 해 본 다면 ‘성전’은 그 자체로 최고의 (정치적, 종교적)상징성을 갖고 있었던 것 외에 이권 사업의
핵심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오직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 하는 모든 곳이 ‘성전’임"을 밝히셨고, 성전은 ‘기도하는 집’이라고 성전에서 돈을 벌어 들이던 환전상과 제물 파는 자들을 내 쫓으셨습니다.
심지어 ‘성전을 허물면 내가 3일만에 다시 세우겠다’ 고까지 하셨으니 당시 성전을 둘러 싸고 모여있던 '기득권자'들은 '예수를 어떻게 하면 없앨까' 고민 할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빌라도 법정에는 바로 이런 예수께 불만을 품고 있던
무리들(혹은 기득권자들에 의해 매수 된 자들)이 모여, 결국 ‘예수가 로마에 반역하는 사람’이라는 '명목'으로, 하지만 '실상'은 ‘종교 재판’, ‘여론 몰이 재판’으로 예수를 십자가에 매 달게 만든 것이었습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 주라’던 예수께서 로마에 반역을 꾀했을
리가 없다는 것을 뻔히 알고서도 말입니다.
외로웠던 예수
‘어두워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피를 흘리는’
십자가 위 예수의 ‘외로움’은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에서부터 시작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예수와
함께 잠시도 깨어 기도할 수 없었던 제자들…
그리고 그 ‘외로움’은 고스란히 빌라도의 법정에까지 이어 졌을 것입니다.
예수로 인해 소경에서 눈을 뜬 자, 문둥병에서, 중풍에서...
각종 육신과 영혼의 병과 죽음의 문제를 해결 받고 되
살아났던 그 많은 사람들은 어디에 있었을까요?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 윽박지르는 군중들 속에 혹 예수는 자신을 통해 표적을
보고 삶이 바뀌었던 자가 오지 않았나 찾지 않았을까요?
'그는 죄가 없다.오히려 그가 일으킨 표적으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나온
사람들이 여기 있다.’ 증거 해 줄 사람을 기다리시지는 않았을까요?
표적을 보고, 체험 했던 그 들은 도대체 어디 가
있었을까요?
두려움에 베드로 처럼 멀리 도망쳐 있었던 것일까요?
아니면 법정에 와 있었더라도 성난 군중들 속에 한 마디 말도 못 꺼내고 부끄럽게 얼굴을 가리고 있었던 것일까요?
사형 언도의 공포보다 겟세마네의, 빌라도 법정에서의 ‘외로움’이 예수께는 더 견디기 힘든 것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증거해야 할 사람들
정명석 목사께서 금주 말씀을 통해 신앙인들이 자기에게 보이신 하늘의 표적을 자기가 증거 않으면 묻혀 버린다 가르쳐 주셨습니다.
표적이
표적을 낳기에, 표적을 증거해야 또 표적이 일어난다고도 알려
주셨습니다.
(표적을 본) 그 많은 사람들 어디로 가고 나만 홀로 서
있느냐?
그 누가 증거 해 줄 자 있는가 하고 사방을 둘러 보네...
하늘의 위대한 표적을 경험한 사람들이라면 함께 '기도하고 증거함'으로 예수의 '가상(架上) 고독'을 덜어 줄 수 있어야겠습니다.